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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Oct 01. 2020

9. 한가위

#90일간의글쓰기대장정 #그냥쓰기 #한가위


1.

추석이다. 21살 되던 해 추석까지는 엄마 가족들과 아빠 가족들을 모두 보러 갔다. 불편하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럴 배짱도 돈도 없었다. 덕분에 남들 추석 이야기할 때 껴서 말 한마디 얹을 수 있는 경험을 했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빠가 집을 떠난 뒤 추석은 매년 조용했다. 엄마와 동생과 함께 튀김을 튀겼다. 내가 좋아하는 새우, 엄마가 좋아하는 오징어, 동생이 좋아하는 쥐포. 거기에 더해서 왠지 있어야 할 것 같은 고구마. 그렇게 하루 추석 분위기를 내고서는 별다를 것 없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주말 알바를 하러 갔다. 동생과 엄마는 집에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했다. 가끔 동생도 친구들을 만나러 갔고, 엄마는 혼자서 삼촌 집에 들러서 그의 가족들을 만났다.

2.

올해 추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제는 튀김을 튀겨먹고 오래간만에 신변잡기적 이야기들을 나눴다. 한바탕 작은 축제가 끝나자 이내 집이 답답하고 좁아져서 잠시 밖을 나왔다. 거리는 화려하고 사람으로 북적인다. 새삼 내가 사는 도시가 얼마나 크고 시끄러운지 체감한다. 쓸쓸하지는 않다. 너무 시끄러울 뿐. 어릴 적 친구들과 자주 오던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 혼자 앉아있었다. 안심이 된다. 돈을 아무리 벌어도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서는 살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3.

애인과 통화를 하다 ‘가족이 주는 안정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에 ‘가족은 불편하고 최대한 자주 안 볼수록 좋은 관계’라는 사상을 가진 우리인데, 이날따라 조금 결은 다르지만 각자 가족에게서 안정감을 느꼈다. 나는 엄마와 근처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 든든함을 느꼈다. 엄마가 대단한 이야기를 해주거나, 엄청난 선물을 해준 것도 아니었는데 참 따뜻했다. 딱 하루 정도 더 따뜻했다. 

4.

오늘 아침 엄마가 우리 형제에게 ‘아빠’에 대해 물었다. 연락은 하는지, 전화는 종종 오는지. 우리가 아빠와 ‘내통’하고 있는지에 대한 심문인지. 진짜 궁금해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편했다. 딱 10분 전까지 안전하다고 느꼈던 내 방이 불편해졌다. 동생도 나도, 엄마도 아무도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때 확신했다. 어제 느꼈던 안정감은 신기루 같은 것이라고.

5.

수없이 읽고 듣고 써왔던 정상가족의 모습. 명절이 되면 자식과 부모가 손잡고 장을 보고 함께 명절을 준비하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 평생 거부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게도 그리운 모습이었고,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남들처럼은 아니더라도 그 엇비슷하게라도 흉내라도 낼 수 있기를 원했다. 이틀 정도 느꼈던 그 안정감은 성공적인 정상가족 흉내에 대한 뿌듯함이었다.

6.

하지만 아빠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흉내는 끝났다. 축제는 막을 내렸다. 우리는 정상가족이라기엔 너무 큰 강을 건넜다. 정상가족이 찢겨나가는 순간에 받은 상처를 각자 가지고 있다.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안정이 깨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늘 안고 산다. 입 밖에 꺼내는 순간 균열이 시작될까 말도 꺼내지 못하지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엄마와 동생의 마음까지 다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맘은 그렇다. 

7.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안정감을 만들어가기보다 여기저기 찾아다니기만 하는 세태를 비판했다. 나 역시 실상 다르지 않았다. 내가 한 말들은 ‘정상’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질투였다. 나 역시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안정감을 만들어가기보다 그 공간을 피해 다니며 안정감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불가피하다 할 수 있지만, 이 나이 먹고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넘어갈 수 있는지. 자신이 없다. 

안정감 대신 불안과 의심을 학습한 내가 안정감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여한 사람이 되겠다며 마음을 들여다보지만 마음속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잊을 만하면 생겨나고, 가라앉을 만하면 떠오른다.

8.

사람들은 그 수많은 세월을 살아가면서 왜 매년 추석만 되면 고향으로 향할까. 나는 그것이 각자 삶의 공간에서 안정감을 만들어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 믿는다. 발 딛고 있는 곳이 단단하고 평화롭다면 굳이 내려갈 이유는 없다. 고난을 뚫고 향한 그 길에 이미 잘 만들어진 안정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를 귀경길 고속도로에 올린다. 

천국은 고향에 없다. 평화는 수년 전 가족의 기억 속에 없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어딘가부터 출발할 수 있을 뿐이다. 채 완성되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과거의 천국보다 내 삶의 공간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그 작은 평화라도 만들 수 있기를. 내 한 몸 뉘고 있는 방바닥부터가 평화의 공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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