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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May 17. 2021

이론 740시간, 실습 780시간의 자격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했다

  이론 740시간, 실습 780시간. 각 6개월씩 꼬박 일 년을 투자해야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했다.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첫 아이와 아직 치마폭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세 살배기를 돌보는 A 씨에게도 시간에 대한 이 같은 정의가 유효할까.   


  건강보험제도 안정화와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고령화 사회로 갈수록 일자리 전망이 밝을 것이라 했다. 무엇보다 나이제한, 경력제한, 전공제한 없이 고졸 이상이면 국가에서 일체 교육비가 지원된다고 했다. A 씨가 아직 엄마의 손이 필요한 아이들을 뒤로하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막상 결심하고 나니 설렜다. 결혼 이후 이어진 임신, 출산, 육아로 어떤 일도 쉽게 시작할 수 없었다. 대학교에서의 전공, 결혼 전에 몸담았던 직종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 와버린 것 같았다. 간호조무사라는 유망한 직업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보장되는 일자리면서 후에 양가 부모님의 노년도 제 손으로 지킬 수 있겠다는 계산까지 가능하게 했다. 천성이 효녀 효부다. 1,520시간을 채운 일 년. 자기 외에 2인분의 몫을 보태 짊어진 A 씨에게 통학 포함 매일 열 시간씩 일 년에 대한 결심은 특별히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이론 740시간이요? 두꺼운 책 앞에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기가 힘들었지만 즐거웠어요. 오랜만에 공부한다는 사실도 설레었고 진짜 직업 세계에 몸담게 될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졌죠. 그런 희망으로 교육생들과 서로 의지하며 버텼던 것 같아요.”     


 기초간호학개요, 보건간호학개요, 공중보건학개론, 실기. 네 과목을 공부했다. 실습 6개월 후에 치러지는 시험이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공부했다. 종일 공부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함께 하는 동료들이 힘이 되었다. 주간 반에만 적용되는 국비 지원을 받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둔 사람, A 씨처럼 아이를 맡기고 공부하러 나온 사람,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진학 대신 이 길로 들어온 사람, 50대에서 20대 초반까지 연령과 경력이 다양했다. 뜨겁게 불태우던 이론 기간이 지나고 실습 기간이 왔다. A 씨는 다행히 집 근처에 있는 병원에 배정되어 아이들 돌보는 데 있어 덕을 많이 보았다. 첫 아이는 초등학교까지 스스로 등하원이 가능했고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늦게까지 보육이 가능해서 퇴근 후에 바로 찾으러 가면 되었다.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도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에 우선 마음이 편했다.      


“실습 780시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다리가 퉁퉁 붓고 어깨, 허리, 손목, 안 아픈 구석이 없었어요. 집에 돌아가 아이들 좀 봐주고 누우면 다음 날을 생각해서 자야 하는데 생각이 복잡해져서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책으로 공부만 하다가 현장에서 부딪히며 느낀 것들은 A 씨를 혼란스럽게 했다. 첫째로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던 A 씨는 온종일 온몸을 쓰는 일이 힘에 부쳤다.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의료용품들을 정리하고, 침대 시트를 갈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환복을 돕고, 식사나 배변을 보조하기도 했다. 간호조무사라는 직업은 굉장한 체력을 요하는 중노동임을 몸소 깨달았다고 했다. 두 번째로 느낀 것은 병원의 위계질서였다. 아무리 경력이 많고 노련한 조무사일지라도 갓 현장에 나온 신입 간호사보다 처우가 낮았고 어떠한 결정권 없이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야 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의 넘을 수 없는 경계를 겪으면서 병원 내의 권력 관계를 보게 되었다. 또한 실습생들의 노동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노동으로서는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다. 교육생들은 이름도 없이 ‘학생’이라고 불려 다니며 갖은 잡무를 도맡아야 했다. 낮에는 긴장상태로 일하고 밤에는 녹초가 된 몸으로 까만 천장을 마주하고 생각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결정했더라면 간호조무사보다 간호사를 선택해서 매진했을 텐데. 그렇다면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안정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병상 시트를 갈면서 자꾸 과거로 걸어 들어가요. 출산 이전으로, 임신 이전으로, 결혼하기 전으로, 또 철부지 20대 시절로 돌아가는 거예요. 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을까. 왜 생각하지 못 했을까. 나 자신과 결혼과 출산과 육아에 대해 곱씹으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겁니다. 간호조무사 하나만 보고 일 년을 쏟아부었는데 막상 현장에 나와 보니 간호사라는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간호사가 되는 방법 같은 걸 검색해보기도 하고요. 4년제 대학을 다시 들어가야 가능하더라고요. 학사편입 경우에 조무사 경력과 토익점수를 요하고요. 학비나 시간만 놓고 따지더라도 내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길임을 깨달았죠.”     


A 씨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자신을 추슬러가며 실습을 마무리했다. 실습기간 중 책을 펼쳐볼 여유는 없었다. 지난 이론 기간에 공부한 내용으로 시험을 치르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냈다.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계를 책임져야 해서, 아이들이 자주 아파서, 나이 들고 공부가 어려워서, 실습 시 근무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와 같은 다양한 이유로 적지 않은 동료들이 중도하차했지만 A 씨는 끝까지 해냈다. 다행히 실습했던 병원에서 자리가 날 것이라고 했다. 3교대가 될지라도 근무지와 집이 가까웠고 오래 살았던 동네라 아이들 잠깐씩 부탁할 이웃이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의 전근으로 인근의 소도시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A 씨는 꿈꾸던 취업을 미루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학교와 유치원 적응을 돕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우선하기로 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그녀는 동네 병원 몇 군데에 적극적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어렵게 취득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놀리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면접을 갔더니 아이 나이를 물어요. 10살, 6살이라고 하니 한참을 말이 없어요. 그러더니 ‘ 작년에 자격증을 따셨네요. 경력도 없고 자녀들도 아직 어리고. 죄송합니다. 우리 병원과는 맞지 않겠습니다.’ 이러는 겁니다. 병원마다 비슷한 소리를 했어요. 참담했죠.”      


 A 씨가 몇 차례 구직실패를 겪는 동안 둘째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게 되었다. 유치원 하원은 4시에서 7시까지도 가능한 데 비해 학교의 하교는 12시에서 1시인 것을 감안하면 당분간 A 씨는 구직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의 이론 740시간, 실습 780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 시간을 다 하기 위해 독감으로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 아이가 꼭 참석하길 당부했던 생애 첫 학예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엄마와 함께 지내기를 원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주말에도 공부와 실습에 매진했던 그녀의 치열했던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는 한 끼의 식사 외에 노동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던 그녀의 중노동 780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의 공부와 노동의 대가로 빈집에 남겨졌던 아이들의 외로운 시간들에 대해 생각한다.     


“자격증을 취득해도 자격이 안 된다는데 자격증이 무슨 소용인가요? 실질적으로 구직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과 교육을 원해요. ‘경력이 없어서’ 라는 말이나 듣고 뒤돌아 나와야 하는 자격증 말고요. 그리고 주부 구직자에게 ‘아이가 어려서’ 와 같은 이유로 거절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자라고 나면 ‘경력은 없고, 나이는 많아서’ 와 같은 말을 들을까 봐 겁이 납니다. 그런 말들을 듣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해요. 갈 데가 없잖아요.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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