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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Aug 23. 2022

휴가x대타x근로기준법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휴가를 주자. 


‘휴가’다. 바닷가 도시라는 지역적 특성과 편의점이라는 업종의 특성이 합쳐져서 여름휴가철에 노동강도가 극도로 높아진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밤낮으로 할 것 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진상 손님은 일상이 되고, 종종 손님들에게 위협을 당하기도 한다. 가게 매출은 30% 이상 뻥튀기되지만 성장의 열매는 사장님의 차지다. 노동이 고되든, 편하든 최저임금은 나의 고정 임금이다. 억울한 마음이 들지만 최저임금은 법률을 토대로 노사정 합의로 정하니 그렇다 치고, 대부분의 편의점 노동자들이 주휴수당이나 4대 보험을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머리를 박박 긁으며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은 ‘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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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은 연차 유급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근로한 기간이 1년 미만인 나 역시 근로기준법에 따라 1개월 개근 시 1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휴가를 갈 수 없다. 사장님한테 부탁하고 다른 타임 직원분들에게 사정해서 하루 이틀 근무를 빼서 갈려면 갈 수 있겠지만, 나는 그 기간 동안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임금이 깎인다. 근로기준법은 휴가를 ‘유급휴가’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나에게 유급휴가는 내 돈 내고 손해를 감수하면서 휴가를 가라는 뜻이다. 



**제60조(연차 유급휴가)** ① 사용자는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개정 2012. 2. 1.>

② 사용자는 계속하여 근로한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또는 1년간 80퍼센트 미만 출근한 근로자에게 1개월 개근 시 1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개정 2012. 2. 1.>



편의점뿐만 아니라 카페 등 5인 미만에서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휴가를 갈 수 없다. 아르바이트 노동을 해도 휴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고, 알고 있더라도 본인이 휴가를 가는 동안 노동을 해줄 사람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휴가가 사장의 선의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이 부여하고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휴가를 감으로서 발생하는 리스크는 고용주가 대비하고 감당해야 한다. 도저히 대신할 노동자를 구할 수 없으면 임금으로라도 지급해야 한다. 휴가가 선의라면 감당은 노동자가 해야겠지만, 휴가는 근로기준법이 부여한 신성한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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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그렇고 제도가 있을 뿐이지 현실은 녹록지 않다. 휴가를 가려고 하면 노동자들은 다른 시간 때 근무하는 동료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아쉬운 소리를 하며 부탁해야 한다. 동료 노동자가 흔쾌히 근무를 바꿔주면 다행이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거나 모종의 이유로 거절당하면 휴가는 그대로 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자들 중에 누가 놀러 간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다른 사람한테 피해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휴가를 가기 위해서는 다른 노동자에게 부탁을 해야 하고 동료가 동의한다고 해도 동료 입장에서는 노동을 추가로 하거나 원치 않는 시간 때 근무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편의점, 카페 등 5인 미만 사업장에서 휴가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본인이 근무 없는 날에 맞춰서 알아서 짧게 놀거나, 다른 노동자들에게 근무를 바꿔달라고 하는 것이 최선이다. 휴가는 분명 권리라고 법으로 명시해두었지만, 휴가를 감에 따라서 발생하는 어려움은 고용주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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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트에는 제빵기사가 아프거나, 육아휴직 등의 이유로 근무를 서지 못하게 되면 대신해서 근무를 들어가는 ‘대리기사’가 있다. 파리바게트 노조의 싸움에 관한 뉴스를 보던 중 알게 된 것인데, 물론 문제가 많다. 대리기사의 절대적 숫자도 부족해서 육아휴직이나 병가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많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아마 큰 변화가 없을 테니 여전히 그러고 있을 거다. 다만 ‘대리기사’라는 제도를 본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 부러웠다. 편의점 노동을 하면서 휴가를 가기 위해서는 결국 ‘대타’를 구해야 한다. 사장님이나 다른 노동자가 해주면 다행이지만 모든 편의점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운과 선의에 휴가라는 권리를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각 프랜차이즈 편의점 본사들이 대리 근무자를 직접 고용하거나, 명단을 등록해서 가지고 있다가 개별 점주들이 대리 근무자를 요청하면 인근 지역에 있는 희망자들을 점주와 연결시켜서 근무를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대리 근무자들은 기존 프랜차이즈 경력이 0년 이상 된 사람으로 구성한다던가 하는 조항을 걸어두고 모집을 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그 대리 근무자의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당연히 본사가 지불해야 한다. 초단시간으로 일하게 될 대리 근무자들을 각 점주가 일일이 근로계약을 하기도 어렵고,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계약을 맺어서 임금을 지불하고 각 매장으로 가서 노동력만 제공하는 식으로 운영하면 된다. 


어떤 제도든 만들어 놓고 나면 문제야 생기겠지만, 버젓이 있는 휴가를 눈치 보여서  쓰지 못하고 임금으로도 보상해주지 않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를 바꿨으면 좋겠다. 휴가 가려고 대리 근무자 요청하는 정도 사회에서 주휴수당, 4대 보험을 떼어먹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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