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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lli Jan 09. 2022

갑자기 네일아트

최근 한 달간 내 둘레에서 나를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쟤가 왜 저렇게 손톱에 둔갑질을 부리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거의 1주일에 한 번씩 네일에 변덕질을 했다. 평생 하지도 않던 짓을 왜 그렇게 했을까.


나는 원래 네일아트를 하지 않았다. 손도 오뎅손으로 통통하고, 손가락도 짧고, 피부도 어설프게 까무잡잡한 편이라 (뭐 그렇다고 태닝한 것 같은 구릿빛도 아니고) 무슨 색을 해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20대 때 두 번 정도 네일을 받아봤지만 영 색도 어울리는 걸 못 찾겠고, 불편하기도 해서 가끔 여름에 외국으로 여행 갈 때 페디큐어만 받고 갔었다. 여름에 맨발에 맨 손톱이면 벗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 그런 걸까? 나만 그런가?


쿠바에 갔을 때, 버스 예약을 하러 갔는데 버스표를 끊어주는 언니의 손톱이 (요즘의 화사 손톱만큼) 긴 걸 보고 '우와 저 손톱으로 어떻게 글씨를 쓰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모든 장소에서 만난 쿠바 언니들은 다 손톱이 길고 화려했다. 그 언니들은 우리가 한 페디큐어에 관심을 보였는데 어디서 했느냐 (한국에서 했냐, 쿠바에서 했냐), 혹은 얼마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들이 그녀의 나라에서 네일을 받는 가격은 만원 언저리였던 것 같다. 우리는 거의 4-5만 원의 페디를 받고 갔던 터라, (두 나라이 물가 차이는 차치하더라도 여튼) 그 가격을 부러워했었다.


갑자기 네일을 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인스타 광고...? 요즘에는 집에서 혼자 할 수 있게 네일팁을 붙이거나 스티커 같은 젤을 붙인 다음에 경화시키는 셀프 네일이 유행이다. 그런 종류의 광고였는데, 요즘 디자인은 모두 같은 색을 칠하는 게 아니라 손톱마다 전부 다르게 하는 게 많다. 어떤 디자인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저 색과 저 디자인이면 시커먼 내 손 하고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부터였다. 네일에 돈 쓰기 시작한 게.


처음에 시도한 디자인은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마음에는  들었고, 비슷한 부류의 , 다양한 종류의 디자인을 사기 시작했다. 손톱이 약해서 조금만 자라면  부러져버리는데 오히려 젤네일 스티커를 붙이니까 부러지지 않고 길게 기를  있었다. 스티커 종류 말고도 그냥 위에 팁을 붙이는 종류도 있는데 이쪽도 예쁜 디자인이 많았다. 그리고 붙이기만 하면 되니까 훨씬 빠르고 쉽게   있었다. 젤네일 스티커보다는 빨리 떨어지는  같지만 손톱이 짧거나 부러졌을 때는 네일팁이 훨씬 유용했다. 그러면서 점점  디자인,  색깔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1주에  번씩 디자인을 바꾸게 되었다. (네일숍에서   받으면 가격은 비싸지만 그래도 오래가는데 이렇게 자주 바꿀 거면 네일숍 가는 거랑 금액면에서  차이는 없을  같긴 하다만...)


사실  손톱에 관심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딱히 누군가를 보여줄 사람도 없었다. 그냥 매우 기분이 피곤하거나  일이 많을 때마다 앉아서 손톱을  살게 굴었다.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을 떼어내고 손톱을 정리하고 무언가를 붙이고 끝에는 자르고 경화시키고 다듬고 하는 시간은 30-40 정도 걸렸는데  시간 동안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있었다. 사실  때리는 일은  때리기 대회가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전에 6개월  집에 오자마자 30분씩 캘리그래피를  적이 있다. 그때도 피곤함을 무릅쓰고 글씨를 썼던 건 그 시간 동안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돼서'가  이유였던  같다. 손은 열심히 움직이지만 머리와 마음은 쉬는 시간, 손톱을 갖고 둔갑질을 하는 시간은 나에게는 온전한 휴식시간이었다. 그래서  바빴던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잠도 부족한 와중에,  12시가 넘어도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손톱을 매만지고 있던  같다.


이젠 기술도 좀 생겼고, 나한테 어울리는 디자인과 색을 찾는 안목(?)도 생긴 것 같다. 다만 자꾸 돈을 써대서 (생각보다 비싸다) 이제 그만 멍 때리기 수단을 바꿔야 하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셀프 네일을 종종 할 것 같다.


그냥 내 눈에 이쁘니까,

이래 보여도 이쁜 거 좋아한다고.

혹시 우리 집 놀러 오시면 한 번 해드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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