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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Sep 09. 2020

6. 헌신

#90일간의글쓰기대장정 #헌신 #그냥쓰기 #글쓰기 #작성근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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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학창 시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관통하면서 손에 꼽는 행복한 기억들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환경 미화(?)라는 일을 했다. 바닥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은 이름과 달리 교실 뒤에 있는 게시판을 꾸미는 작업이었다. 보통 반장 부반장을 위시로 하는 이런저런 간부들이 방과 후에 모여서 작업을 했다. 나는 간부가 아닌 비간부 학생이었다. 간부들과 친해지고 싶었는지 손을 번쩍 들고 환경미화에 동참했다. 하루 이틀 일을 하다 보니  환경 미화 프로젝트에 당당한 일원이 되어있었다. 일도 나름 열심히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들떠서 오버한 것 같아서 부끄럽지만. 그때는 최선을 다했다. 환경미화가 끝나던 날에 선생님이 돈을 주고 함께 일을 했던 간부들과 학교 근처에 있던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고 집에 갔던 기억. 꽤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단둘이 걸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고, 선생님과 친구들한테 인정받는 느낌이 좋았다. 

고등학교 때 도서부를 했었다. 이름만 도서부지 실제 업무는 도서관 사서 노동자들과 달랐다. 책을 대출해 주고, 반납하는 업무도 했지만, 부원을 모집하는 주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학교로 배부된 교과서를 전부 커다란 비닐에 넣어서 정리한 다음에 그 해 1학년이 되는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작업을 했다. 책을 나르고, 분류하고 배부하는 작업에만 꼬박 3일 정도 걸렸다. 고된 노동이 끝나고 나면 교감 선생님이 내놓으신 법인 카드로 패밀리 레스토랑도 가고 노래방도 갔었다.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즐거움, 고된 노동이 주는 이상한 쾌감. 우리만 공유할 수 있는 경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느낌. 지금 하라고 하면 시급 2만 원을 준다고 해도 망설이겠지만, 그때는 그 인정받는 느낌과 밥 한 끼면 아무 불만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사회혁명을 위해 힘쓰는 학생운동가로 지내면서 고된 삶은 정점에 이르렀다. '노동'이 아닌 '활동'을 했다. 일을 해도 임금을 받기는커녕 회비를 꼬박꼬박 내면서 살았다. 힘들었지만 뿌듯했다. 보잘것없는 내 능력이 쓰일 수 있어서 좋았고, 칭찬해 주고 토닥여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다. 사랑받고, 인정해 주는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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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해온 노동을 토대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인간인가'라는 나름의 판단을 내리게 되는데. 최근에 내린 결론이 있다. 난 사랑받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이쁨 받고, 능력을 인정받고, 나를 인정해 주는 존재에게 충성하고 그를 위해 헌신하고 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을 좋아한다. 애정결핍이라 늘 연애를 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나를 독점적으로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의 존재가 늘 필요했다. 그것이 나에게 강한 삶의 동력이 되고, 큰 기쁨이 되었다. 그 존재는 애인이라는 한 개인이기도 했고, 더 어릴 적에는 아빠이기도 했다. 공간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이나 선배이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인격을 넘어선 어떤 조직, 단체이기도 했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의존적이어서 걱정했다. 타인의 사랑이 삶의 이유인 사람은 너무 쉽게 불행해지니까.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누군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나는 불행하다. 내가 아무리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도 누군가 사랑해 주면 나는 행복하다. 내 행복의 기준이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손에 맡겨져 있다. 스님도 그러고, 상담 선생님도 비슷하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든 과도한 의존은 위험하다고. 타인의 사랑은 내 노력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저 타인의 판단과 경험에 따를 뿐이다.

관계에 문제가 생겨서 친구와 절교하고, 애인과 이별하고, 사람들과 멀어질 때가 있다. 그 순간이 너무 힘들다. 이미 일은 일어났고, 관계는 변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나를 사랑해 주고 아껴주던 사람들이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두렵다. 한동안 지나간 애정을 붙잡아 보기 위해서 무리하게 연락을 하기도 하고, 마음에 없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가깝지 않은 관계에 무리하게 다가가려다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요즘은 안정적인 관계가 맺어지기도 했고, 인간관계가 늘 함께 붙어서 사랑하며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이다. 3개월에 한 번일지라도 연락을 해주는 형이 있어서 고맙고, 티격태격해도 나와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내어주고 미래를 함께 그려주는 친구가 고맙다. 상처도 많이 주고받았지만 어쨌든 같이 살아주는 가족에게 감사하다.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사람들과 연락이 닿고, 소식을 접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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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사회 운동'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수록, 운동하지 않는 삶이 그려지지 않는다. 싫다. 극도로 아끼며 살아갈지언정 투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더 싫다. 나와 비슷한 인간들. 나약하고 찌질하고 때론 위대하고 존엄한 그 인간들과 무엇을 도모하고 나누는 일이 좋다. 혹은 나보다 작은 생명들이 아무 이유 없이 버려지고, 죽임을 당하고 멸시 당하는 일에 목소리를 내고 싶다.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을 때 행복하다. 누가 인정해 주든 아니든 난 그런 일들이 좋다. 단순히 사랑받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 행복을 느낀다. 크든 작든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넘어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 그것이 내 삶에 큰 기쁨이다.

대학생활 내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삶을 지탱하지 못하고, 지속 가능한 기반이 없으면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선한 의도로 행한 일이 사람을 다치게 하고, 나를 무너지게 했다. 지향은 사라지고 일만 남았다.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지도 못하고, 크고 대단하고 위대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더 이상 그건 싫다. 대단한 일은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행운이나 기적의 영역이다. 내 삶의 테두리를 넘어선다. 그것에 기대어 살고 싶지 않다. 

어떤 일이든 내가 쓰일 곳을 만나서 조금이라도 능력을 발휘하고, 만들어가고, 배워가면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어디든 쓰일만한 능력을 갖춘 인간이 되어야겠다. 실무에 필요한 능력일 수도 있고, 관계를 맺는 방식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함부로 타인에게 내 삶을 위탁하지 않고, 스스로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지내기 위한 여러 삶의 조건을 유지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어디서 무슨 운동을 하며 살아갈지는 모른다. 그저 적절한 곳에 쓰임이 있는 인간이길 바란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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