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찾아오는 그녀들 각자의 여정
어느 날 오후 정말로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몸이 축축한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서 보니 팬티가 피로 더러워져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풀이 죽어서 팬티를 깨끗하게 빨아 물을 짠 다음 축축한 채로 다시 입었다. 아마도 다리 사이를 다쳤다고 어머니에게 야단맞을까 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중략 ~ 결국 두려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나는 릴라에게 속삭였다.
“왜 이러는 걸까?”
카르멜라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애는 벌써 1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피를 흘린다고 했다.
“정상적인 거야.”
“여자아이들은 다 그런 거야. 며칠 동안 피가 나고 배랑 등이 아프다가 괜찮아져.”
“정말?”
“그렇다니까.”
그날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카르멜라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카르멜라는 그 상처 때문에 죽을 일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이렇게 설명했다.
“그건 네가 다 컸다는 뜻이야. 남자가 네 배에 자신의 물건을 집어넣으면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된 거지.”
엘라나 페란테 : 나의 찬란한 친구 中 에서
얼마 전 재미있게 읽은 엘레나 페란테 작가의 “나의 찬란한 친구” 중에서 주인공 두 친구 중 레누가 초경을 시작한 부분이다. 195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 시골에서 사춘기 여자아이들은 이렇게 아무 정보 없이 생리를 시작했다.
나의 초경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친구들은 초6, 중1에 많이들 초경을 시작했는데 몸집이 왜소했던 나는 조금 늦게 초경을 시작했고, 나 또한 친구들을 통해 건네 들은 내용으로 초경을 준비했었다. “나의 찬란한 친구의”의 주인공 레누처럼 그렇게 많이 당황스럽진 않았지만 나 또한 초경이 무서웠다. 이렇듯 1950년대의 이탈리아나 1980년 후반의 한국이나 초경과 생리를 맞이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에 조금은 놀랍다. 지금은 그전보다는 초경과 생리에 대한 준비가 나아진 것 같긴 하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의 생리 주기를 가지기 때문에 일생 동안 여성은 대략 450회에서 550회 정도의 생리 주기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평생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하는 생리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을까? 진료실에는 생리이상, 생리불순으로 내원하는 환자분들이 대부분이기에 이상증상을 얘기하기 전에 정상 월경에 대해 먼저 글을 써보려 한다.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월경 주기는 21일에서 35일 사이이며, 월경 기간은 2~7일 정도이다. 한국 여성의 평균 생리 시작 연령은 12세에서 14세 정도이고 45세에서 55세 사이에 폐경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것은 평균적인 수치이며, 개인의 건강 상태, 유전적인 요인, 생활 습관, 환경 등에 따라 생리 시작 시기 및 폐경 시작 시기가 다를 수 있다.
월경 주기는 자연적인 호르몬 변화에 의해 조절된다. 여성의 체내 호르몬 수준은 월경 주기 동안 변화하며, 이는 난소에서 배출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조절된다. 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은 뇌의 시상하부에서 나오는 여러 호르몬(LH, FSH)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생리 주기에 따른 호르몬 변화 때문에 자궁 내막이 증식하고 월경 주기 중에 탈락되어 질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이 생리, 즉 월경이다.
정상적인 월경의 양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어떤 환자들은 월경양이 많아서 빈혈이 있지만 본인의 생리양이 많은지를 모르고, 어떤 환자들은 본인의 생리양이 너무 적어 조기폐경이 아닌지 궁금해서 내원하기도 한다.
생리양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매일 월경혈이 묻은 패드를 저울에 재서 합계를 계산해야 하는데, 연구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닌 일반인들이 그렇게 하기는 매우 어렵다.
연구에 의하면 월경에 의한 체액 손실량은 하루 평균 30~50밀리리터(28~56그램)이다. 일반적으로 7일 이하인 월경 기간 동안 평균 80밀리리터의 혈액이 빠져나가며, 그 범위는 13~217밀리리터로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의학적으로 월경량이 많은(월경 과다) 여성들은 한 주기에 최대 400밀리리터에 달하는 상당량의 피를 흘리기도 한다.
월경량이 많고 적은 것은 주관적이지만,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출혈량이 아니라 월경혈이 새어 옷에 묻는 것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월경 기간 사용한 생리대의 개수와 혈액 손실량이 무관하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월경 용품을 얼마나 자주 교체하는가는 생리대가 젖는 정도보다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리대가 실제로 얼마나 젖었는지 이야기할 때는 통일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생리대가 얼마나 젖었는지, 얼룩이 졌는지 그리고 생리대의 크기(오버나이트, 대형, 중형, 소형)를 정확히 설명해야 증상 파악이 쉬워진다.
월경혈은 빨간색이어야 정상일까? 그렇지 않다.
생리혈의 색깔은 여러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생리혈은 밝은 빨간색에서 진한 갈색 또는 검은색까지 다양한 색깔을 띤다. 생리혈의 색깔은 산소와 혈액이 만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되며,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혈액은 진한 색깔을 띠게 된다. 반대로 충분한 산소 공급이 있으면 밝은 색깔을 띨 수 있다. 따라서 생리 시작 첫날은 일반적으로 진한 색깔을 띠게 된다.
월경혈에는 정맥 혈액뿐만 아니라 질 분비물과 자궁 내막 세포가 들어 있다. 월경혈은 혈액이나 붉은 점액처럼 보일 수도 있고 까맣게 보이거나 덩어리 져 나올 수도 있는데, 이는 의학적으로 모두 정상이다. 가끔 월경혈이 조직과 너무 비슷해 보여 유산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 현상은 의학적으로 ‘탈락막 배출’이라고 불리며, 자궁내막의 일부가 한꺼번에 떨어져 나오면서 발생한다. 자궁내막 세포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올 때 월경혈은 보통 액체 상태지만,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균형이 바뀌면 세포 덩어리가 허물 벗겨지듯 떨어져 나올 수 있다. 이는 에스트로겐에 비해 프로게스틴이 우세해지는 호르몬 피임법을 사용하는 여성에게서 잘 나타나는 현상인데,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생리 주기 동안 체내 호르몬 농도의 변화도 생리혈의 색깔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의 농도가 높으면 생리혈의 색깔이 밝아지고, 낮으면 진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리혈의 색깔은 여성 개인의 건강 상태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진한 갈색 또는 검은색의 생리혈은 때로 자궁내막 조직이 과도하게 떨어져 생긴 것일 수 있으며, 이는 자궁근종, 자궁내막증, 또는 자궁경부암 등의 질병과 연관될 수 있다. 따라서 생리혈 색깔이 이전과 다르게 변화하거나 양이 예전과 다르다면 의학적으로 확인받는 것이 좋다.
초경 시작의 기억이 각자마다 다르듯이, 진료실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생리에 관한 사정 또한 각기 다르다. 매달 찾아오는 생리라 익숙해 질만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이 과정에서 불편함과 불안을 겪는다. 하지만 이 경험은 여성들 각자를 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든다. 생리는 단지 신체의 변화가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중요한 여정이다. 나에게는 생리에 관한 이야기들은 진료실에 찾아오는 환자들과 이 여정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과정은 단순한 의학적 접근을 넘어서, 공감과 지지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