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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Apr 26. 2021

6. 나는 인문계 성골 '김문과'입니다.

2) 뼛속까지 김문과, 퇴사하고 코딩하다

나는 문과 출신이다.

그것도 정통 성골이라 할만큼, 뼛속까지 문과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글쓰는 것을 좋아했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반대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학과 과학은 나의 기피 과목이 되었다.

(내가 지원하려고 했던 학과는 거의 대부분 학교가 수학 성적을 보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핑계삼아 자연스럽게 수포자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문 · 이과에 대한 선택을 두고는 단 한 번도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카페에서는 항상 뭘 먹을지 엄청난 고민을 하는데!) 나는 글과 책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성향을 이어,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다.






문과라고 다같은 문과가 아니다. 문과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학문의 3대 기본 학문이자, 인문학의 뿌리라고 불리는 '문학', '사학', '철학'(줄여서 문사철. 문송의 선두주자. 당사자만 이런 말 할 수 있는 거 알지?), 종교관련학과, 사회과학의 성격을 가진 '심리', '경제', '경영', '무역학과'까지도 문과의 큰 범주에 담긴다.(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숫자를 다루는 경영 경제 무역학과가 이과라고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문창과는 인문학의 뿌리 3요소는 골고루 갖추고 있으며, 거기에 예술 · 예능적 요소를 더한 학문이다.


문창과 졸업자의 깜냥으로 내가 느낀 문창과에 대해 말하자면, 

문학에 사학 한 스푼, 예술 두 스푼, 철학 세 스푼 정도 넣어 잘 뒤섞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거의 이공계의 대척점에 서 있는 학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문창과는 취업과는 정말 거리가 멀다.

"문창과는 학교에서 뭘 배워요?"

흔히 있는 학과가 아니다보니, 전공을 밝히면 으레 이런 질문들이 따라온다.


국어의 문법과 문학을 함께 배우는 국어국문학과와는 달리, 문예창작학과는 정말 글쓰기를 배운다. 문학사나 비평, 현대학문 위주의 이론 수업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창작 수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일련의 수업들이 취업에는 정말 지극히도 도움이 안 된다. 하다못해 인문학의 뿌리, 문사철은 교직 이수를 통해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군이 있기라도 하지, 문창과는 그렇지도 못하다. 애초에 취업이 아니라, 글을 써서 등단을 하는 것이 이 학문의 가장 정석 루트인 까닭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등단이라 하는 것이 보통 한 학번에 한 명만 나와도 그 학번은 면이 섰다고 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한 학번에 50명 정도가 입학을 하는데 그중에 1명이 등단을 하는 것이면, 나머지는 모두 다른 길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등단을 한 그 1명도 지속적으로 안정된 수입을 보장할 수 있는 직업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비효율적인 학과가 있다니!

그야말로 문송한 학문이 아닐 수 없다.




이만해도 충분히 인문계 성골이라 할만 한데, 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역사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다. 하여 사학과를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이공계 대학에서는 어떤 것을 배우는지, 무슨 학문인지 관심도 없었다. 각자의 학과가 어떤 직업으로 이어지는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시절, 

나는 정말 취업이라고는 쥐뿔도 생각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공부만 골라서 했다. 


참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우물 안 개구리인 상태로 열심히 해봤자, 보이는 것이라고는 우물 구멍으로 보이는 동그란 하늘 뿐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안락한 대학 생활 속에 갇혀 세상 밖이 얼마나 차가운지 몰랐던 탓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드라마 <미생>은 남의 이야기였다.




취업을 하려니 세상이 만만치 않았다. 일단 문창과라는 전공을 내세워 비벼볼 곳이 거의 없었다. 요즘 누가 전공을 살리냐고 이야기하지만은, 게으르고 세상 물정 몰랐던 바보에게 그나마 내세울 만한 것이 남들보다 조금 특이한 전공이었다.


운좋게도 글재주를 살려 첫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그 회사에서도 글 재주가 내 회사 생활의 엄청난 디딤돌이 되었다. 


문제는 회사를 나오고 나서였다.

망해가는 여행업, 그럴싸하지만 두루뭉술한 '콘텐츠'라는 영역.

나는 전공과 재주를 살려 취업을 하는 것이 애매하고, 한편으로는 도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퇴사와 함께 결심했다.

'나는 개발자한다.'






덧붙이는 말.

다행히도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콘텐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문창과에서 4년동안 갈고 닦은 스토리텔링과 글재주가 점점 각광받을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쓰는 거 아닌가 싶던 글재주는 점점 특출난 재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이에 관해서 문창과생들끼리는 '문창과가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라, 문창과가 아닌 사람들이 글을 너무 못 쓴다'라고 말하고는 하는데, 어쨌든 그만큼 문창과의 설 자리가 넓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같은 취업난 시기에 자기소개서 첨삭을 전문적으로 할 수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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