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리 Aug 28. 2023

원하는 힘

끈적한 원동력

 내 머리를 한대 퍽 쳐봐도 엉엉 울어봐도 눈이 피곤할때까지 계속 활자를 들여다 봐도 죽자는 생각이 희미해지지 않았던 그날로부터, 나는 오늘도 하루를 더 멀리 왔다. 의사선생님은 잘 계실까? 진료실에서 오며가며 봤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날들을 생각해지면 궁금해지는 것들이 있다. 지금이 2023년이니 우울증 치료가 끝난 후로 4년하고도 조금 더 지났다. 타지에서의 날들은 여전히 만만하다고는 할 수 없어서 가끔 지치고 우울한 날도 온다. 파도가 발 밑의 모래를 앗아갈 때처럼 아찔히 가끔은 그 우울에 끌려간다. 하지만 요즘은 그리 끌려가다가도 어어, 하고 다시 한 발짝 뒤로 가 우울이 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는 게 당시와 지금의 차이인가보다 한다. 요즘은 불안 정도가 높다. 꿈꿨던 생활은 아직 조금 멀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척척 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살면서 이것도 저것도 별 일 아니라는 듯 척척 해냈던 적 자체가 없는데 여태 그 이상을 못 놓고 있다는 게 좀 웃기다.


 사는 건 바보같다. 아니. 바보같은 건 나다. 요즘 나는 새 회사로 출근한지 일주일이 넘었다. 꽤 옛날 아르바이트하러 이동했던, 생활에 여유가 생긴 후에는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었던 정도의 시간을 들여 일터로 간다. 이것이 정규직이 아니고 내가 해외에서 고등교육을 마친 후 일하다가 온 외국인이 아니면 도저히 감수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을 시간이다. 모르는 나리의 모르는 도시에 익숙해지고 나니 또 그 모르는 나라의 다른 모르는 도시에서, 애써 어색함을 내색하지 않으려 걷는다. 그런 상황에 나는 의식적으로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않는다. 눈이 마주치지 않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해서다. 앞만 보고 걷는 내 시야의 양옆에 걸리는 사람들 중에 가끔은 동료들이 있다.


 어느 날은 잘못된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전 날 나는 잘못된 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도로 공사 때문에 정류장 정보가 바뀌었는데 작은 글씨로 쓰여 있어 보지 못했다-. 그런 나를 두번이나 본 것이 이 시야의 양옆에 걸렸던 동료들 중 하나였다.


 출퇴근과는 상관없는, 다른 볼일을 보기 위해 지금껏 타본 적 없는 버스를 기다리는 나를 그는 또 발견하고야 말았다. 세 번째다. 아무래도 세 번째는 좀 너무 많다. 나는 못 보던 차가 내 주위에 멈춰서고 나서야 그 안에 든 사람 두 명이 눈에 익다는 걸 눈치챈다. 내가 이틀동안 세 번째로 틀렸다면 그건 너무 잦지만 내 실책을 똑똑히 본 사람이 두 사람이라면 그것 또한 너무 많다.


 내가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맞는 방향에서 기다리고 있는지를 물어본 두 사람이 내가 -이번에는-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차를 달린다. 신호는 오래전부터 초록이었다. 다른 차들은 무슨 영화에라도 들어와 있는 것처럼 용케 경적을 울리지 않고 기다려 준다. 이 '다른 모르는 도시'는 그런 면에서 상당히 친절하다.


 뭐든 매끄럽게 해내고 싶어하는 나는 이렇게 버스 하나마저 쉽게 타고 있지는 못하다-변명하면 원래도 지하철을 더 편안해 하고 자주 탄다-. 그래도 산다. 오늘도 남아있고 내일도 남을 것이다. 불안에 이마 안쪽이 퍼렇게 얼어붙고 통 집중하기 힘들어지는 날도 있지만, 그 마음들을 썩 귀기울여 들어준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일단은 산다. 그거면 됐다.


요즘 나는 더 많이 원하는 중이다.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편안함, 내 집, 좋은 니트, 부드러운 코트, 더 나은 직장, 더 많은 존중,,


 언제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수치스러워 내 손으로 잘라냈던 '원하는 힘'이 돌아왔다는 건 여전히 부끄러운 부분이기는 해도 꽤 감탄스럽다. 자르고 도려내서 어디 멀리 버리고 왔다고 굳게 믿었는데, 바짝 말라 모래밖에 없다고 느꼈던 내 안에 갈망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이 끈적하고 속물적인 감정이 내 몸속에 도록도록 굴러다니는 동안 나는 이상한 생명력을 느낀다. 거센 바람 속의 마른 행주처럼 이리저리 나부끼느라 세상에 날 묶어놓는 것마저 버거웠던 시절에 비하면 말이다.


 아, 이런 기분이었지. 원하고 원해서 비통해지고 초라해지고 또 그것때문에 아득바득 기어가는 마음이 이랬었지. 오래 전 살던 동네에 온 사람처럼 깨닫는다.


 안녕하세요 체리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독하게 더운 여름을 각자 어떤 이야기와 함께 헤쳐오셨을까요? 여름의 끝에 꼭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을 것을 믿게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