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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Oct 24. 2021

농촌여성 연대기

마음을 채우는 한끼

우리 집은 인구 5만이 조금 넘는 군의 면에 있다. 금융, 행정, 쇼핑의 중심거리는 도보로 5분 컷이면 끝이다. 있어야 할 것이 있는데도, 없는 것이 더 많아 불편하다. 하지만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이라는 공간과 더불어 있는 것이 좋고 마구 뛰어도 상관없는 환경이라 아이 키우기 좋아 이곳에 산다. 그래서 그런지 제법 또래 연령의 엄마들이 있다. 시즌1을 운영하면서 가진 포부 중에는 안동 식당을 성장시켜 노하우를 가지고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엄마들의 직장을 만들 계획이 있었다. 시즌2의 운영 시간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하고 약간의 직업훈련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엄마들의 재취업문턱을 낮추는 일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전업농 가구는 고정적인 월 수입이 없고 작물의 수확으로 얻어지는 비정기적인 수입이 있다. <돈의 속성> 김승호 님의 조언처럼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가장 힘이 세다'는 것은 생활비를 책임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퍼뜩 이해할 수 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양육하면 생계와 생활을 위한 꾸준한 지출이 발생한다. 이와 달리 농가의 소득은 비정기적으로 얻어진다.  이마저도 연평균을 정확하게 산출하기 쉽지 않다. 그 해의 작황과 시장 상황이 변수로 작용해 농산물 가격이 매번 달리 책정된다. 부부가 공동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경우에는 형편이 더욱 녹록지 않다. 부부 둘 중 하나라도 최저임금이라도 버는 경우에는 유동자금이 있어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적은 액수의 금액이라도 짧은 근무 시간으로 육아와 영농활동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여성 일자리가 있다면 농가 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라 보았다. 아직은 시즌2가 걸음마 단계라 꿈을 품은 단계에 지나지 않지만, 꼭 실현해보고 싶은 사업이다. 


 농촌여성의 일자리는 당장 실현이 불가능할지라도, 이들의 밥상 고민은 조금 덜어줄 해법을 당장 시행해보았다. 엄청난 매출을 기대하며 대량 주문해 놓은 식품 포장 용기와 매장 매출과 병행할 다른 판로를 찾아야 한다는 운영자의 절박함은 '고객의 니즈'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판로여도 현재 구축해놓은 자본들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접근해야 안동 식당의 성장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므로 배달 대행업체를 통한 배달 서비스는 잠시 유보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찾아낸 '퇴근길 저녁 배송'

퇴근길 저녁 배송 아이디어는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온 우리 동네 이웃이 올린 sns 사진을 본, 동네 엄마의 전화 한 통에서 출발하였다. 4형제 엄마인 그녀는 농사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면 내에 직장이 있어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볼 수도 없다. 마켓ㅇㅇ나 ㅇㅇ프레쉬가 있어 근무 시간 중 짬을 내어 장을 볼 수 도 없다. 틈 없이 돌아가는 일정에 약간의 삐끗함이 생기면 여파가 큰 생활조건이다. 아마 저녁거리가 없었는지 그녀는 이웃에게 전화를 걸어 정식 5개를 대신 포장해 가져다줄 수 있는지 부탁하였다. 전화를 받은 이웃이 흔쾌히 배달을 수락해주었고 그날의 저녁은 안동 식당 정식 도시락이 대신해줄 수 있었다.


그날 밤 잠깐 생각을 정리한 후, 다음 날 이웃들에게 '퇴근길 저녁 배송' 안내 문자를 보냈다. 약간의 자존심이 나를 머뭇거리게 하긴 하였으나 세일즈에 익숙하지 않은 나를 다독여가며 즉각 실행에 옮겼다. 답장이 하나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손에 땀이 약간 차려던 참이었다. 드디어 첫 번째 펭귄 등장! 첫 번째 펭귄의 과감한 다이빙이 축포가 된 것처럼 속속 주문이 들어왔다. 


물론 첫 배달은 엉망진창이었다. 약속 시간을 1시간이나 어겼고,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매장에서 나가는 그대로 정식을 제공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이웃들의 솔직한 후기를 접하며 개선해나갔다. 밥은 집에 있으니 따로 주지 않아도 된다. 반찬만 따로 구입하면 좋겠다 등의 후기들을 반영해 포장용 메뉴를 새롭게 구성했다. 


이웃의 저녁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좋고, 이들이 지불한 돈으로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어 좋다. 당장 달려가 사 올 수 있는 가까운 마트도 대신 밥상을 챙겨주는 손길도 없는 우리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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