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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Nov 05. 2023

허용

이제 겨우 엄마가 되어가려 한다

주말 아침 아이의 아침 밥상을 차려 놓고 집에서 나왔다.

집 근처에 아침 9시부터 문을 여는 카페가 있는데, 동네 카페라 오전 시간에는 사람이 없어 음료 한잔 시켜놓고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회사를 가지 않는 토-일요일 아침, 책이나 노트북을 들고 나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느새 나의 주말 루틴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고등학생이 있는 가정에는 아이의 학원 스케줄 때문에 주말 아침도 여전히 분주하다. 늘 잠이 고픈 아이를 달래서 깨우고 뭐라도 조금 먹여 보내려고 아침 식사거리를 챙긴다. 먹는 둥 마는 둥 시간에 쫓겨 가방을 메고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배웅한다.

나도 그렇게 살 줄 알았다. 적어도 주말만큼은 그렇게 다른 엄마들처럼 엄마 노릇을 하며, 주말까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산다는 생각에 약간의 자부심과 뿌듯함도 느끼며 아이의 청소년기 시간들을 지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그런 엄마로의 모습을 바란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라면 아무 의구심 없이 겪어야 하는 당연한 모습이라고 여기며 묵묵히 그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는 지금 나는 그런 엄마 역할이 부럽다.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주말에 애써 자리를 피해 집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이의 모습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였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를 치른 후 아이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이후 수행평가마저도 성실하게 응하지 않았고 그런 아이를 보며 어르고 달래다가 화가 치밀어 여러 번 다그쳤다. 목표를 가지고 좀 더 성실하게 노력하면 늦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었고, 중심 없이 쉽게 흔들리고 끈기와 패기 없이 안일하게 생활하는 아이의 모습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그래도 용기를 주고 싶었고 나의 말이 자극이 되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이는 점점 더 무기력해졌고 될 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같았다. 모든 학원은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고 빈 가방을 메고 학교를 왔다 갔다 할 뿐 정말 먹고 자고 게임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두 번의 지필고사는 백지를 내었고 수행평가는 어떤 것도 이행하지 않았다. 아이 방 책상에 쌓여 있는 교과서는 순서도 바뀌지 않고 만진 흔적도 없이 수개월을 그렇게 먼지만 쌓인 채 그대로 놓여있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속이 상한다는 말로는 온전히 담을 수가 없었다.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 만 할 것 같아 방문 앞에서 혼자 이야기도 해보고, 편지도 써서 방안으로 밀어 넣어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이를 자극하는 일이라며 나의 노력을 비난할 뿐 적극적으로 나서 주지를 않았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지 못하고 아이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나는 애가 타고 속이 곪고 곪아서 터지는 심정이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그런 집안 분위기 속에 있자면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릴 것 같아서 주말에는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아이 행동의 모든 걸 허용해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은 아이에게 규칙도 어떤 동기부여의 방법도 통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부모가 제자리를 지키고 항상 일관된 모습으로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준다면 아이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기한이 없는 일을 믿음을 가지고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허탈했다. 그렇지만 내가 아이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건지 확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허용'이라는 명목으로 상황을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절이 바뀌고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상황이 너무 오래가질 않기를 매일 간절히 기도한다. 아이의 상황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아이를 믿으며 기다리는 허용은 아직은 어렵다. 그렇지만 그동안 나의 한숨 섞인 말들이 아이에게 독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은 아이에 대한 불안과 화를 스스로 누그리며 아이에게 표출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조심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 기다림의 시간이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이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고 아이의 모습을 온전히 품어줄 수 있는 따뜻한 엄마의 모습이 되고 싶다. '허용'의 연습을 통해서 그렇게 아이가 원하는 엄마가 되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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