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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데레사 Jan 12. 2020

순간의 총합

인위적인 지혜

때는 2000년도 여름이었고, 나는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일상을 보내며 버릇도 아닌데 버릇처럼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전공 수업을 듣고 있는데 뜬금없이 교수님께서 '학교에 좋은 프로그램이 많은데도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여느 때 같으면 그렇거니 하고 지나갔을 텐데 그 날은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뒤돌아 보면 이때가 나의 대학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시기였던 듯하다. 그렇게 나는 중문과 학생이 아닌데도 중국에 교환학생을 갈 수 있었고 무역, 해외영업 영역을 진로로 잡을 수 있는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임신 전까지 관련 업종에 종사함으로 밥벌이를 했다. 리마커블 한 케이스라 하기에는 뭔가 심심하다. 하지만 이때 내가 인생의 방향성을 갖지 않았다면 지금과 매우 다를 모습의 나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렇듯 인생은 복잡 다단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순간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순간과 선택의 총합이 지금의 "나"인 것이다.


순간은 중요하다. 그런 중요한 순간들을 단순히 우연의 손에만 맡긴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칠 것인가. 교사는 학생들을 고취시킬 수 있고 간병인이나 돌보미는 환자들에게 편안함과 위안을 줄 수 있으며, 서비스직 종사자는 활력을 얻고, 정치가들은 단결하고, 관리자는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약간의 계획과 통찰력만 있으면 가능하다. 이 책은 순간의 힘을 창조할 지혜와 통찰을 담고 있다.

                                          < 순간의 힘 / 칩 히스+ 댄 히스 지음 / 웅진 지식하우스>


http://www.yes24.com/Product/Goods/62067431



순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의미에 거북한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호메로스가 인간을  "빵을 먹는 사람"이라고 규정했음을 기억해 보자. 우리는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100% 수렵, 채집으로 먹거리를 마련하지 않고 굳이 밀을 빻아 물과 효모로 반죽하여 구워 먹는 종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인위적이라 함 (Artificial) 은 호모 사피엔스의 매우 중요한 특질 중 하나이다. 흔히 화성의 자전주기를 24h 37m 22s라고 표현하는 것도 우리가 인식 가능한 단위로 표현을 해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며 오늘이 2020년 1월 12일이라는 사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부르기로 정했을 뿐, 우주 단위에서는 시, 일, 월, 년은 하등 의미가 없는 개념이다. 더 쉬운 예를 들자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에 남는 순간인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 등도 사실상 인류가 인위적으로 디자인 한 이벤트임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 친정어머니 환갑 때 남편의 회사에서 친정집으로 고가의 숯 장식 생화와 축전을 보낸 적이 있다. 물론 남편이 신청한 것이었지만, 사위가 일하는 직장에서 예순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꽃장식과 축전을 받은 장모가 받았을 긍지는 어지간한 금액이 들어있는 두툼한 용돈 봉투를 압도한다. 내 친정어머니의 예화를 비롯하여 "순간의 힘"에서 제시하는 갖가지 최고의 순간들을 인생에서 자주 대할수록(빈도) 우리는 가히 행복한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행복에 관하여 잠깐 살펴보자. 근래에 읽은 행복에 관한 가장 리마커블 한 책 "행복의 기원"에서 나는 행복에 관한 낡은 통념을 많이 깨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차용한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행복감이란 인간의 생존(살아남음)과 번영(짝짓기)을 위한 도구라는 것이 저자(서은국 교수)의 생각이다. 싱싱한 과일을 목도했을 때 솟는 식욕,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내는 안정적이고 즐거운 시간, 따뜻하고 포근한 잠자리, 마음에 드는 이성과 같이 있을 때의 흥분과 기대감은 모두 행복과 연결된다. 반대로 썩은 식재료, 적대적인 사람들, 춥고 황량한 밤 거리등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느낌적인 느낌 때문에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부족한 대답이다. "왜"를 캐고 또 캐다 보면 이것들은 생존에 위협이 될 만한 조건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어렵지 않게 나온다.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단언했지만, 실은  행복이란 생존에 유리한 조건에 반응하는 뇌의 합성 작용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행복이 생존이라는 본능적인 층위의 산물이라고 해서 가치가 떨어진다고 보는 시각은 위험하다. 생존은 어쨌든 본태적으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다. 아울러 행복은 그에 따른 도구임을 인정한다면 파랑새 찾듯, 소금물을 마시며 더 목말라하듯 "행복"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쾌락의 디폴드 값을 낮출 수 있고 행복의 빈도를 더욱 높임으로써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인생은 마냥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핵폭발도 우리 은하에서는 세기당 3번 일어날 정도로 별스럽지 않으며 (초신성 폭발) 146억 살 우주공간에서 인류는 길어야 100년 남짓을 산다.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이 언급한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 즉 "지구")을 생각한다면 결국 인류가 하는 그 어떤 것도 자연에서 남아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현재에 집중하고 충실한 삶을 붙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울러 그 수많은 "현재"가 고양/통찰/긍지/교감을 포함하는 "결정적인 순간"들로 이루어질수록 우리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밀도 높게 만들어 줄 것이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3230430


먼 길을 돌아왔지만, 행복을 재규정하고 결정적 순간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순간의 힘"에 나오는 수많은 "결정적 장면"들의 얼마나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만족감을 높이는지 알 수 있다. 실로 저자가 제시한 결정적 순간의 포뮬러를 이해하고 실생활에 옮긴다면 우리는


학업 효과를 증진하고

기업의 이익을 증대하고

경제적/정서적으로 더욱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가족과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후회 없이 충만하게 보낼 수 있으며

나를 더 사랑하고 이해함으로써

지역사회나 이웃에게 이타적 행위를 확장하여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인용된 내용 중, 호스피스 간호사인 브로니 웨어가 쓴 '내가 간호했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5가지'를 살펴보자


나에게 솔직한 삶을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대로 살았던 것

너무 일만 했던 것

용기를 내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지 못했던 것

더 행복하게 살지 못했던 것


의미가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함으로 "순간"을 창조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앞 선 4 항목은 마지막 항목인 '더 행복하게 살지 못했던 것'으로 수렴한다.

즉, 사람들은 결정적 순간을 창조할 기회를 잃음으로써 덜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느낀다는 부분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어떤 순간을 만들고 선택을 해 왔는지, 그 총합으로서 나는 지금 어떤 일상을 살고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살펴보자. 여기에 어떻게 순간을 만드는 지혜를 발휘해서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가꿀지 궁리를 하다 보면 오늘 같은 내일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내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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