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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l 23. 2024

첫 글.

에세이, 사랑하는 마음, 러브레터.

글을 쓰기 전에 가장 망설여지는 것은 어떤 어투로 글을 써야 할지 하는 것이다. 상대방과 대화를 한다고 했을 때로 치자면 어떤 어투로 말을 이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조금 편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거나, 상대방과 거리를 좁히기 위한 방안으로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어중띤 어미를 쓰곤 하지만 글을 다시 소리 내어 읽어보면 어색하다. 내가 평소 대화에서도 반말을 쓰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쓸데없이 내 곁을 내어주고 거리를 좁히는 일을 불편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있지만 나는 존댓말로 글을 쓰는 것이 편하고,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존댓말로 앞으로 글을 써 내려갈 작정이다. 


존댓말이 불편하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나에게는 아주 편안한 소파에서 그리 가볍지 않은 재즈를 들으면서 적당한 견과류의 풍미를 가진 드립커피를 마시는 그런 주말과 비슷하게 아주 편안한 일이다. 불편하다는 것이 꼭 그리 부정적인 말로만 이해될 것이 아니기도 하고.


오늘부터 조금씩 써 내려갈 글은 장르로보면 에세이 일 것이고, 소재는 사랑하는 마음이 될 예정이다. 글을 읽기를 바라는 독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 딱 한 명이다. 요즘에는 이런 말을 쓰지 않겠지만 어른들 말로 '러브레터'겠다. 



내 앞에서 쉴 새 없이 입을 오물거리며 다이어리를 꾸미고 있는 당신을 봅니다. 귀여운 손가락 한마디보다도 짧은 가위를 꽉 쥐고 신중하게 스티커를 자르는 당신을 봅니다. 사랑스럽게 삐져나온 몇 가닥의 옆머리와 차분하게 가라앉아있는 머리카락들을 음미합니다. 얼핏 보면 건설현장의 경고판과 비슷한 문양의 반팔티를 뚫어져라보다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아서 이내 모니터로 고개를 돌립니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유급 여름휴가를 즐기는 중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신과 여름휴가를 보내는 중입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보내는 그 여름휴가가 어떨지 궁금합니다. 불편하지는 않을지, 조금 더 다른 것들을 해보고 싶지는 않을지 궁금합니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불행할 것이라는 불안은 애써 넣어두려고 합니다. 당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려주는 달달한 사랑고백으로 쓰디쓴 불안을 넘겨보려 합니다. 


나의 오늘 하루는 어제와 다름없이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행복합니다. 무사히 일어나서 함께 명상을 하고, 이른 아침 새들의 지저귐을 배경음악 삼아 산책을 했습니다. 조용한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람을 구경하고, 하루에 한 번 밖에 찾아오지 않을 귀중한 식사시간을 고민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죽어가는 인간에 대한 주변인들의 애정을 보며 함께 눈물 흘리고 웃었습니다. 당신과 함께하며 눈물 흘리는 것이 인생에 중요한 행복일 수 있겠음을 어렴풋이 알아갑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본 드라마 한 편에 반해서 다시금 차분하게 키보드를 두들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당신은 오늘 하루 또 어떤 마음들을 먹고 내뱉었는지 궁금합니다. 미워하고 시샘하는 것들 투성인 세상에서 오롯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당신이 곁에 있음에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참 진부하지만, 그 뜻을 오롯이 전할 수 있는 표현이 없습니다. 내 배움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랑일 테니 불만은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내가 가진 모든 표현들을 끄집어내면서 당신을 사랑하는 중입니다.


전하고 싶은 마음이야 가득하지만, 써 내려갈 자신이 없습니다. 아침에 명상을 하면서도 전했지만 마음이 영 답답하고 불편한 탓입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만 내일은 더 많은 것들이 오롯이 전할 수 있기를 아주 신중하게 기도합니다. 오늘도 많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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