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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Sep 10. 2020

7. 몸 아껴 쓰기

#90일간의글쓰기대장정 #그냥쓰기 #몸아껴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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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마음이 가라앉고 과거의 인연이 떠오르겠지만. 난 그렇지 않다. 이목구비가 고루 간지럽다. 눈이 빨개지고, 코에는 콧물이 줄줄 흐른다. 목은 간지럽고 불편한 이물감이 들고, 기침은 잊을만하면 튀어나온다. 흔히 말하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지병으로 달고 살고 있다. 작년까지는 증세가 나타나도 병원을 가지 않았다. 딱히 완치 방법이 있는 병도 아니고, 최대한 바깥공기를 맡지 않으면 그럭저럭 살만했으니까. 그냥 나만 기침하고 조금 힘들면 되는 문제였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올해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기관지 증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할 때나, 공공장소에서 에어컨 바람을 들이 마시고 기침이라도 하면 의심을 받는다. '저자는 확진자인가?' 나 스스로도 걱정이 된다. 비염, 독감, 감기를 증세로만 구분하기는 아주 어려울 테니까. 사람들의 시선도 두렵고, 나 역시 확진자일까 무섭다. 이런 이유로 10년 만에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평일 낮이라 손님, 환자? (병원은 손님이 환자를 손님으로 받는 서비스업이겠지.)가 없어서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알레르기 비염으로 왔다고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바로 코에 내시경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이후 이어지는 접신과 같은 경지의 진단.

"이야 슬슬 부어오르네요!"

"어어 목에 빨간 거 생겼네 목에 이물감이 좀 있다 그죠?"

"코 뼈가 약간 휘었네요 알고 있죠?"

"전형적인 알레르기성 비염이네요. 그래도 가을은 봄보다는 낫다 그죠? 봄이 더 힘들어."

"자 코 세척합시다. 소리만 내세요."

"어 눈도 빨갛네 안약도 드릴까요?"

'알레르기 비염'. 딱 이 두 단어만 말했을 뿐인데 일사천리 같은 진단과 치료가 이어졌다. 아마 너무 전형적인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가 많이 볼 것도 없었겠지 싶다. 교과서적인 환자. 오래간만에 코에 약도 넣고, 식염수 세척도 하고 나니 한결 숨쉬기가 편해졌다. 삶의 질이 올라갔다. 한 20점 정도. 어릴 적에는 비염으로 자주 이비인후과에 들렀는데 오래간만에 오니 반갑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에는 그렇게 무섭던 이비인후과 장비들이 이제는 뭐라도 집어넣어도 좋으니 그냥 증세만 완화해달라는 부탁으로 바뀌었다.

쏜살같은 진료가 끝나고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생각이 많아지는 단어. 

'코 뼈'

내 몸은 코부터 척추까지가 약간 특정한 방향으로 휘어있다. 처음 조깅하다가 골반이 아파서 들른 정형외과에서 처음 알았는데, 그 이후 충치를 때우러 갔던 치과, 오늘 이비인후과에서도 들었다. 치과의사의 말을 인용하자면 내 치열이 되게 고르지 못한 편인데, 이 치열이 단순히 보기 안 좋은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이빨이 제자리가 아닌 곳에 나게 되면 코 뼈도 휘고, 그와 연결된 척추, 골반 몸의 코어 전반이 휘어버린단다. 이대로 더 나이가 들면 잇몸이 내려앉거나 하는 더 큰 불상사를 겪을 수도 있단다. 그래서 치과의사는 나에게 교정을 권고했다. 물론, 교정이라는 것이 비염 걸려서 식염수 세척하는 것 마냥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라 시도는 못했지만.

350여만 원에 달하는 치료비와 1년간의 기간까지. 당장 시도할 수 없는 일이다. 비싸다고 마냥 안 하기에는 척추와 몸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잇몸에 악영향을 주어서 더 큰 질환에 걸리면 그보다 비싼 값을 치를 테니 버틸 수 만도 없다. 좀 아끼고 더 모아서 교정을 해야겠다. 다른 치과병원도 더 가보아야겠지만. 치과의사의 말이 맞는다면 치열을 건드리지 않고서 도수치료로 척추를 교정하거나, 비염약을 먹는 것은 끊임없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근원적으로 안 아프고 편하게 살려면 이를 건드려야 한다.

물론 교정할 돈도 없고, 내 치과보험은 교정은 보험이 안되기 때문에 돈부터 모아야겠다. 아끼고 아껴서 도수치료, 치과치료, 비염치료를 하며 잘 관리하며 사는 수밖에. 교정은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줄 테니 먹고살 만한 직장을 구한 뒤에 치료를 시작해야지.

25살 정도가 넘어가면 성장이 멈추고 서서히 죽어간다는 말을 들었다. 몸의 사용 기한은 생물학적으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아무리 관리해도 강해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엔 부서진다. 몸은 많이 쓰고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최대한 아껴서 적절한 곳에만 쓰라는 어르신들의 말이 뼈에 사무친다. 이미 여기저기 삐거덕 거리는 중이니 병원을 두려워하지 말고, 쓸데없는데 쓰는 돈을 줄여서 몸에나 잘 투자해야겠다. 주식이고 뭐고 몸이 움직여야 의미가 있는 법. 일단 투자는 내 몸과 마음에 하는 것이 1번이라 믿는다. 

조금씩 죽어가는 내 몸이 아프지 않게 무사히 죽을 수 있도록 부단히 정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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