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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Oct 14. 2020

10. 내 어린 시절.


‘우리는 지금보다 나이가 적었을 적에 순수했을까.’


‘아.. 순수했던 내 어린 시절.’


어디선가 들어보았고, 누구든지 하는 말. 나 역시도 과거를 회상할 때면 추임새처럼 내뱉곤 했던. 이 당연한 말에 생긴 의문.


“28년 살아온 내 마음은 이토록 불안하고, 복잡하고,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든 해보려고 애쓴다. 그런데 18년 전에 내가 ‘순수’했다니”


28년 만에 사람이 이 정도로 만들어진다면 ‘성장’했다는 표현보다는 ‘재구성’이나 ‘재탄생’이 더 어울린다. 아주 얕게 내린 결론.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순수했던 적이 없다.’ 순수’란 무엇인가. 어떤 상태를 순수하다고 부를까. ‘티 없이 맑은 상태.’


세상의 빛을 본 뒤로 티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티’는 내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눈에 강한 햇빛이 들어오면 찡그린다. 시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마음에 위협을 느끼면 호흡이 가빠지고 근육이 긴장한다. 위협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몸이 수축한다. 자극과 반응의 이중주. 이것이 ‘티’다. ‘티’ 없이 살아있는 존재는 없다. 티가 없다면 그는 이미 죽었다.


사람은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능력은 대상을 판단하지 않는다. ‘선과 악’ ‘도덕과 비도덕’을 구분하지 못한다. 흔히 ‘성장기의 인간’은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고들 한다. 스펀지는 청산가리든 세제든 물이든 김치 국물이든 가리지 않는다. 능력의 한계까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구분 없이 놓인 물체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스펀지에게는 없다. 불필요하다.


사람의 본성이 스펀지에 가깝다면. 그 안에 ‘선과 악’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한 인간이 흡수했던 결정적 경험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그 경험이 황홀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삶을 온통 아름다운 꽃 천지로 받아들인다. 끔찍한 폭력과 억압의 경험을 흡수한 사람은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한 지옥으로 보인다.


확률적으로 이 사회에서 결정적인 경험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흡수할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어서가 아니다.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토대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비로운 부모. 안정적인 집안 경제. 폭력에서 빗겨나간 학창 시절.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살아가는 인간은 극히 적다.


어린 시절 나는 순수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계산하고 고민했다. 반에서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아이들의 무리에 끼려고 안간힘을 썼다. 적은 용돈으로 살아보려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발버둥 쳤다. 맞지 않으려고 강한 아이들 옆에 붙어 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인간은 순수하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 도움이 되는 무엇이든 빨아들인다.


그러니 ‘순수한 어린 시절’을 운운하는 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먹고살 만해서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보는 것이다. 살만하니 과거도 살만해 보이는 것이다. 지금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은 어디를 둘러봐도 죽을 것 같은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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