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친절했던 러시아, 그 아저씨.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첫모습은 생각했던 것 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괜찮은 수준이었다. 출발하기 전 우리끼리 설국열차 꼬리칸이니, 비참한 생활이니 운운했지만 베트남에서 탔던 슬리핑 버스에 비하면 땡큐 베리 머치. 물론 가격도 좀 비싼 편이니까.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해 언제 열차를 탈지 꽤 설렜다. 막상 탑승하고 나니 이제서야 본격적인 러시아 여행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다
열차 내부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3등석이 이정도인데 2등석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칸칸이 나누어진 자리는 사적이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그래도 내 한 몸 뉘여 나만의 생활을 하는데에 충분해 보였다. 옛날에 머물렀던 고시원 방이 슬쩍 떠오른다. 탑승한 뒤 짐을 내리고 숨을 돌리고 잠시 앉아 있었다. 내부의 사물과 기자재들이 눈에 들어올 즈음, 차장님이 개인별 물품을 전달해주러 오신다. 열차 내 매트리스에 깔 린넨과 이불에 겹쳐 깔 린넨, 베게 린넨과 수건이다.
아저씨
디모페이 아저씨는 나와 연 바로 맞은 편에 자리한 분이셨다. 딱 봐도 초행길은 나의 모습이 꽤 아슬아슬해 보였는지 처음부터 오래 주시하고 계셨다. 횡단열차를 처음 타면, 시발점이 블라디보스톡이므로 짐을 넣을 수 있는 의자뚜껑이 열려있다. 그것은 바깥쪽 걸쇄에 걸려 있어 열려있는 형태이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은 닫는 것도 낯설다. 의자 밑에 짐을 둘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지만 현실을 마주하니 조금 막막하다. 아저씨는 영어를 할 수 없는 분이었지만 이런 나를 보자마자 의자 뚜껑을 닫아주셨다. 첫 만남부터 매우 친절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저씨는 린넨을 받아들고 황망히 앉아 있는 내게 사용방법도 알려주었다. 고등학생 때 병원에서 린넨을 교체하는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매트리스에 린넨을 갈면서 그때 추억을 되새겼다. 아저씨는 깔끔하게 린넨을 펼쳐 매트리스, 이불, 베개에 정도하는 나를 만족스럽게 쳐다보았고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엄지 손가락을 세웠다. 나를 도와준 다음은 아저씨 차례였다. 나는 아저씨의 허락을 받아 '현지인의 횡단열차 침구 정리하기'영상을 촬영했다. 아저씨는 능숙해 보였고 열차사용 경험이 많은 것 같았다.
현지인이 나누어주는 음식이란
디모페이 아저씨는 이전에 한국인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이었다고.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탓인지, 한국인인 우리에게도 같은 애정을 가지고 보살펴주려 애쓰셨다. 영어는 고맙습니다 정도만 통하는 정도였지만, 구글느님의 번역기로 대화할 수 있었다. 열차를 타는 동안 모르는 것이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하셨던 아저씨. 모든것이 새롭고 낯선 여행자에게 이만큼 든든한 말이 또 있을까. 스타칸(컵) 대여와 슬리퍼 구입을 알려준 사람도 디모페이 아저씨다. 연과 뀨는 아저씨 덕분에 슬리퍼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저런 음식을 정말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다. 디모페이 아저씨 어머니가 만드신, 고기 속이 들어 있는 빵. 그리고 사탕, 초콜릿, 과자, 건과일, 튀긴 고추까지. 아예 봉지째 내미시는 아저씨의 모습은 어디선가 날아온 러시아 천사임이 분명했다!! 현지에서 애정을 가지고 우리를 보살펴주는 사람이 현지 음식도 나눠주시는 것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서 꾸었던 꿈이 실현되는 상황이었다. 음식도 나눠먹고, 문화도 교류하면서 러시아분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바로 그런 바람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아저씨의 어머니는 아저씨가 일을 가시는 동안 탑승할 열차 안에서 먹을 빵을 열심히 만들어 구우셨을 것이다. 아들이 떠나는 길에 음식을 이것저것 챙겨 보내는 마음은 러시아 어머니나 한국 어머니나 다를바 없다. 아들이 몇 살이건 말이다.
러시아에서는 차를 많이 마시기 때문에 달디단 디저트들이 많은데, 아저씨가 내민 초코렛, 사탕 봉투도 그랬다. 러시아 상점이나 마트, 혹은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지나는 간이 매점에 가면 사탕을 종류별로 판매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아저씨가 골라온 달다구리들은 정말 달콤했다!!!
예전에 아버지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사업을 하시면서 러시아 분과 교류를 하셨다. 러시아를 다녀오시면서 항상 건과일과 건과일이 들은 초코렛을 사 오셨던 기억이 스친다. 디모페이 아저씨의 건과일을 맛보면서 말이다. 날씨가 춥기 때문에 싱싱한 과일을 먹기가 어려우니 이렇게 말려서 보관하며 비타민을 섭취하는 것이다. 망고도 아닌것이, 사과도 아닌것이 쫄깃하고 맛있다.
고추 말린 것은 한국산이라고 한글로 적혀있지만, 나는 한국에서 이와 비슷하게 생긴것도 본 적이 없다. 아마 조선족이나 고려인들이 먹는 음식이 아닌가 싶었다. 아저씨가 떠나기 전 날, 이 바삭거리는 간식거리를 내밀었을 때, 우리들은 오히려 신기해 했다.
사랑은 이런 것처럼 전해지고 확산되는 것인가 보다.
언젠가 만났던 한국인과의 좋은 기억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아저씨. 그리고 이렇게 처음 만난 한국인에게 그때 느낀 따뜻함을 전해주시는 아저씨. 다음에 다른 한국인을 만나실 때에도 비슷하게 배려해 주실 것이다.
디모페이 아저씨는 내가 러시아에서 느낀 두번째 따스함이었다.
이르쿠츠크까지 함께 갈 것이라 믿었던 디모페이 아저씨와의 여정은 1박 2일만에 끝이 났다. 이럴줄 알았으면 지난 밤에 아저씨와 카드게임이라도 할 걸. 아저씨는 이르쿠츠크 북쪽에 있는 터널을 만들러 가시는 중이었다.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장거리를 이동하는 시간이 피곤하고 힘들법도 한데, 이렇게 낯선 여행자에게 신경 써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뀨와 연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매듭반지 만드는 방법을 열심히 익혀왔다. 사실 나는 횡단열차 자체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별달리 준비한 것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들고 다니는 내 그림이 그려진 엽서와 펜 한 자루 뿐. 엽서에다 아저씨를 그려 드리긴 했지만 아저씨는 원하시는 것이 있었다! 바로 한국식 매듭 팔찌! 예전에 여동생과 어머니가 한국여행을 갔다가 매듭 팔찌를 사 왔던 것이 참 예뻤는데, 그것을 잃어 버렸다며 안타까워 하셨다. 뀨와 연은 팔찌를 만드는 방법은 몰랐다. 나는 오후 6시에 아저씨가 내린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역이 아니면 거의 연결되지 않는 와이파이의 끝을 간신히 잡고 급 매듭팔찌 만드는 방법을 검색해 만들기 시작했다!!!
아주 예전에 익혔던 도래매듭 몇개와 끈으로 몇 시간이나 매달렸지만, 뚝딱 만들수 있을리 없다. 아저씨가 나갈 채비를 하고 일어나는 순간에 간신히 팔목을 둘러 마무리를 지어 완성했다. 나는 아저씨와 헤어지는 순간이 정말 아쉬웠고, 그렇게라도 해드리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아저씨는 역에서 내려 동료들을 만났다. 나도 뀨와 함께 열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저씨와 피스밤을 나눴다.
무사히 건강하게 일을 잘 마치시고 돌아오시길요.
정말 많이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