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쉬이 잠에 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내일이 두렵기 그지없는 출근일이기 때문이고, 출근이 두려운 이유는 업무를 하는 시간 동안 당신과 떨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회의건, 어떤 교육이건, 어떤 면담이건 심지어 서로 간 소리를 지르며 다투는 투쟁의 순간에도 당신이 옆에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두렵지조차 않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거짓말이겠지요. 너무나 두렵고 도망치고 싶겠지만, 당신이 나에게 주는 안정감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들을 능히 해낼 수 있는 일로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당신은 침대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습니다. 바깥은 찜통이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지내는 작은 방은 에어컨 덕택에 견딜만합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서 내일 아침을 두려워하며 미리 면도를 했습니다. 그냥 잠들었으면 좋았을 저녁에 꾸역꾸역 밥을 욱여넣고 소화되지 않는 더부룩한 배를 부여잡고 있습니다.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당신이 나에게 추천해 주었던 까주스를 주문했습니다. 지금은 돈을 쓰는 것보다는 속이 더부룩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더 중요한 모양입니다. 요즘은 이렇게 행복한 순간뿐만 아니라 불편한 순간에도 당신이 나에게 해줬던 말들, 추천해 줬던 물건들을 찬찬히 뒤져보며 당신을 떠올리고 조금 더 나아진 내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여전히 나에게 삶은 미궁이고, 나의 존재는 방해물입니다. 내일은 어떤 어려움과 마주할지 그 어려움을 또 어떤 어리석음으로 연결할지 걱정입니다. 마구잡이로 노력만 한다면 나는 소진될 테고, 숨어서 떨기만 한다면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겠지요. 그 어느 쪽도 유쾌하지는 않을 테니 조금 더 나은 선택지는 없을지 고민해 보아야겠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해준 말들을 떠올려 봅니다. 내일 벌어질 어려움들은 생각보다 그리 큰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든 넘기거나 해결할 수 있을 테지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은 고민할 필요도 없고, 고민이 생기는 것들은 어떻게든 대응은 할 수 있을테니까요.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이 상소문도, 편지글도 아닌 글을 또 쓰고 있자니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면도기를 붙잡고 있던 나는 어디론가 떠나가고 또 어떻게든 새롭게 시작해서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만납니다. 당신은 잠들어있는 순간에조차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감사합니다.
여전히 속은 더부룩하고, 후회와 원망, 죄책감이 마음속에 한가득이지만 또 조용하게 누워서 글이라도 읽어보아야 겠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의 숨소리, 콧소리를 하나의 풍경처럼 감상하고 누려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호사는 당신은 온전히 감상하고 누리는 것일 테니까요. 나에게만 허락된 그 사치를 누리러 이만 떠나야겠습니다. 부디 그리 힘들지 않은 꿈을 꾸고, 적당한 컨디션으로 아침을 맞이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잘 자고 내일 또 만나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