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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의 삼 Apr 12. 2018

내가 '실패한 창업가'가 된 까닭에 관하여.

디자인 문구 브랜드, '삼분의 삼'에 대해.


삼분의 삼은 내가 만든 디자인 문구 브랜드이다.


디자인도, 브랜딩도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패기로 만들어 낸 나의 사랑하는 실패작.


삼분의삼의 주요 제품들.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에 내가 삼분의삼에 투자한 8개월의 시간은 짧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명백하게 말할 수 있다.

나의 브랜드는, 실패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너무 쉽게 봤다'.




패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자금 부족,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어려움, 전부 다 혼자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끝을 몰랐던 게으름 같은 것들.

모든 것들이 다 조화를 이뤄 나를 실패하게 만들었지만, 분석하건대 가장 큰 문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제대로 수립하지 못하였다는 데 있다.


나는 사업 계획서 한 장 조차 제대로 만들 수 없는, 나 스스로도 브랜드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수준의 인사이트를 가지고 이 미친 짓을 시작했다.

브랜드의 정체성이나, 제품들의 방향성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즐겁고 좋아하는 제품들만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작업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지만

나를 갈아 넣은 그림들이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거부당할 때는 이것만큼 괴로운 일 도 없었다.

즐겁고 좋아하는 일이 괴롭고 힘든 일이 되고 나니, 내가 벌여놓은 이 미친 짓에서 도망치고 싶어 졌다.

그러니까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너무 쉽게 봤다'.


나는 지금 타협하는 과정 중에 있다.

브랜드 운영을 잠시 내려놓고, 본업이었던 마케터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우습게도 항복 선언을 하고 나니 브랜드의 정체성이 생겼다.




나, 너, 우리. 삼분의 삼





조금 늦었지만 이제야 만들어진 삼분의 삼의 캐치 프레이즈는 '나, 너, 우리' 다.

나와, 타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

그것이 삼분의 삼의 방향성이다.







얼마 전 나는 대표 자리를 내려놓고 다시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당분간은 둘 모두에 다리를 걸쳐놓으려 했지만, 다양한 사정으로 인해 폐업 신고 절차를 밟아야만 했다.


잰걸음으로 세무서에 들려 제출했던 창업 서류.

그때도 창업이 이렇게 간단한 절차로 가능한 거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있는데, 폐업 신고를 위해 좀 알아보니 심지어는 인터넷으로도 신청이 가능했다.


폐업 신고 버튼을 누르고 나니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잠시 타협하는 이 시간을 잘 활용하겠노라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제대로 수립하는, 그래서 지반이 단단한 브랜드로 만들어 가는 시간으로 만들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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