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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Dec 30. 2020

옳은 길 따위는 없는 걸

누군가와 비교되어 한없이 작아질 때마다

  공부를 하면서 가장 센치해지고 감정에 젖을 때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독서실이나 도서관에서 집으로 향할 때이다.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마음은 무겁더라도 상쾌한 아침 공기와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부지런한 사람들 틈에 나도 낀 것 같은 마음에 경쾌하게 시작한다. 반면 저녁 열 시 반, 열한 시가 되면 이미 한잔 걸친 사람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지나가는 틈에서 혼자 다른 세상에 사는 것만 같았다. 보통은 도서관에서 집으로 오기까지의 15분을 친구나 남자친구와의 통화로 헛헛함을 채우기도 하지만, 이런 통화로 나의 헛헛한 마음을 온전히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뿐더러 혼자 추레한 차림으로 한 손에는 도시락을 들고 걸어가는 내 모습을 감추려고 애써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걷기도 했다. ccm을 들으며 기운을 내보기도 하고, 평소 보고 싶었던 짧은 영상을 보며 도서관을 내려오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나를 울게 했고, 위로해주는 음악을 듣게 되었다. ‘지친하루’였다. 취준생을 위한 노래라고 이미 알려진 음악이라고 하는데 나는 2019년이 되어서야 처음 듣게 되었다. 노랫말의 첫 소절부터 끝날 때까지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 같았다.    

  

거기까지라고 누군가 툭 한마디 던지면 
그렇지 하고 포기할 것 같아
잘한 거라 토닥이면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발걸음은 잠시 쉬고 싶은 걸     

하지만 그럴 수 없어 하나뿐인 걸 지금까지 내 꿈은
오늘 이 기분 때문에 모든 걸 되돌릴 수 없어
비교하지 마 상관하지 마 누가 그게 옳은 길이래 
옳은 길 따위는 없는 걸 내가 택한 이곳이 나의 길  
    
미안해 내 사랑 너의 자랑이 되고 싶은데 
지친 내 하루 위로만 바래
날 믿는다 토닥이면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취한 한숨에 걸터앉은 이 밤     

해낼게 믿어준 대로 하나뿐인 걸 지금까지 내 꿈은
오늘 이 기분 때문에 모든 걸 되돌릴 수 없어
비교하지 마 상관하지 마 누가 그게 옳은 길이래 
옳은 길 따위는 없는 걸 내가 좋은 그곳이 나의 길  
   
부러운 친구의 여유에 질투하지는 마 
순서가 조금 다른 것뿐 
딱 한 잔만큼의 눈물만 뒤끝 없는 푸념들로
버텨줄래 그날이 올 때까지     

옳은 길 따위는 없는 걸 
내가 걷는 이곳이 나의 길     

- 윤종신 <지친하루>

  대한민국 여느 취준생, 고시생, 공시생에게 들려주어도 눈물을 훔칠만한 노래다. 집에 가는 길,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친구의 여유가 부러울 때마다, 누군가와 비교되어 한없이 작아질 때마다, 그 누구보다 부모님께 자랑이 되지 못할 때마다 들으며 위로를 얻었다. 도대체 옳은 길이 어딨으며, 누가 친구의 길이 옳은 길이랬는가. 옳은 길 따위가 없다는 말이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구절이었다. 공부하며 겪는 그 순간의 우울, 감정, 기분 때문에 내가 아닌 누군가 때문에 모든 걸 되돌릴 수 없다는 말도 위로가 되었다. 이 좋은 노랫말도 매번 들으면 센치해지고, 우울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꼭 위로가 필요할 때, 그 어느 사람의 위로의 말로도 내 마음을 만져주지 못할 때 꼭 그럴 때만 들으며 잠에 들곤 했다.     


  공부가 되지 않을 때마다 읽고 또 읽고 매해 시험이 끝난 후 읽었던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였다. 까미노길을 완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급하게 부모님으로부터 책을 받아 읽기 시작했던 책이었다. 그 길을 걷던 순간들과 감정들을 이 책을 통해서 기억하고 싶었다. 책 내용을 떠나서 책에 등장하는 지명, 지역과 까미노 길을 떠올릴 수 있는 여러 키워드를 볼 때면, 내가 그 길을 걸었을 때 했던 생각들과 감정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내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남의 이런 저런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자체가 위로가 되었다. 주인공이 엘 세브레이로에서 깨달음을 얻고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던 것과 반대로 나는 끝까지 완주했다는 사실 자체가 힘이 되기도 했다. 순례자를 읽으며 주인공이 깨달았던 만큼이나 나 역시 엘 세브레이로 산을 오르며 정상이나 최고보다 ‘과정’에 집중했던 것을 떠올렸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도착해서도 끝이나 새로운 시작보다 ‘삶의 연속’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왔던 것만큼 내 인생 속에서의 임용시험과 교사라는 직업을 다시 그려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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