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현정 Mar 26. 2019

만년필- 6화(마지막)

소유할 수 없는 욕망

상진은 점장의 도움으로 그날 저녁 중고나라에 그의 만년필을 판매 목록에 올렸다. 중고나라 사이트에서는 공연 티켓부터 반려견까지 오만가지를 다 사고팔았다. 세상에 있는 모든 종류의 물건이 거래가 되는 이 공간에서 상진은 만년필을 반드시 다시 되 살 것이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게 전혀 비현실적인 일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가 점장의 조언으로 책정한 만년필의 가격은 55만 원이었다. 그날 저녁 상진은 만년필이 정말 팔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 반 안 팔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 반으로 밤새 잠을 설쳤다.


다음날 편의점에서 퇴근 후 PC방으로 갔다. 구매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이 월세를 내야 하는 날인데 주인이게 며칠 정도는 미뤄달라고 졸라대서 일단 시간은 벌어놓은 상태였다.

다음날 저녁에도 그다음 날 저녁에도 만년필 구매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점장의 조언을 얻어 55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가격을 낮췄다.

다음날 아침 점장의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하나 왔다. 50만 원에 만년필을 구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상진은 저녁에 구매자와 만나 현금을 받고 만년필을 건넸다. 물건을 건넨 때 상진은 손을 심하게 떨었다. 마치 그의 손은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 주기 거부하는 듯 몸부림을 쳤다. 그날 밤에도 상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그 안으로 찬바람이 계속 통과하며 들락날락하는 듯했다. 상진은 반드시 50만 원을 벌어 다시 만년필을 되찾을 거라 다짐 또 다짐했다.


그 후 상진의 삶의 목표는 돈을 모으는 것으로 바뀌었다. 돈을 벌 수 있는 금액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지출을 줄였다. 점심식사는 편의점에서 파는 음식 중 유통 기간이 다된 것들을 버리지 않고 먹었다.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 상진에게는 충분한 식사였다. 그리고 남는 음식이 있으면 집으로 가져가 저녁밥으로 먹었다. 남는 음식이 없으면 저녁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장만했다. 가장 저렴한 폴더식 핸드폰으로 나중에 만년필을 되찾을 때 구매자와 연락하기 위해 장만하였다. 그의 새로운 핸드폰에는 입력된 번호가 딱 두 개 있었다. 구매자의 연락처와 편의점 점장의 번호.

그렇게 상진은 온 힘을 다해 돈을 모았다. 얼굴은 점점 수척해갔지만 그의 처진 눈 속 눈동자는 만년필에 대한 욕망으로 하루가 다르게 빛났다. 그는 일을 하지 않을 때면 머릿속이 온통 만년필 생각으로 가득했다. 부드러운 나뭇결의 펜대를 잡았을 때의 촉감, 잉크를 가득 뿜으며 하얀 종이 위를 스케이트 타듯 미끄러져가는 굵고 힘 있는 펜촉. 현란하고 섬세한 용무늬 조각의 위엄. 만년필을 생각하면 상진의 손은 꿈틀댔다. 본디 하나의 생물이었던 것처럼 만년필을 목말라했다.


그가 50만 원을 손에 쥐었을 무렵 그는 처음으로 그의 새 핸드폰을 사용했다.


따르릉~~


“여보세요. 안녕하.. 십니까. 저는.. 지난번에 만년필을 팔았던 구 상진입니다.”


“네. 누구요? 아 만년필? 그런데요.”


“저기... 혹시 그 만년필 저에게 다시 파실 수 있으신지..”


“아니. 뭐야 이 사람. 왜 이제 와서 딴소리야. 안돼요. 별 이상한...”

그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상진은 다급하게 막았다.


“잠시 만요! 제가 그 만년필이 꼭 필요해서요. 50만 원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돈도 있습니다.”


“일 없습니다.”


뚝-


생각과는 전혀 다른 전개에 상진은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점장에게 이 일을 의논하였다. 애초에 점장이 준 아이디어였으니 달리 알아볼 데도 없었다. 점장은 가격을 흥정하려고 하는 듯하니 문자 메시지로 원하는 가격을 제시해보라고 해보라고 제안하였다.


-아까 전화드린 구상진입니다. 얼마면 저에게 파시겠습니까?


-100만 원. 그 이하는 절대 안 팔아요.


상진은 다시 얼마간 돈을 모았다. 그는 점점 더 수척해갔지만 눈빛은 더욱 선명해져 흡사 영험한 산에서 수양하는 도인을 연상케 했다. 100만 원을 모으면 확실히 만년필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매일 밤 떨리는 양손을 움켜잡고 진정시킬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구상진입니다. 만년필 100만 원에 사겠습니다.

한참을 답이 없다가 이윽고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110만 원. 그 이하는 절대 안 팔아요.


-뭐라고요?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지난번에 분명히 100만 원에 파신다고..


-그때가 언젠데요. 벌써 한 달이 지난 얘긴데. 싫으면 마세요. 110만 원 아니면 안 팔아요.


상진은 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그의 모습은 병자처럼 보였다. 쾡한 눈은 눈빛만 이글거렸고 온몸에 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크고 긴 손은 드디어 뼈마디가 드러났고 가끔 그는 어지럼을 느꼈다.


-구상진입니다. 110만 원에 사겠습니다. 만년필.


-120만 원.


그는 편의점에서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닿을 듯하며 닿지 않는 것을 잡으려 발버둥을 쳤던 어젯밤 악몽이 문득 떠올랐다.


‘꿈속에서 내가 잡으려고 했던 것이 만년필이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점장이 주저앉은 상진에게 왔다.


“상진 씨, 왜 그래요? 어디 안 좋아요?”

상진은 말없이 문자 메시지를 점장에게 보여주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를 봤나. 50만 원 주고 산걸 120만 원에 팔겠다고? 상진 씨 진짜 악질한테 걸렸네.”


“점장님. 이제 어떡하죠. 흑흑”


상진은 무너졌다. 그간 꾹 참아왔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며 눈물을 흘리는 상진을 바라보며 점장은 이것을 멈춰줘야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아르바이트생 중에 상진만 한 사람이 없었다. 원래 근무시간보다 최소 한 시간은 더 일하고 잘 쉬지도 않아 점장이 가게를 가끔 비우거나 볼일을 보러 갈 때 이만큼 의지가 되는 직원이 없었다.


“상진 씨 그 부족한 10만 원 내가 빌려줄게요. 그럼 바로 살 수 있는 거잖아. 그 빌어먹을 만년필.”


흐르던 눈물은 꼭지가 열려서 금방 멈춰지진 않았으나 상진은 뜻밖의 점장의 선심에 놀랐고 진정한 은인을 만난 듯 황홀하기까지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점장님.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저 더 열심히 일할게요.”


상진을 곧바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알겠습니다. 120만 원. 만년필 오늘 사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지난번 만난 곳으로 7시에 만납시다.


“와아~ 점장님. 그 사람이 만년필 판대요. 120만 원에. 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몇 달간 상진이 처음으로 웃었다. 점장은 이렇게 기뻐하는 줄 알았으면 좀 미리 꿔줄걸 그랬나 싶다가도

‘아니야. 내가 점장으로 이제껏 일할 수 있었던 건 절대 가불을 안 해주는 나의 원칙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안도와 준건 잘한 거라고. 결과적으로 나는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하는 직원을 얻은 거니 기가 막힌 시점에 잘 도와준 거지. 그럼 그렇고말고.’ 라며 오히려 본인의 원칙과 철학이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으스댔다.


“그래 상진 씨. 원래는 돈 빌려주고 그런 거 안 하는데 특별히 상진 씨니까 해준 거라고. 다음 달에 돈 갚는 거 잊지 말고.”


“그럼요 그럼요. 다음 달 월급 받으면 바로 드리겠습니다. 제 은인이십니다.”


그날 저녁 일찌감치 상진은 만날 장소로 길을 나섰다. 만나는 곳은 편의점에서 바로 한 블록 떨어진 사거리 앞이었다. 그는 120만 원이 맞는지 여러 번 확인 후에 봉투에 돈을 담았다. 점퍼 안주머니에 봉투를 소중히 넣고 그와 만날 장소로 갔다. 가는 도중 걷다가 봉투가 빠져나가지 않을까 싶어 봉투를 꺼내보며 연신 확인을 하며 걸었다. 교차로에 도달한 그는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봉투가 잘 있는지 또다시 꺼내어 확인을 했다. 봉투를 주머니에 다시 넣을 때쯤 신호가 바꾸어 그는 길을 건넜다.


바로 그 순간.

그가 찻길로 발을 디디는 순간 은색 차 한 데가 그를 향해 돌진했다. 상진은 당연히 멈출 줄 알았던 차가 가속을 내며 그에게 달려오자 차 쪽을 바라보았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멀었을 때 은색 승용차는 가운데 범퍼로 정확하게 상진의 다리와 엉덩이를 쳤다. 건널목 반대쪽에서 길을 건너던 두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검은 마스크와 모자를 쓴 뺑소니 범은 쓰러진 상진의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재빠르게 다시 차에 타고 달아났다. 상진의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이 동네에서 몇 달째 잡히지 않고 있는 뺑소니 뻑치기 일당은 CCTV에 찍혀도 차 번호판을 계속 바꾸고 범행 때마다 도색을 새로 하면서 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있었다. 상진이 길에서 돈을 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 일당은 우발적으로 또 한 번 범죄를 저질렀다.


상진이 간신히 눈을 뜬 곳은 병원 입원실이었다. 앙상했던 그의 몸은 바스러지는 수순을 거치듯 엉덩이 뼈 골절, 갈비뼈 세 개가 나가고 왼쪽 발목이 부러진 상태였다. 말할 수 없는 통증도 함께 깨어났다.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 건 끝내 만년필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극심한 좌절감이었다.


그는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가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그가 선택한 것이었다. 눈을 감은 채 만년필을 쥐었던 촉감, 그림을 그릴 때 느꼈던 부드럽고 묵직한 펜촉의 느낌, s.j.라고 박혀있으며 주인은 ‘너’라고 말해주던 나무 펜대의 자상함을 느꼈다.


그는 아버지를 보았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하얀 피부에 턱시도를 입은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다가와 만년필을 쥐어주셨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피아노를 쳤다.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아름다운 곡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였다.

상진은 연주를 들으며 피아노를 치는 그의 아버지를 그렸다. 그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끝-


작가의 이전글 만년필- 5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