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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Sep 12. 2020

8. 선택. 억울.

#90일간의글쓰기대장정 #그냥쓰기 #집착하지않기 #선택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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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니 모습은 수많은 너의 선택의 결과다. 받아들이고 책임져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아도 비슷한 뉘앙스의 이야기는 '진리'처럼 떠돌아다닌다. '진리'따위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하더라도 찾지도 않을 세상이건만 자칭 '진리'는 많이 떠다닌다. 저 '지혜로운' 문장을 볼 때면 마음이 복잡하다. 첫 마음은 후회다. 조금 더 공부할걸. 조금 더 부지런히 살걸. 남들처럼 할걸. 더 아껴서 살아갈걸. 저 문장을 기준으로 보면 내 삶은 후회투성이다. 더 공부해서 높은 학벌의 대학에 입학하고, 더 일찍 취직을 준비하고, 더 일찍 노동을 해서 돈을 모으고. 내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많았는가 생각해보면 후회막심이다. 결국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든 건 나 자신이구나 싶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면 마음이 상처를 입는다. 조금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 내 삶은 지금 현재가 늘 최선이다. 현재에서 과거를 아무리 들여다보고 후회한들, 현재를 망각하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선택은 바뀌지 않을 거다. 확신한다. 지금 모습이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내가 가진 능력과 조건에서는 최선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리 믿는다. 


한편으로 억울하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 말에는 전제가 있다. 선택이 실질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실질적이라 함은 외부 조건에 의한 압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에 기반한 것이어야 한다. 뜬구름 잡는 소리다.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조건을 많이 가지고 살아간다. 한정된 수명, 한정된 육체, 한정된 관계. 이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선택이라 할 수 있는 국적, 부모 그리고 평생 불릴 이름조차 선택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한 인간의 삶이란 선택의 연속이라기보다 아주 거대한 짐을 등에 업고서 작은 고민을 이어나갈 뿐이다. 어깨에 짐을 내려놓는 선택지는 없다. 오솔길로 갈 것인지 시멘트 길로 갈 것인지 딱 그 정도 차이. 내 성격으로 인해서. 내 부모의 성질머리로 인해서, 태어난 집의 경제적 조건에 따라서. 그렇게 만들어진 지적 능력과 취향, 여유에 따라서. 삶에서 큰 줄기라고 할 만한 것들은 노력할 새도 없이 결정되기도 한다. 기껏해야 작은 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뿐인데. 모든 것이 선택과 노력, 책임이라면 억울하다.


자유롭게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왜 책임을 져야 하는지. 노력하지 않는다고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개인이 하는 대부분의 선택은 자유롭지 않고, 그래서 쉽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의 궤도에서는 그 행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의 삶은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 의식적인 개입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 거다. 공동체 차원에서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은 분명 있겠지만. 그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전가하는 일이 그리 쉬운가에 대한 고민이 든다.


그래서 책임은 사회적 공동체, 집단에게만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만 작은 부분이다. 큰 부분은 그의 삶 속에서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시절부터 차근차근 쌓여왔다. 큰 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자연스러운 삶은 흩어지지 않는다. 내가 책임지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겁한 인간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개인의 선택과 책임. 공동체가 만들어온 개인에 대한 책임. 그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 그래서 개인에게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살아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분명 인간은 스스로 노력하고 바꾸어나갈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100% 그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가 해서다. 그런 개인들을 만들어온 우리 공동체에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공고히 만들어진 개인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들 몇 명은 사회가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책임지지 않고 사회를 위협하는 개인들은 결국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내재화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네 공동체가 위협은 일상적이되, 삶의 안전, 사과와 반성 따위를 추구하지 않는다. 개인보다는 훨씬 개입할 여지가 많을 이 넓은 공동체에 책임을 묻고, 더 이상 그런 개인들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비판의 화살은 하다못해 비난이라도 공동체로 쏘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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