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by mamang


나는 결정장애를 가지고 있다. 상대방이 나의 제안을 거절할까 봐 결정을 타인에게 미룬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거절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거절당할까 봐 메뉴 결정도 못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상대방도 나 못지않다면, 나는 "우리 먹기 싫은 것들을 먼저 말해볼까?" 하고 거절당할 법한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런 나에게 구직 생활 중 반복되는 거절은 내 영혼을 너덜너덜하게 했다.


한 번은 꿈에 엄마가 나왔다. "엄마 여기 웬일이야." 하고 내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가 뒤돌아 나를 쳐다봤다. 나를 몹시도 흘겨보는 모습이었다. 그 눈과 표정이 너무 생생해서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쳐다보고만 있었다. 유일한 내 편이 없어진 상실감이 들었다. 나는 끔찍한 절망감이 들어 잠에서 벌떡 깨버렸다.


또 한 번은 꿈에서 내가 퇴사한 첫 직장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OO 인사과죠? 죄송한데 저 좀 재취업 시켜주실 수 없나요? 제발 부탁드려요." 또다시 끔찍한 마음이 들어 벌떡 잠에서 깼다.


그 무렵의 나는 회사의 든든한 울타리가 너무 그리웠다. 내가 직장을 다시 갖기 전에 우리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가 찾아오려나. 번듯한 직장 없이 누가 나와 결혼하려고 할까. 평생 일할 것 같은 성실함이 나의 차밍 포인트였는데. 하고 후회했다.




퇴사 후 서류 전형에도 한참 동안 탈락을 반복했다. 필기시험은 20번가량 치렀고, 최종 면접까지는 5번 정도 갔으려나.


뭐라도 해야 우울증에 안 걸릴 것 같아서 아침 수영을 다닌 지 6개월이 넘었다. 아침 8시 수영을 마치고 독서실에 간다. 얼마 전에 다녀온 면접 결과를 앞두고 있으니 공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산책하고 시간 좀 죽이고 오면 문자 오겠지. 그러면 그때 확인해보자. 하고 자리를 뜬다. 오늘 오전도 공쳤다.


문자를 받고 확인해 보니 불합격이었다. "이번에는 진짜 붙을 것 같았는데?" 오늘 오후도 공쳤다.




나는 면접에서 한번 떨어질 때마다 나노 블록을 하나씩 맞췄다. 집에는 미키 마우스, 미니 마우스, 기린 등 하나씩 늘어갔다. 오늘도 블록을 하나 챙겨 집 앞 카페에 간다.


공대여자 : 엄마 나 저번에 면접 본 거기 안됐어.
엄마 : 오메. 집에서 엄마랑 살면서 회사 다닐 수 있을 거 같애서 엄청나게 기도 했는디.
공대여자 : 어쩔 수 없지. 기대 많이 했을 텐데 미안해.


다음 날 또 수영하고 독서실에 갔다. 오늘부터는 토목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볼까 했다. 서점에 갔다. 노량진이라고 책이 저렴한 건 아니구나. 생각하고, 나도 저 학원에 다녀볼까.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공무원 학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책을 사면 시작은 하게 되겠지 했다. 전공과목 책을 2개밖에 안 샀는데도 엄청 무거웠다. 독서실에 와서는 괜히 공준모('공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 카페들어가 본다.


"내가 이제 어디에서부터 힘을 내야 하나."


그렇게 독서실에서 넋 놓다 집으로 가서 쉬었다.




이번 탈락으로 무기력과 우울감이 1달을 갈 것 같았다. 내내 울지도 못하고 있다가 지하철에서 내려서는 펑펑 울었다.


내가 어제 불합격 통보를 받았던 면접은 1박 2일로 진행되었다. 각 지역에서 온 지원자 중 5분의 1만이 합격할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남녀 성비는 비슷했다.


본가가 있는 지역의 기관이라 지역 인재를 알아봐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물론, 5분짜리 면접이 아닌 1박 2일 면접이라 더 자신 있었다. 그리고 면접 내내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 선배님들과 진심으로 함께 일하고 싶었다. 그렇게 기대만 커졌다. 최종 결과를 앞두고는 본가에서 출퇴근이 얼마나 걸릴지 네비게이션으로 찍어봤다.


너무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불합격 통보를 받고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이 "죽고 싶다"였다. 이제 또 거절당할 용기도 넘고 힘도 없는 느낌이랄까.


며칠 동안은 조금 더 울었다. 그리고는 "한 번만 더 해볼까?" 하는 마음에 마지막 입사지원서를 냈다. "이번에 떨어지면 진짜 공무원 공부 시작해야지" 했다.




그렇게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입사 지원이 정말 마지막이 될 줄을 몰랐다. 진짜 마지막으로 한번 지원했던 곳에 나는 합격했다. 퇴사 후 1년 6개월 만이었다.


당시 나는 1명을 뽑는 토목직으로 합격했다. 탈 토목은 못 했지만,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장이라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이제 전국으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미래의 나는 주말부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면접 결과가 나왔던 그 날은 당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전 10시부터는 특히 가만히 앉아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집에서 혼자 유튜브를 틀어놓고 땀나는 맨손 운동을 따라 했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려고 옷을 발가벗고 화장실로 들어가던 차였다.


스터디에서 만난 동생이 "언니! 결과 확인했어요? 떴어요!" 하고 연락을 줬다. 샤워하러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고 급하게 핸드폰으로 합격자 수험번호를 확인해봤다.


나는 그대로 씻지도 못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붙었어." 엄마는 대답도 못 하고 계속 울었다. 벌거벗고 있던 나도 전화기를 들고 계속 울었다.


너무 행복한데 너무 눈물이 났다. 발가벗고 웃는 나도 너무 웃긴데 너무 눈물이 났다.




땅을 한참 파던 사람이 있었다. 곡괭이를 손에 들고 몇 번이고 땅을 내리쳤겠지. 그리고는 또 앞으로 나가서 몇 번이고 다시 땅을 팠겠지. 그 사람이 단 몇 센티 앞에 다이아몬드가 나올 줄 모르고 뒤로 돌아서 나가버리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만약 나도 곡괭이를 들고 뒤돌아 가버린 사람처럼 "이제 나는 정말 안될 거야. 더는 거절 당하고 싶지도 않고, 힘들어서 못 해 먹겠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도망치듯 다른 걸 준비한다고 해도 결과가 좋았을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말한다. 하다가 안 되면 그만둘 줄도 알아야 한다고.


고백건데 나도 사실 장수생들을 보고 그렇게 오만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주 많이, 자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다.


내 수영장 친구 H는 6년 만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나와 토익을 함께 공부했던 장디는 5년 만에 합격을 했다.


다들 나를 믿어주지 않을 만큼 여러 번 나에게 실망했을 때 딱 한 번만 내가 나를 믿어주자. 정말 딱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이번에는 후회 없이 해보겠다고 말하는 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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