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이 이야기는 팩션입니다. 팩션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한국식 영어 단어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실화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픽션을 섞어 재창조하거나 더 나아가 가상의 사건·인물을 덧붙이는 행위 또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을 의미합니다. 소개팅 당사자는 여러 사람이 모인 인격들로, 허구의 인물임을 알려드립니다.
'가인아, 그 선배가 꼭 한 번만 만나달래.'
'아니 공무원시험 한 달 앞두고 뭔 소개팅이야'
'세 달째 해달라고 조르잖아. 그냥 소원 들어주는 셈 치고 나가봐'
친구가 몇 달째 소개팅을 하라고 했다. 4학년인 행정학과 선배가 나랑 소개팅을 하고 싶어 했단다. 행정학과의 절반 이상은 공무원시험을 준비했고, 그 선배도 한 달 뒤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소개팅을 한 번도 못해본 게 아쉬운 사람인가 싶어 승낙했다. 나도 소개팅은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소개팅 승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네, 친구한테 자꾸 부탁했다고 하셔서.. 공부는 잘 되시나요?'
'그럭저럭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학교생활은 어떠세요?'
'네 선배들에게 실컷 얻어먹었었는데 이제 내년에 새내기 들어오는 게 기대도 되고 아쉽기도 하네요'
...
대화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적당히 큰 키에 샤프한 얼굴, 맞장구도 너무나 잘 쳐줬고 무엇보다도 다정했다.
'이번엔 제가 살 테니 다음에는 가인씨가 사요'
그리고 저녁, 문자메시지가 왔다.
'가인씨가 좋아하는 냉면집 검색해 놨는데 다음 주에 갈까요'
완벽한 에프터였다.
첫째, 너무 기다리지 않게 소개팅한 날 저녁에 메시지를 보낸 것
둘째, 밥을 먼저 산 뒤에 나에게 다음 밥이라는 채무를 남겨서 만남을 이끌어낸 것
셋째, 만남 이후에 좋아하는 냉면집까지 검색해서 이야기를 성실하게 들었다는 티를 낸 것
만점이었다. 만점!!!!!!
두 번째 냉면 먹기 데이트도 좋았다. 이전의 망한 연애를 만회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전 남친은 나 외에 두 명을 더 만나서 양다리도 아닌 세 다리를 걸쳤다. 이번에는 내게 좋은 사람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도 연애를 하나요.
세 번째 만남에는 술을 한잔 하기로 했다. 세 번 만나고 좋으면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만남은 썸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어떤 남자가 좋아요?'
'거짓말하거나 바람피우지 않는 남자요'
'그런 남자가 있어요? 정말 나쁘다'
그러던 찰나, 내 핸드폰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기의 발신자 번호를 보자, 그 남자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 전화 받지 마세요'
'왜죠? 누군데 받지 말라고 해요? '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님 앞에 있는 남자 여친인데요'
??????
그랬다. 그는 여친이 있는 남자였다. 그녀의 말은 이랬다. 자기는 그 남자랑 2년 동안 동거 중이며, 지난주에 잠시 싸워서 거리를 두는 기간을 갖기로 했는데 그 사이에 소개팅을 나갔다는 것이다. 그녀가 울면서 말했다.
'나는 그 남자 애도 가졌었구요 그 남자 지금 쓰는 핸드폰도 내가 사준 거예요'
'제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님네 과사 컴퓨터 해킹해서 알아냈는데요'
...
이게 무슨 소린가. 여친에 해킹에 동거라니.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전화를 받으며 멍하게 쳐다보니 그는 마시던 맥주잔만 만지작 거렸다.
'여친 있으시네요?'
'아 지난주에 헤어졌는데요'
'안 헤어지셨다는데요'
'걔가 착각한 거예요'
'세 달 전부터 저랑 소개팅 하고 싶으셨다면서요'
'그때도 헤어졌었어요'
이 미친놈이.
망할 놈의 팔자.
첫 남친도 바람피우는 놈이었는데, 두 번째도 이런 작자라니. 그 여친은 과사컴퓨터 해킹까지 하고 부창부수가 아닌가.
그날 저녁, 소개팅을 내가 다시 하면 개다 개 라고 생각하며 애꿎은 이불을 빵빵 찼다.
개 이야기는 다음화에도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