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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루 Mar 22. 2018

알혼섬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

러시아 사람들도 혀를 내두르는 추운 섬을 향하여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머물렀던 호스텔의 스태프들은 모두 젊고 활기찼다. 개 중에는 밝고 명랑한 중국인과 새침한 러시아인, 친절한 남미 청년이 우리를 맞았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추운날씨를 고려하여 전통방식과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옷이다. 특히 후드처럼 머리에 쓴 것을 보고 스태프들은 매우 놀라워했고 재밌어 했다. '그 스타일, 진짜 맘에 든다.'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다녀와서 숙박을 하지는 않지만 샤워를 해도 되냐고 물어보자 흔쾌히 답해주었다. 특별히 나에게만 그런 기회를 준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다. 내 동료들도 그 좋은 기회를 나누어 주면 안될까? 했더니 문제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분좋은 대화를 뒤로 하고 아침 일찍 알혼섬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오전 9시였다.

계획은 이랬어. 1월 20일 오전 9시에 호스텔 바로 앞에 알혼섬으로 가는 차가 도착한대. 그것을  5시간-6시간을 타고가면 알혼섬 내 후지르 마을에 위치한 숙소에 두세시쯤 도착. 설명은 간단했지. 당시 같은 동호회 분이 알혼섬에 먼저 도착하셔서 키톡으로 몇 가지를 여쭈어 봤거든.  그분도 오전 9시에 출발해 오후 2시쯤이면 알혼 섬 숙소까지 도착예정이었는데 실제로는 3시가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는 거야. 조금 늦어질 수는 있겠지 싶더라. 어쨌든 아래 사진을 보면, 당시 우리 호스텔 스태프가 설명해준 내용이 상형문자처럼 그려져 있어. 이때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다고.




좁디 좁은

호스텔 앞에 차가 도착했어. 정시보다 20여분 늦은 시각이었지. 미니버스는 15인승이었어. 맨 앞자리에는 호스텔 직원을 포함한 관리 인원 2명과 러시아 운전기사 아저씨가 탔지. 겨울이라 두꺼운 옷을 입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모두 배낭같은 것을 메고 있었기 때문에 자리는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았어. 내 바로 뒤는 3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자리였는데, 그들 발과 내 어깨가 닿을 정도였으니까 얼마나 자리가 협소했는지 상상이 가겠지? 탑승한 자세 그대로, 옴싹달싹할 수 없었지. 육중한 미니버스에 움직일 틈도 없이 꽉 찬 좌석때문에 대화조차 나눌 수 없었어. 숨이 턱 막히는 내부공기는 우리 호흡까지 단절시킬 것 같더라. 이르쿠츠크에 최근 중국인 여행객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던 적 있어. 바로 버스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 나를 포함한 한국인 5명, 서양인 커플을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중국에서 온 젊은 여행자들이었거든. 시내 다른 숙소에서 나머지 승객들을 모두 싣고 본격적으로 차가 내달린 시간은 10시. 


덜컹이고 흔들리는 속에서 승차감은 아주 좋지 않았어. 맨 땅을 엉덩이로 쿵쿵거리며 지나는 기분이었지. 아이슬란드에 오프로드 비슷한 곳을 달릴때, 바로 그 느낌이었어. 아주 얇은 창을 댄 플랫슈즈를 신고 자갈밭을 지나는 느낌이지. 차라리 그랬다면 발 지압이라도 됐을텐데. 그런 상태로 몇 시간을 달렸고 우리는 말이 없었어. 다들 지쳐서 배낭에 얼굴을 기대거나 고개를 떨구고 졸거나 자고 있었지. 3시간을 그렇게 달렸나...반갑게도 차가 멈추었어! 언어가 통하지도 누군가 적극적으로 물어보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반갑게 차를 박차고 나왔어.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밖에 없었어.


일용할 양식

작은 마을인것 같았어. 시내를 벗어나면서 조느라 풍경을 못 보았지만 곧 모든 세상이 하얗게 변했지. 알혼섬에 다가갈 수록 더욱 추워지고 기상상태도 좋지 않았어. 긴장 속에 도착한 작은 카페는 내가 생각하던 카페와 많이 달랐지.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따뜻함에 정신을 못차리겠더라. 정말 좋았어! 손가락은 이미 꺼내놓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 모든 것이 얼어붙어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도 여기서 따뜻한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었어. 자랑은 아니지만 봐, 나는 그 새 메뉴를 3개나 주문해서 모두 먹어치웠다니까! 카페 주인은 매우 냉정한 몽골계 러시안 여성이었지만 난 그녀에게 감사하고 싶어. 이런 음식을 팔아줘서 말이야.




꽁꽁 얼어붙은 호수

성급하지만 착실히 뱃 속을 채우곤 다시 고통스러운 미니버스를 탔어. 러시아 운전기사 아저씨는 매우 터프하게 차를 몰았지. 뭐,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선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이 불편했다는 건 확실하게 기록해 두고 싶어. 또 몇 시간 차를 탔나봐. 그리곤 멈춰선 곳이 바로 여기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고! 이 호수가! 바이칼 호수가! 하늘은 파랬고 모든것이 얼어있었어. 엘사라도 다녀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 이미 들어갔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군데군데 얼지 않았다고 했는데, 내가 본 호수는 완벽하게 고체가 돼 있었어. 미니 버스에서 몇 시간 동안 고락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감탄하며 사진을 찍기 바빴어. 나와 뀨도 마찬가지였고! 멋진 장면을 신나게 담고 있을 때쯤, 어디선가 굉음이 들려왔어. 우리를 알혼 섬으로 실어다 줄 호버크래프트래. 나는 뀨의 팔을 간신히 잡고 미끄러질뻔 한 위기를 몇번 이겨냈지.



얼음을 지치고

말로만 듣던 호버크래프트가 도착했어! 그러니까 알혼섬까지 가기 위해서 필요한 교통수단인 셈이지. 강이 다 얼지 않으면 페리가 사람을 실어나른대. 여름같은 때 말이야. 지금은 이렇게 꽁꽁 얼어붙어 있으니 압축공기로 에어쿠션을 만들어 얼음위를 이동하는 호버크래프트가 필요한거야. 물론 차에서 내린 지점부터 알혼섬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어. 그렇지만 어마무시하게 추운지라 수분이 모두 얼어버렸지. 눈썹, 콧속, 입술. 호버 크래프트는 열명 남짓 사람밖에 싣지 못해. 알혼섬과 이곳을 오가는 기구도 두대 뿐이더라고. 우리 미니버스에만 15명이, 또 다른 손님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호버 크래프트를 향한 경쟁은 치열했어. 


중국인들이 몰려들었지. 나는 운좋게 호버크래프트 바로 앞쪽에 서 있었고 그 덕에 기사 아저씨 손을 잡아 탑승했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아저씨는 내가 타자마자 '탁'소리가 나게 선체 문을 닫은거야. 뀨와 연은 타지도 못했는데. 
"아저씨, 제 일행이 저기에 있어요. 아저씨?" 나는 애타는 목소리로 아저씨를 불렀지만 아저씨는 그저 괜찮대. 금방 온다고 나를 달랬어.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온도가 극심하게 갈렸어. 황망하게 멀어지는 뀨와 연을 보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 그대로 우린 알혼섬을 향해 출발했어. 
얼음을 타고 달리는 기분은 거대 썰매를 탄 것과 비슷했어. 고무 보트 같은 것에 모터를 달아 이동하는 느낌이거든. 모든 것이 딱딱해져 있었고 거대 스케이트장 같았지. 지금 내가 지나는 곳이 출렁이는 액체가 가득한 호수라고 생각할수 없었어. 사방에는 호버크래프트가 뿌려대는 얼음가루가 흩날렸고 난생 처음 느끼는 호수 위 활주는 내 인생에서 정말 특별한 경험임이 분명했지! 

*알혼섬 들어가기_Olkhon Island by Hovercraft

https://youtu.be/iGqsKKyR7PM




난생처음

'난생처음'이라는 순간은 생각보다 급하게 지나 버렸어. 한 3분 남짓됐을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내가 아직 타보지 못한 운송기구 중 하나를 방금 막 탔던 것이니 조금 더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싶은데 말이야. 모든 것이 눈깜짝할 새에 흘러가 버렸고 350루블을 아저씨에게 건네는 것으로  끝이 났지. 도착함과 동시에 호버 크래프트는 또다른 사람들을 싣기 위해 금세 떠나 버렸어. 알혼 섬 초입에는 많은 차들이 서 있었고, 손님을 기다리는 것 같더라. 여기서 또 차를 타고 안쪽 마을로 이동해야 할 것 같았지만 내 일행을 기다려야 했어. 그러고보니 같이 미니버스를 타고 온 중국인 손님 몇이 보이더라. 그나마 안심이 됐지. 호흡을 고르고 사방이 눈에 들어올 즈음 내 곁에 있던 것은 한 마리 개였어. 특별히 어떤 종이었다고 말해줄 수는 없겠지만 꽤 다정하고 성격 좋아 보이는 녀석이었지. 모르긴 몰라도 나 같은 외지인을 반기는 것은 아니고 친한 사람이나 주인이 알혼섬을 떠나 이르쿠츠크나, 어디로 일을 떠난건 아닌가 싶더라. 사람들에게 다가와 냄새를 맡기는 했어도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거든. 


일행을 기다리며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어. 낮은 언덕, 꽁꽁 언 바이칼 호수, 또다시 눈이 내려 하얗게 되어 버린 산등성이와 호수 바닥... 투명하게 안쪽까지 다 보이는 물 위를 걷는 느낌은 새로웠어. 정말 내가 호수를 걷고 있는 것인지, 꿈을 꾸고 있는것인지 구분이 잘 안가더라. 한 발, 한 발, 꾹꾹 눌러 걸어보았어. 이 순간을 잊지 않도록. 내가 여기에 왔다는 것을 내 스스로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어딘가에 처음 도착하게 되면 누구나 깃발을 꽂지. 내가 여기 왔노라고, 이곳을 정복했노라고. 하지만 나는 느껴.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내 마음속에 그 장소를 담아두는 것이라는 걸 말이야. 내가 밟았던 바닥의 느낌과 촉감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 나는 누군가 왔던 곳을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니야. 직접 느끼고 체험하러 온거지. 내 발로, 내 다리로, 얼어붙는 내 뺨으로, 내 얼굴로. 심지어 여기에 서서 호흡을 했을 때 콧속 안까지 파고 드는 얼음을 느끼면서 말이야. 아주 사소한 감각들이 나에게 확실한 기분을 느끼게 해줘. 내가 드디어 여기에 왔다는 걸.


미니버스를 탔던 친구들은 생각보다 꽤 늦게 내가 있는 곳으로 왔어.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다른 팀이 경쟁적으로 호버크래프트로 달려드는 바람에 많이 밀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심지어 중국인 여행객중 일부는 자신들이 타기 위해 우리 친구들을 밀거나 새치기를 했던 모양이더라고. 어쨌든 서둘러 도착한 그들은 삼삼오오 미니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 버렸어. 두대의 호버 크래프트가 몇 번이고 저쪽 뭍과 이쪽을 오갔지만 기다림은 꽤 길었어. 40분? 한시간? 추웠지만 따뜻한 액주음포 패딩을 입고 휘항을 쓴 상태로 추위를 이겨냈지. 어떤 사람들은 호버 크래프트를 포기하고 그냥 건너오기도 했어. 호수가 완전히 얼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을 거야. 매우 추웠지만 그들에게는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가 없었던 거지. 
일행이 도착하고도 문제였어. 여기서 어떻게 숙소로 갈 수 있는 것일까? 마지막 우리 일행이 알혼섬 끄트머리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됐지. 한 한국인 커플이 앞에 앉아있던 스태프에게 '286'이라는 숫자를 받았다는 걸. 명확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참 답답했어. 하지만 수수께끼는 곧 풀렸어. 그들이 가지고 있던 번호는 차 번호였어! 우리는 추위는 둘째치고, 드디어 숙소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지. 그런데 차를 타고도 우리는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했어. 인원이 맞지 않았거든. 이르쿠츠크에서 각기 다른 숙소에 머물렀기 때문에 각자 정확한 지침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린 처음이고 모든 것이 서툴렀어. 뭘 몰랐고 제대로 지시를 받지도 못했지. 정말 우왕좌왕이었어. 
우리 차 운전석에 있던 러시아 아저씨도 우리처럼 멘붕이었지. 약속한 인원을 후지르 마을 숙소에 데려다 줘야 하는데 인원이 맞지 않는거야. 어디론가 계속 전화를 하기 시작했지. 러시아 어였지만 이해할 수 있었어. 그때, 익숙한 패딩과 모자를 한 사람이 이쪽 강둑으로 올라오는게 보였어. 나는 러시아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황급히 말을 했지. "아저씨! 저 사람 우리 일행이에요!" 함께 미니버스를 타고 온 중국인 여행자였어. 그들도 한참을 헤맸는지 차 문이 열린 후 우리얼굴을 보고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어. 너희들은 여기에 있었구나! 싶은 모습으로 말이야. 이제 출발하는 걸까? 모두 기대했지. 하지만 우리는 그대로 한 시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어. 왜냐하면 이르쿠츠크에서 미니버스를 함께 타고 온 일행 중 몇이 다른 차를 타고 먼저 어디론가 가 버린거야. 운전기사님은 매우 화가 났어. 하지만 그들에게 연락할 방도는 없지. 호버크래프트 아저씨들에게도 열심히 물어보았어. 건너편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지. 아저씨들은 건너편까지 다시 다녀오는 수고를 했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어.
호버크래프트를 타고 단 3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를, 우리는 두어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어. 운전기사 아저씨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 누군가와 연락을 했는지는 몰라도 우리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까지 출발을 하기까지는 그렇게나 시간이 걸렸단다. 


*알혼섬 입구에서 후지르 마을까지_Khuzir village in Olkhon Island
https://youtu.be/uzt0vExUH8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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