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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Jan 08. 2020

법인카드 잘 쓰고 계십니까

카드 한 장의 권력

“아, 빵 많이 사 오라니까!”


법인카드로 저녁거리를 사 왔더니 대뜸 팀장이 짜증을 냈다. 회사 내규에 1인 야근식대가 정해져 있었고, 야근자 수에 맞게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 왔는데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은 남은 빵을 챙겨 들고 퇴근을 했다. 나는 몰랐던 것이다. 애초에 그는 야근을 길게 할 생각이 없었고, 그저 법인카드로 산 요깃거리를 챙길 심산이었다.




법인카드 한 장의 쓰임에도 때로는 직장인의 애환이 녹아든다.  영업직도 아니거니와 나 같은 주니어 레벨은 팀장급이 법인카드를 주지 않으면 웬만해선 쓸 일도 없다. 보통은 외근이나 야근 시 내 소유의 카드로 결제를 하고, 추후에 총무 담당자에게 개인경비를 정산하기 때문이다. 몇몇 직장을 거치면서 법인카드로 제 몫을 챙기는 얄미운 사람들을 종종 보곤 했다.


야근을 조금이라도 하고 저녁을 챙겨가는 사람은 양반이다. 나 홀로 회사 근처 샐러드 가게에서 저녁을 때우고 있던 날이었다. 핸드백까지 둘러맨 영락없이 퇴근하는 차림으로 저녁거리를 사들고 법인카드로 결제하는 다른 팀 팀장을 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가 점원에게 건넨 법인카드를 보았고,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본인도 머쓱한지 혼자 야근하는거냐며 웃어넘겼다.) 지인은 상사가 마트에서 장 본 내역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법인카드는 찬스도 아니고, 만능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법인카드 사용처와 금액을 엄격히 단속하는 곳도 있었고, 사후 검증을 하는 회사도 있었다.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면 원칙에 입각해 업무 용도가 아닌 곳에 법인카드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사후 검증했던 회사에서는 랜덤으로 수년 전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에 대해 증빙하라고 직원들에게 통보를 했다. 정말 랜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 일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고통이 될 수도 있다.


회사는 바보가 아니다. 일부는 직원들의 사사로운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알면서도 묵인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갑-을 관계는 언제든지 틀어질 수 있다. 이전에는 설렁설렁 눈감아줬던 일도, 관계에 묘한 신경전이 생기면 반드시 문제가 된다. 무심코 사용했던 법인카드로 꼬투리 잡힐 일은 만들지를 말자. 그리고 회사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그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직급이 높은 사람일수록 일조하는 바가 크다. 나쁜 본보기를 만드는 일도 없어져야 하고, 그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주니어들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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