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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현정 Aug 06. 2019

추락하는 자들의 절규

소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by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그때 하마가 묵직하게, 바다에서 방향을 돌리는 배처럼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하마의 옆모습을 보고서 하마가 아주 기다란 동물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하마를 보지 않았다. 아니, 힘찬 궁둥이를 보았는데, 매끄럽고 반들거리는 가죽 위로 줄줄 흘러내리는 빗물을 본 것 같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p.323)


80년대 콜롬비아의 마약왕이라 불리던 거부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그의 ‘제너두’를 건설할 당시 동물원을 세운다. 파블로가 전성기였던 시절 그에게 간택되어 동물원에 갇혀 지낸 짙은 회색의 하마는 그가 죽고 난 후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비가 많이 내리는 어느 날 동물원 어딘가에서 쓸쓸히 비를 맞고 있다. 또 다른 십여 년이 지나 이 하마는 아내와 자식과 함께 지긋지긋한 이 공간을 벗어나고자 탈출을 시도하지만 사람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남겨진 아내와 자식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이 하마의 씁쓸한 인생은 리카르도의 이야기와 꼭 닮아있다.


이 소설은 화자인 얌마라가 동물원에서 탈출한 하마가 사람들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리카르도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리카르도는 비행기로 마약을 운반하는 일을 하다 경찰에 잡혀 교도소에서 20년 수감생활을 한다. 무질서와 폭력, 테러와 파괴가 난무하던 콜롬비아의 80년대에 마약이라고 하는 거대 비즈니스는 당시 많은 젊은이들에게 거절하기 쉽지 않은 유혹이었을 것이다. 리카르도의 추락은 이 선택으로부터 시작된다. 긴 수감생활 후 그의 인생의 전부였던 아내의 비행기가 기기 고장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행한다. 리카르도는 그 비행기의 블랙박스를 구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또다시 어두운 곳에 발을 디딘다. 그리고 거리에서 총탄을 맞아 사망한다. 그와 우연히 함께 있었던 얌마라 역시 총을 맞고 그의 인생은 추락하기 시작한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나날을 보낸다. 우연한 계기로 얌마라는 리카르도의 딸 마야를 만나고 그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리카르도의 과거를 알게 되며 서서히 불안했던 정서를 극복해나간다.


작품 속에서 어떤 이의 추락은 잘못된 일인걸 알지만 무법과 폭력의 시대에 어찌 보면 거절하기 쉽지 않은 유혹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암혹한 시절에는 그저 비행기 쇼를 구경하러 갔다가 죽음을 당하는 이들도, 가족을 만나러 가다 폭탄테러를 당하는 이들도, 심지어 길을 걷다 총격을 당하는 일도 많았다. 밖에 나가면 무사히 도착했다고 어떻게든 가족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그런 시대였다. 한 인간의 인생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추락하고 비명을 질러도 단지 소음으로 여겨졌던 인간이 존중받지 못하는 그런 시대.


이 작품은 실제 콜롬비아에서 있었던 수많은 테러와 부패정치 그리고 폭력에서 보호받지 못한 시민들이 일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추락하기 쉬운 혹은 추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외치는 듯하다. 

추락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이것이 설령 소음처럼 들릴지라도 어떤 이의 커다란 외침이고 어떤 이의 비명이고 그리고 절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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