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 Aug 29. 2022

#올백머리

아빠의 올백머리와 강한 사람.

# 올백머리


  기억 속 아빠의 머리스타일은 단 하나였다. 올백. 앞머리를 인중까지 길러서 뒤로 넘겨버리고 홈키파 같은 스프레이로 고정시킨 머리. 아빠는 그 머리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심지어 노랗게 바랜 사진 속 젊은 아빠도 올빽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사진 속 아빠의 머리는 내 기억보다 진한 검정이었고 양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는 것.  


  요즘 유미의 세포들 '구웅 머리'를 하기 위해 머리를 기르는 중이다. 보기에도 지저분하고 생활에도 불편하다. 지저분한 머리는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히키코모리의 상징으로 덥수룩한 머리를 꼽는 이유가 있다. 미용실에 가서 깔끔하게 머리를 정리하고 나오면 약에 취한 것처럼 자신감이 생긴다. 속된 말로 뽕에 취한다. 거울 속 자신이 잘생겨 보이고 사람 많은 곳에도 가보고 싶어 진다. 머리카락 좀 정리했을 뿐인데 그전과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나에게 늘 강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썼던 아빠도 자신감을 위해 머리를 올려서 이마를 까고 다녔던 것이 아닐까. 늘 자신감 넘쳐보이는 머리를 해서 평생을 '뽕'에 취해서 지냈던 사람. 아빠는 내 기억에서 처럼 강한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죽겠다며 내 품에서 울었던 날. 그 끔찍했던 날. 아빠는 죽어가는 큰 강아지 같았다. 힘없이 훌쩍이기만 했다. 늘 스프레이로 단단히 고정되어있던 머리는 힘없이 풀어져서 몸의 움직임에 따라 형편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너무 약하고 잘 바스러지는 사람이어서 약한 모습을 감추고 싶어서 강직해 보이는 외모를 만들고 그 뒤로 숨었던 것 같다. 약하게 보이면 무시당하고 공격당할 것이라는 공포를 삶에서 배웠을 터다. 아빠는 그 교훈으로 뿌리채 강한 사람이 아니라 화려한 잎사귀로 무장한 강해 보이는 사람이 되길 선택했다. 늘 서울대 나온 판검사들도 자기 앞에서는 고개를 쳐들지 못한다고 말하던 아빠였지만 실은 늘 숨어 다니고 도망치는 약한 사람이었다.


  아빠가 살아있다면 지금은 어떤 머리스타일 일까. 집을 떠나던 날 아빠의 머리는 깔끔한 올백이 아니었다. 정리되지 않고 지저분한 긴 머리였다. 스프레이로 고정시키지도 않았고 색은 옅은 회색이었다. 마침 지금 내 머리 길이였다. 아빠는 삶의 어떤 부분을 경과하는 중일까. 여전히 아파할까. 지금도 힘겨울까. 내 코가 석자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아빠가 이해된다. 마주보고 이야기 나눌 자신은 없지만 가끔 그립고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긋지긋한 문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