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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May 13. 2023

번갯불에 구운 어른

2023년 살아남기

서른 세 살이라는 나이가 되었지만 집은 여전히 월세고,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씀씀이 면이나 생활 양식 면에서 옛날에 생각했던 '어른의 생활'에 크게 다가가지 못했다. 아버지 옆 자리에 앉은 엄마가 대한민국 국도 지도를 손으로 짚어가며 길을 찾던, 그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차도 없고 집도 없다. 그러고 보니 애도 없군.


 그저 어릴 때 바라본 부모님 나이에 다다르면서 품게 된 소회이지 어른이라면 모름지기 뭘 해야한다는 말같지 않은 생각을 내세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올해, 그것도 이번달 안에 내가 얼마나 속성으로, 소위 '어른다운' 삶에 출사표를 던질수밖에 없었는지 공유하려고 운을 뗀 것이지.


 작년의 나는 직업도 없었고, 프랑스로 온 후로 고정적으로 일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2017년 이래로는 또래에 비해 훨씬 학생 기분에 가깝게 살았다. 내가 조바심을 낸다고 없는 직업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학위가 손으로 날아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사는 것만도힘에 부쳤다.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한국 가족들 앞에서 모든 절차를 다 마친것도 아니기에 반만 유부녀인 기분으로 살았다. 동거 시절에 비하면 크게 생활이 달라진 것도 아니라 더 그랬다.


 스스로의 일을 이렇게, 내 의지와는 하등 상관없었다는 듯이,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고 떠드는 것도 서른 넘은 어른이 할 일은 아니다. 그건 사실 좀 한심하다. 그렇지만 내가 체감하기로는 정말, 마치 거대한 공장이 내 궁둥이에 어른 도장을 찍기로 작정한듯한 1-2분기가 지나가고 있다.


 시작은 다니엘의 의문이었다. '우리 이러다 평생 한국에서 식 안하는 거 아니야?' 나는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농담하듯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는데 부모님은 나보다 훨씬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년에는 이사를 한다. 그러니 올해 어떻게든 해치워라.'

'은퇴 시점과 집안 대소사 일정을 고려했을 때 올해 여름이 좋다'

'하나라도 더 해줄  수 있을 때 해라'


등의 다분히 일방적인 논의를 거쳐 제안된 나의 결혼식. 나는 안일하게도 '해외에서 준비하는 결혼식이 뭐 얼마나 빨리 진행되겠느냐' 라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시점에 결혼하는 커플들이 얼마나 많은데, 세상을 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처럼 전통혼례를 염두에 뒀던 우리 커플은 아래와 같은 난관을 마주한다.


A 식장: 올해 여름부터 리노베이션, 리노베이션 후로는 우리집처럼 중소규모 결혼식은 안 받음

B 식장: 인원이 적어도 너무 적다 (40명 정도였을 것)

C 식장: 주차장이 없다

D 식장: 대표가 횡령한 사실이 걸려 감옥에 가면서 운영이 불투명해졌다

E 식장: 매우 아름다우나 애초에 우리 깜냥에 감당할 수 있는 비용 범위가 아니다

F 식장: 하객들에게 무려 식장 굿즈(쓸데없다)를 강매할 뿐 아니라 식장 건물 입장료를 따로 받는다


 조금 기가 빨리긴 했지만 이정도쯤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니엘 말에 동감하기도 했고, 부모님의 강한 의지와 '휴가는 최대한 땡겨도 3주고 직접 준비하지도 못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까지 바랄 상황은 아니다' 라는 나의 적당주의가 합쳐지자 결국 현대식 식장에서 홍원삼에 단령을 입고 현대식 식순으로 결혼하자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나마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이라 감사하게도 이 멀리에서 어떻게든 하나씩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어영부영 청첩장 페이지도 만들고 주변에 알리다 보니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결혼 준비는 잘 되어가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는데, 할일이 그것뿐이라면 그래도 할만했을 것이다. 식구들이 많이 도와주고 친구들도 도와주고 있으니-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어떤것도 '문제'라 할 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일이 하나 둘 쌓이면 가랑비에도 옷이 젖는다는 걸 요즘만큼 실감하는 때가 없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최악 중 최악은 아니지만  글래스도어(글로벌판 잡플래닛) 프랑스 평점 2점을 자랑하는 프랑스판 좋소기업이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는 하루빨리 탈출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만큼! 또 사내 내규에 의하면 이직은 2달 전에 통보해야 하는 만큼! 나는 품게 된 것이다. 5월에 씨를 뿌린 나의 지원서들이 6월에 결실을 맺어 결혼식이 있는 7월을 포함한 6-7월을 이직 고지기간으로 삼으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능청스럽게!!! 한국에서 돌아온 8월에 이 회사를 탈출할 수 있다는 어떤 희망을 말이다. 하지만 프랑스에 와서 내 마음대로 안 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계속 지원은 하면서 12월까지 다닌다 한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마음 역시 품고 있다. 이제와서 실망할까보냐. 그렇다. 이직과 결혼. 여기까지라면 아직도 할만하다.


 다음 난관은 이사준비(보다는 대출준비에 가까운)다. 우리집은 40제곱미터 내외라 두명과 한마리가 살기에는 쾌적하지만 인구밀도가 증가할 시 감당이 안되며 햇살이 아예 들지 않는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그래서 결혼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사하자는 이야기는 계속 있었지만 전세에서 전세를 전전하느니 집을 사는게 이득이라는 생각과 하늘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금리 덕분에 되는대로 미루는 중이었다. 그랬던 것이 어찌하여 지금 주말마다 되는대로 집 보는 약속을 잡아 체크리스트를 들고 동분서주하게되었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집을 사는 모든 이들의 바람처럼 우리도 예산 내에서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고르다 보니 꽤나 긴 시간을 헤매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주에 발견한 꽤 멋진 집에 이런저런 하자가 발견되면서 그런 예감은 슬슬 강해지는 중이다.


 결혼, 이사, 이직이 합쳐지면서 주중에는 이력서를 돌리고 점심시간에는 결혼준비에 빠진 부분이 있는지 보고 주말에는 집을 보거나 가족 행사에 참가하는 시간들이 이어지고있다. 그나마 감사한 것은 5월 주중에 프랑스 공휴일이 3일이나 끼어있다는 것이고, 건강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통제 불가능할만큼 날뛰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하나씩만 돌봐도 만족스럽게 해내기 힘든것들을 어쩌다 보니 세개씩이나 붙들고 있다. 물론 통제 불가한 변수들에 대한 불안을 어느정도 타협한데다 든든한 조력자들이 함께해주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올해 말까지 이것들이 다 이루어지려면


나는 5-6월 안에 이직 승부를 보고, 7월 이전에는 대출 서류에 도장을 찍고 8월에 성공적인 이직을 한 후 9-10월에 이사를 해야한다는 이야기이다. 7월 결혼식이야 크게 걱정할 일이 없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가능한 일일까? 안돼도 뭐 어쩌겠냐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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