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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n 17. 2024

강릉, 한 겨울의 뜀박질

아침 8시, 바깥 기온 영상 5도, 이 정도면 장갑은 필요 없는 날씨이다. 마스크를 쓰고, 여분의 마스크를 주머니에 몇 개 더 챙겼다. 땀에 흠뻑 젖으면 뛰다가도 신경 쓰이니까.

왼쪽 저편에 바다가 보인다. 여기는 강릉. 저기 앞에는 소나무 숲도 백사장도 있다.

바닷가에서 뛰는 건 처음이다. 오늘 목표는 6km. 3km만 뛰고 다시 돌아올 것을 다짐하며 애플와치의 '실외 달리기'를 누르고 서서히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아침 바람 찬바람에 겨울바람을 맞으며 달리기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시작은 그 녀석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누나 살면서 한 번쯤은 예쁜 몸매를 만들고 싶지 않나요?'


1. 살면서

2. 한 번쯤은

3. 예쁜 몸매


세 개 다 마음에 팍 꽂혔다.


살면서 : 일생 동안에, 살면서, 죽기 전에, 그러니까 숨이 붙어 있고 이게 가능할 때

한 번쯤은 : 단 한번, 두 번 세 번도 아니고 한 번만 하면 되고

예쁜 몸매 : 평생 갖고 싶었던 그거 예쁜 몸매!!!!!


찬이의 말을 듣고 홀린 듯이 집 근처 PT샵을 알아보고 수강 신청을 하고, 목표가 있어야 제대로 뺀다는 말에 운동을 시작한 날로부터 100일 후에 스튜디오를 예약했다.


그렇다.


바디프로필을 찍기로 한 것이다.


매일 3시간씩 운동을 했다. PT 한 시간, 아침 러닝 한 시간, 찬이와 곰과 줌으로 원격 운동 한 시간.

근육 운동을 하고 나서 15분 안에 단백질을 먹어야 했기에(그땐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PT가 끝나면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와서 삶은 계란의 흰자만 골라내서 다섯 개씩 먹었다. (노른자는 지방이 있으니까)

하루에 닭가슴살을 세 덩이씩 삶아 먹고, 탄수화물은 호박으로만 섭취하고(얼굴이 노랗게 변하지 않은 게 다행일만큼) 쌀과 밀가루는 마침내 끊게 되었다.

소개팅을 할 때도 소개팅 장소로 샐러드집을 선택했다. 마침 운동하는 남자와 만나 식단과 근육 얘기를 꽃피우며 헬스 얘기로 가득 찬 만남을 했다.(그래서 잘 안 됐나보다)

근손실은 삶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크~~~~~~~~은 손실이기에 매일 운동을 하지 않으면 내 몸이 무너져 버릴 것처럼 여겨져서 조바심이 났다. 매일 거울을 보고 생기지도 않은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을 만들어보곤 했다.



그러다 두둥. 코로나가 가장 기승을 부리던 그 겨울에, 수도권의 모든 운동시설들이 무기한 셧다운이 되어 문을 닫았다.


절망이 찾아왔다. 오 마이 근육들, 근손실은 절대 안 돼. 어떻게 만든 애들인데. 오 노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으로 찬이와 이 슬픈 소식을 나누다가 강원도는 운동 시설이 닫히지 않고 계속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찬이와 나는 강릉으로 원정 헬스 여행을 가자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간 김에 적어도 이틀은 헬스를 해야 했기에 2박 3일을 계획했다. but 남녀 칠 세 부동석. 아무리 우리가 트레이너와 학생 같은 관계여도 같은 펜션에서 동침을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민망함이 한 줄기 남아 있어서 내 친구 연이에게 겨울바다를 보러 가자고 꼬셨고 우리 셋의 기묘한 강릉 원정 헬스 여행이 성사된 것이다.


연이는 맛집을 담당해서 우리가 헬스장에 다녀오는 동안 먹고 싶은 곳의 리스트를 짜놓았고

찬이는 운동을 담당해서 헬스장에서 며칠 동안 못한 하체와 상체 스케줄을 만들어 혹독한 트레이닝을 하고

나는 운전을 담당해서 두 사람을 서울에서 강릉으로 싣고 와서 연이가 찾은 맛집으로 카페로 나르며 각자의 역할을 매우 충실하게 이행했다.


이렇게 여행 이틀간 강릉 맛집이라는 단맛과 헬스장이라는 짠맛을 느끼며 여행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았으나.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밤에 펜션 마루에서 런지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리가 삐그덕 댔다. 무릎 안쪽이 시큰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잠깐 아픈거라 생각하고 아침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강릉바다를 꾸역꾸역 6km 달리고 돌아오니 다리는 더욱 뜨거워졌다. 욱신거리고 뭔가 무릎 안쪽을 찌르는 느낌이 간헐적으로 느껴졌다. 정말 통증이라는 것이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오리발 건염입니다. 2주 정도 무릎 쓰지 마세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내가 오리발 건염이라니!!!! 무릎을 무려 2주나 쓰지 말라니!!!!!!



결국 이틀 동안의 헬스와 2주 간의 요양생활을 맞바꾼 강릉 원정 헬스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아침바람 찬바람을 맞으며 운동을 할 때는 스. 트. 레. 칭. 을 충분히 해야 하는데 운동의 기본을 지키지 못해 생긴 일이었고, 이후 2주간은 상체와 복근운동만 하며 러닝은 쉬었다.


다행히 하체 근손실은 2주 동안 크게 일어나지 않았고 무릎이 낫자마자 폭주하듯 운동을 하고, 흡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근육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의 바디프로필을 찍을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아직도 강릉 바다를 보면 그때의 기묘한 여행이 생각난다.


다시는 뭉치지 못할 이상한 멤버로, 상상도 못 할 콘셉트로 다녀온 강릉여행.

그 차가운 겨울바람을 느끼며 언젠가 다시 한번 달리고 싶다.


물론 충분히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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