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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시체 Feb 15. 2022

같은 장소

문화비축기지



아주 예전에 아동미술심리치료를 잠깐 배운 적이 있다. 그때 어지럽게 뒤엉킨 곡선들 속에서 눈에 띈 형태를  찾아 색칠하는 검사가 있었는데(정확한 명칭은 모른다)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들이 딱 그 검사와도 같다. 사진 속에서 형상을 건져 올려 고정하는 작업. 내 마음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모호한 것을 가만히 건져 놓고서 유심히 들여다 본다.


당시 나는 심리치료사가 되는 것을 금세 포기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치료를 받을 사람이지 치료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이 치료를 하면 안 되었다. 그 대상이 아동이라면 더더욱. 그래도 그때 밟은 과정은 오래도록 내 작업의 원천이 되어 주고 있다. 미술을 공부하고 처음으로 '아, 이래서 그림을 그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과 선생님에게 내 그림이 해석될 때 묘하게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림 말고 구체적인 말과 글로도 하고 싶은 말을 하기를 바란다. 더 또박또박 잘 들리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 정말 과거에 매듭을 짓고 조금 더 미래로 나아가고 싶다면 오직 그것만이…. 피해 갔던 길은 풀지 못한 숙제처럼 언젠가 다시 눈앞에 가로놓인다. 그 길을 이제는 지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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