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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Jul 19. 2023

맷집 좋은 감성, 반복되는 희망

책 | 박미옥 <형사 박미옥> 출판사 이야기장수


맷집 좋은 감성, 반복되는 희망



직업의 고정된 정의를 학습하지 않고 직업의 새로운 정의를 개척한 사람. 나의 역할을, 내가 앉아야 할 자리를 지키며 살아낸 사람. 세상에 두드려 맞으면서도 사람에 대한 사랑만은 품 안에 꼭 쥐고 있는 사람. 덕분에 맷집 하나는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이 <형사 박미옥>에 있다.


박미옥 작가는 30년 형사 생활이 전생과 같다고 하며, 퇴직 이후 현생에서는 “일상의 당신들을 만나고 싶다”라고 덧붙인다. 작가가 현생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단 자신을 쓰는 것’이었다. 작가는 이 책에 지난 이야기와 겪어온 사람들을 담았다. 나에게 이 책은 ‘형사 한 사람을 30년간 살게 해준 고귀한 시선’에 대한 이야기이자 ‘서로에게 빚진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며 ‘일하는 여성’의 시간을 먼저 통과해온 자가 미리 표시해둔 이정표로 읽혔다.


작가는 겪어온 사건들에 대한 감정의 결을 모두 살려 표현했는데. 나는 감정에 대한 뛰어난 기억력은 섬세한 감수성에서만 나온다고 믿기에 글을 읽는 내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주는 희망을 보고” 살아왔다고 말하는 작가는 “언제나 이 세상과 사람이 두렵고 또 애처로웠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책 말미에 “30년간 쌓여온 나의 내상도 말끔히 밀어내고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길고 깊은 꿈을 꾸고 일어난 기분이다. 양손을 힘껏 쥐고 긴장을 놓지 않고 책을 읽었다. 강력 범죄를 온몸으로 해결하고 겪어낸 형사의 이야기를 편하게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프롤로그로 현생의 그녀가 무사히 살아내고 있다는 근황을 미리 읽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에세이인데도 작가의 말이 책 초입에 들어가 있지 않은 배치가 완독하고 보니 이해가 간다. 나는 사실 작가의 지금이 걱정되고 마음이 쓰여 이 책을 받아본 그날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30년이 넘는 긴 세월, 타인의 인생을 읽고 보고 들었을 형사 박미옥. 이 책은 이제 막 말하기 시작한 사람이 내뱉은 첫 문장 같다. 반갑고 고맙다.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 우리 차례다. “계속 지금 이 순간만은 살아 있자.”



<형사 박미옥>의 ‘형사란 무엇인가’ 8문장


- 나는 형사란 내 앞에 앉은 한 사람,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이 세상을 향해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믿는다.(31쪽)

- 형사는 내 정답과 확신을 고집하며 안달복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함으로써 알지 못했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다.(31쪽)

- 형사, 감성으로 한다는 말은 개인의 감상이나 주관으로 일에 덤벼든다는 말이 아니다.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의 눈물과 탄식을 기억하고, 그 감정에 깊이 공감하며 일한다는 뜻이다.(60쪽)

-  사건을 빨리 해치워버리듯 처리하는 게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해법이 되게 일해야 한다. 그것이 형사, 그리고 사건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사명이다.(65쪽)

- 형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하고, 수사란 결국 사람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그 어떤 변화도 시작되지 않을뿐더러 기대할 수도 없다.(92쪽)

- 형사는 성격 좋고 긍정적인 마인드에 정의감 넘친다고 자격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바탕에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105쪽)

- 형사의 두려움은 예견되어 있고, 범인의 두려움은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두려움은 난데없다. 왜 겪어야 하는지 모를 세상 억울한 두려움이 될 수 있다.(182쪽)

- 형사란 이 세상과 사람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자였다.(195쪽)




<형사 박미옥>의 10문장


- 다만 착하게 사는 데도 기술과 맷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10쪽)

- 때로 삶은 더럽고 비루한 방식으로 우리의 따귀를 치지만, 옳은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그로 인해 근본적으로 훼손되지는 않는다.(37쪽)

- 형사도 위로가 필요하다.(110쪽)

- 어제의 상처에 짓눌리지 말고 내일의 불안에 무너지지도 말고, 계속 지금 이 순간만은 살아 있자.(122쪽)

- 순경 1년 차 형사 때는 내게 맡겨진 일이 무엇이든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모르는 세상을 겪어내기도 바빴습니다.(127쪽)

- 형사인 내게 별거 아닌 신고는 하나도 없었고, 가볍고 손쉽게 해결되는 사건 또한 없었다.(181쪽)

- 추상적인 편견과 고뇌보다는 실제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범죄자와 맞닥뜨린 후부터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195쪽)

- 범인에게 지고 싶지 않다.(223쪽)

- 그렇게 눈앞의 절망을 보고도 끝내 희망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287쪽)

- 내 삶의 태도와 시선의 증거들, 범죄 현장에서 본 사람과 희망, 그 희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응원하고 격려하며 살아낸 시간을 기록하면서, 30년간 쌓여온 나의 내상도 말끔히 밀어내고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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