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목을 전공했다. 우리 학과는 정원이 총 60명이었고 여학생은 그중 5명이었다. 그 5명 중 나를 포함한 4명은 전공을 살려 취업했다. 그 4명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탈토목을 했어야 했다고. 만날 때마다 서로를 지긋지긋한 토쟁이라고 부르며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한다. 솔이는 우리 중 유일하게 탈토목에 성공한 친구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학원에 소속되어 일을 했던 초반과 달리 지금의 그녀는 성공적으로 독립했다. 학생들은 주로 그녀의 카리스마에 매료된 마니아들로 구성된다. 그녀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수업을 구성하고 있으며, 물론 우리 중 돈도 가장 많이 벌고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큰맘 먹고 모이게 되면 그녀는 나머지 4명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우리의 소원인 탈토목을 이뤄낸 그녀가 몹시도 자랑스럽다. 그녀는 우리 중 유일한 화이트 칼라라고 불린다. 현장에 다녀오면 안전화에 항상 콩고물과 같은 흙먼지를 묻히고 다녀야 하는 우리는 그녀를 부러워한다.
탈토목에 대한 로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굳이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내가 일을 막 시작했던 26살 때였나. 토목 여학우 중 한 명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공대여자야. 2년 선배 L 언니 알지? 그 언니가 현장에 나가서 측량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르신이 어린 손녀한테 그랬데.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세상에나. 그런 끔찍하고 폭력적인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자고로 어른들이 입에 달고 사시던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의 "저렇게"라는 말의 주체가 되는 것은 모든 학생들의 괴담 중의 괴담이었던 터라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의 "공대여자처럼 된다"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한 다리 건너 전해 들은 나도 이렇게 맘이 콕콕 찔리는데 하물며 그 언니는 얼마나 아팠을까. 아참, 지금 언니 걱정할 때가 아니지. 나 또한 이 확실한 불행과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생각하니 서글펐다.
"아니.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우리는 지방 거점 국립대학교(다른 사람들은 지방대라고 줄여 말한다지만서도 허허)를 졸업한 유능한 인재이며, 더불어 이 지역에서는 등록금 또한 저렴한 곳이라 우리는 효자 효녀라는 말도 듣고 자랐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그 힘든 취업 시장을 뚫고 당당하게 이 나라에 세금을 내는 멀끔한 국민으로 살고 있는데 이 무슨 저주 같은 말인고." 나는 열변을 토했다.
그 후 2년이 지났다. 28살, 사회생활 2년 차에는 특히나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 무렵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바쁜 사람이라는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밤이고 낮이고, 주말이고 공휴일이고 없이 현장에 불려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입사 동기 생일 파티를 위해 전주에 놀러 갔을 때였다. 동기 한 명의 차에 구겨져서 탄 우리는 전주의 한 대학 앞에서 오리보트도 타고 제육볶음도 먹었다. 상사 험담과 최근 진행 중인 소개팅 등등에 대한 이야기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직속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회사에서 관리하는 수도관이 파손되어 물이 새고 있다고. 각 수용가로 물을 밀어줘야 하는 압력이 갑자기 떨어져서 확인해보니 인근 공사장에서 장비로 땅을 파버렸다고 했다. 동기 한 명의 차를 얻어타고 현장에 가던 길에 가까운 등산복 매장에 가서 대충 등산 바지를 하나 샀다. 치마를 입고 현장에 갈 수는 없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나를 포함한 발주처 직원 3명, 시설 관리 용역 업체 2명, 장비 기사 1명, 현장 보수를 위해 동원된 인부 3~4명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선 나를 포함한 발주처 직원들은 초동 대응 보고를 위한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을 했다. 그때쯤 하필 SNS를 활용한 비상 대응의 일환으로 깨톡 방 신설을 해야 한다는 매뉴얼이 정비되었다. 현장에서 확인하고 협의해야 할 것도 많은데 처장님, 부서장님, 본부 직원 등을 단체 깨톡 방에 초대하고 있자니 마음만 급했다. 이제 현장에서 회의 좀 하려고 하니 초동 대응 보고서를 만들어라 하고, 진행 단계별로 보고를 하라고 한다. 별 수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어서 현장 확인을 하고 사무실에 들어가야지 했다.
시설 관리 용역 업체 직원은 보수가 용이하지 않은 주철관을 절단할 것인지, 목침으로 긴급복구만 해두고 다시 파서 정식 보수를 할 것인지 우리에게 물어본다. 내부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야 하니 우선 파보자고 했다. 장비 기사님은 관로를 건들지 않고 파기 위해 살금살금 바가지로 터파기를 마쳤다.
그렇게 장비 작업을 마친 후 인부분들께서 물이 축축이 고여있는 관로 옆으로 내려가셨다. 관로 파손부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삽으로, 손으로 관로 주변을 파내셨다. 옷에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발주청 직원들과 용역사 직원들은 구덩이에 빠질까 봐 엉덩이를 뒤로 잔뜩 빼고 관을 살폈다.
8년 여가 지났지만 그때 현장 인부 중 한 분이 구덩이 아래에서 삽을 들고 계셨던 그 순간이 무척이나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파손 부위 주변을 삽으로 살살 긁어내셨던 그분. 삽을 들 힘도 없어 보일 정도로 깡 마른 그분은 "여기 파 보세요. 저기 파 보세요." 하는 젊은 놈들의 이야기를 듣고 불만 없이 헛수고로 보이는 일들을 잠자코 하셨다. 관로 주변의 질척거리는 흙탕물과 땀으로 그는 몹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구덩이 아래 왜소한 어르신 한 분을 두고 둥그렇게 서있는 이들이 보였다. 먼발치에서 손에 흙 하나 안 묻히고 있는 새파란 나의 젊음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옆에 있던 후임에게 말했다. "W 씨. 우리가 다 같이 내려가서 팠으면 훨씬 빨랐을 텐데. 그렇죠?" 하며 허허 웃는 체했다.
괄시받아도 되는 업이라는 게 있을까. 함부로 말해도 되는 수고라는 게 있을까 궁금했다.
어르신 한 분은 나이보다 훨씬 수고로운 일을 하고 있는데 나는 그만큼 수고롭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았다.
누군가의 고된 육체노동을 직면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때로는 고개를 돌려야 편해지는 일도 있는 법이다.
돌이켜보니 뭐 힘든 일을 한다고 화이트 칼라 블루 칼라하며 신세를 한탄했는지 어렸던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첫 회사를 그만두고 탈토목을 잠시 꿈꿨었다. 당시 나와 함께 신림에서 이직 준비를 했던 토목 여학우는 나보다 먼저 취업을 해서 그곳을 벗어났다. 토목직 공무원이 된 그녀 너라도 탈토목 하라며 응원해주었다.
전남의 한 시청으로 발령받은 그녀는 입사와 동시에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했다. 직속 상사와 나이차도 워낙 커서 신입인 그녀가 대부분의 업무를 인수인계받았다고, 인력이 부족해서 측량도 실측도 설계도 발주도 직접 해야 한다고 했다. 섬이 많은 지역이라 현장에 갈 때는 배를 타고 다녀야 하고 농로에 대한 민원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부지런히 논밭을 뛰어다니며 측량을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몸으로 발로 뛰어다니며 일하던 그녀가 나중에 임신을 했을 때, 나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식아. 이제 배도 많이 불러오고. 현장 다니기 힘들 텐데 어떡하니. 무리하지 않아야 할 텐데." 그녀는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킥킥 말도 마. 일은 해야 하니까 불뚝 나온 배를 붙잡고 논으로 밭으로 폴대 잡고 다녀.(측량 장비 중 자의 모양을 한 길쭉한 막대기)"
보이는 게 다가 아닌 만큼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공무원이라고 쉬운게 아니구나. 부른 배를 부여잡은 체 이리저리 바삐 다녔을 그녀를 상상하니 귀여워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녀가 퍽 안쓰럽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의 최종 면접에서 받았던 질문이 기억난다. 면접관 중 한 분은 나에게 "토목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셨다.
나는 곰곰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토목이란,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토목 시설이 교량이나 도로를 빼면 상당수가 땅 밑에 있습니다. 수도관이나 우수관, 오수관처럼 말입니다. 이런 시설들이 내 발밑에 있었다는 걸 상세히 알게 될 때는 해당 시설물에 사고가 났을 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토목 시설물은 있는 듯 없는 듯 문제없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용자들이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업은 항상 녹록지 않다. 무슨 일이던 돈을 받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하는 일에 대해서 "당신의 노력이 부족하여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할 자격이 우리에게는 있을까.
내가 묻히고 싶지 않은 것들을 기꺼이 손에 묻혀가며 우리 일상의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사람들. 우리의 안온함을 지켜주는 사람들. 기꺼이 혼자 축축한 구덩이를 파는 분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