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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lli Jan 01. 2022

오늘이 뭐 특별하다고

라고 새해가 생각합니다

  새해 첫날,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밤새 차를 달려 동해바다고 갔을 거고, 어떤 이들은 동네에서 높은 곳을 올랐을 거고, 어떤 이들은 한라산도 올랐을 거고(아 올해는 행사를 안했다고), 어떤 이들은 강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했을 것이다. 뭐, 여느 주말과 똑같이 늦잠을 잔 사람도 많겠지만. 난 원래 집이 동해바다 근처지만 그렇다고 새해 일출을 보러 특별히 간 적은 없다.  몇 년 전 아직 2월 개학과 봄방학이 있던 시절, 크리스마스 즈음 방학을 해서 12월의 마지막 날을 본가에서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하필 31일 오후에 출발했다가 고속도로의 수많은 차량으로 인해 밤 12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기억은 있다. 원래 3시간 조금 넘는 거리인데 6-7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냥 집에 가려고 한 건데,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만 잤는데. 그 이후론 12월 31일엔 절대 집에 가지 않는다.


  특별할 것 없던 중학교 여름방학의 아무날, 새벽 운동하는 엄마를 따라 바닷가 쪽 공단에 갔다가 해돋이를 본 적은 있다. (그래도 바다가 근처인데 해돋이 본 기억은 있어야지)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구름 한 점 없는 바다에서 떠오르는 동그랗고 활활 타오르는 태양, 그 이후에도 그 이전에도 중학생 때 봤을 때만큼 선명했던 해돋이는 없다. 그냥 예쁜 일출이 보고 싶다면 아무것도 아닌 날 가보시라.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해는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이고, 지구는 늘 그렇듯이 한 방향으로 돌고 있을 거다. 태양이 우리를 본다면 (지금은 못하고 있지만) 마지막 날이라고 모여서 폭죽을 터트리고,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다음날 굳이굳이 밤새 달려서 해돋이를 보고, 서로에게 좋은 일 많이 생기라고 덕담을 하는 인간을 본다면, "오늘이 뭐 특별한 날이라고 쟤네는 저렇게 유난이지?"라고 생각할지도.


  시간과 시간의 경계를 나누는 일, 인간이 만들어낸 이 '시간'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생소하게 여겨진다. 반 아이들에게 위도와 경도를 알려줄 때, 어떤 나라가 위아래로 길면, 한 나라 안에서 위도 차이가 많이 나면, 기후가 달라지고(물론 해발고도, 대륙, 해양 등의 영향이 있지만), 러시아처럼 좌우로 길면, 경도 차이가 많이나면, 한 나라 안에서도 여러 개의 시간대가 나타난다고 (러시아는 11개다) 설명한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정한 '시간'이라는 대상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는데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말할 수 있다는 게 문득 너무 신기하다.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에서 유럽 쪽으로 가면 분명히 몇 시간이나, 그것도 많이 지났는데 오히려 그 이전의 시간에 도착한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 경험이, 그 시간을 관통하는 기분이 너무 오묘하고 신비로워서 내가 지나온 시간은 어디에 가 있는 건지 그게 늘 궁금했다. 그래서 자꾸만 멀리가는 비행기를, 오래 걸려야 도착하는 곳을 가고 싶어하나보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 시간이라는 관념, 그리고 시간과 시간의 경계를 건너는 일, 그 지점에서 우리는 오늘을 기념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교육학에서도 수업 할 때 학생들에게 유의미한(meaningful) 경험을 줘야 한다고 한다. 얼마나 의미가 인간에게 중요했으면, 이게 중요한 교육 원리가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시간을 만들어낸 건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서 생긴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있으니 시간을 구분하고 시간을 지키고 또 새로 올 시간을 기념하면서 다시 또 시간을 잘 살아내기위한. 아니 그저 시간을 잡고 싶었던 비루한 욕심인지도.


  새해를 맞이하여 동생네 미용실로 갔다.(역시나 해돋이 따위엔 관심도 없는 바닷가 출신답게 내 동생은 날이 훤히 밝아올 때까지 잤다) 수많은 사람들은 새벽부터 동쪽으로 향했지만, 나는 해 뜬 직후 서쪽으로 갔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방금 산 위에 떠오른 새해를 운 좋게도 맞이할 수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여 조카들하고 놀고, 새해를 맞이하여 피자도 시켜먹고, 새해를 맞이하며 스벅에서 벤티 사이즈 라테도 마셨다. 돌아올 때는 동쪽으로 향해서 집으로 왔다. 반대쪽 고속도로 차선은 거의 주차장이 되어있었다. (이럴 때마다 우월감을 느끼는 건 내가 아직 인격적으로 모자란 인간이라서 그런 것 같다.) 집에 거의 다 도착하니 새해가 졌다. 새해를 맞이한다는 건 말 그대로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뜻인데 의도하진 않았지만 뜨는 새해와 지는 새해를 맞이했다. 와우.


새해를 맞이하여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를 맞이하여 서쪽을 다녀왔다.

새해를 맞이하여 머리를 했다.

보라색으로

이게 제일 잘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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