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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Nov 03. 2020

무사 착륙 후 승무원의 행동에 두 눈을 의심하다


2020년 1월. 외교부 사무실에선 중국 우한에 체류 중인 한국 교민들을 데려오기 위한 전세기를 투입하느냐 마느냐로 격론이 벌어졌다. 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하루아침에 등장한 21세기의 흑사병. 어떤 과정을 통해 감염되는지, 증상, 예후, 치료, 후유증 모든 것이 불분명한 전염병이다. 무지는 곧 공포이고 미지의 존재와 싸우는 건 두려운 법. 하지만 결국 정부는 전세기를 띄우기로 결정한다.


비난은 폭발했다. 코로나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둬 오는 사람은 막고 방벽을 높이 쌓아도 모자랄 판에 병의 진원지로 추정되는 우한에 있던 사람들 수백, 수천 명을 비행기에 태워 데려온다고? 부정적인 의견들만 넘쳐났다. 하지만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나.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다. 유학생, 회사원, 사업가, 주재원 아빠를 따라 간 엄마와 아가들까지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고 이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1월 30일(목) 밤, 대한항공의 보잉747 전세기가 우한으로 출발했다. 이 비행기에는 총 18명의 대한항공 직원이 탑승했다. 기장, 정비사, 운송요원, 승무원… 모두 자원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나서겠다며 손을 들 수 있을까? 거액의 위험수당을 주는 것도 아니고 방역조치가 완벽하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자기로 인해 주변과 가족들에게 심각한 피해가 갈 수 있는데도 이들은 지원했다. 사명감이나 책임감, 숭고함 같은 단어 몇 개를 합쳐도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중국과의 조율이 원활하지 않아 검역, 수속, 이륙 등 거의 모든 과정에 딜레이가 이어진 끝에 1월 31일(금) 새벽, 비행기는 가까스로 우한텐허공항을 뒤로하고 날아올라 아침 7시 58분 김포공항의 활주로에 무사히 안착했다. 이 순간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김포공항의 담벼락에서 KE9884 전세기의 무사 착륙 과정과 교민들의 하차, 검역, 이동 등을 카메라로 담는데 집중했다.



각 언론사들은 취재진의 안전을 위해 절대 접근하지 않고 최대한 멀리서 사진과 영상을 기록하기로 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기내의 의료진과 검역관이 승객을 검진한 뒤 바깥으로 내보냈고 이들은 지상의 검역소 텐트로 들어가 체온 측정과 문진을 받았다. 하나하나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라 승객들은 20~30명 단위 그룹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내려왔고 368명 모두 마치는 데는 거의 한 시간 가깝게 걸렸다.


막 착륙했을 때만 해도 하늘에 어둑어둑한 새벽 기운이 좀 남아있었는데 마지막 승객이 내릴 때쯤 되니 완연한 아침이 되어 있었다. 엄마 손을 꼭 붙잡은 아가, 부부, 학생, 노인. 모두 이동식 계단을 통해 비행기에서 안전하게 내렸다. 곧바로 이들은 버스에 올라 진천과 아산의 인재개발원을 향해 출발했다.


이로써 일은 다 끝났다. 특별한 사고 없이 우리 교민들이 공포의 우한을 탈출해 무사히 고국의 품에 안겼다는 소식은 각사의 생중계 뉴스를 통해 잘 나갔다. 옆에 있던 사진기자들은 주섬주섬 카메라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평소에 안면이 있던 종편 촬영기자들과도 새벽부터 수고했다며 인사를 나눴다. 떠나도 되는 상황인데 왠지 좀 더 지켜보고 싶었다.



승무원 두 명이 문 앞으로 나왔다. 아래에 있는 검역사들과 뭐라고 얘기를 나누는 듯했지만 멀어서 들리진 않았다. 두 팔로 X를 그리는 걸 봐서 이제 남은 승객이 없다는 사인을 보내는 듯했다. 그때였다. 레벨D의 방호복에 고글, 장갑, 덧신으로 중무장한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 승무원 한 분이 두 팔을 하늘 높이 올리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는 순간 깜짝 놀랐지만 이내 웃음이 터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친절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절도 있는 몸동작으로 승객 한 명 한 명 강단 있게 통제하던 그녀였는데 모든 승객이 무사히 하차하니 그제야 긴장이 풀렸나 보다. 바이러스 보균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밀폐된 기내에서 2시간 반 동안 함께 비행하며 얼마나 걱정되고 무서웠을까. 거기다 방호복에 마스크, 장갑 두 겹, 손목과 발목은 테이프로 칭칭 동여매 행동은 갑갑하고 숨쉬기조차 힘들었을 게 분명하다. 마음 고생에 몸 고생까지 한 끝판왕 미션에 성공했으니 신이 날 만도 하다.


'누군가는 반드시 탑승해 승객을 돌봐야 한다. 내가 아니면 결국 옆의 동료가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어차피 누군가 꼭 해야만 한다면 그거 그냥 내가 할게. 안전하게 끝낼 자신 있어. 나 그런 여자야.' 와, 이렇게 멋질 수 있나? 용감한 이들. 진정한 프로다. 가볍게 어깨춤을 추던 승무원은 뒤에서 동료 승무원이 나오자 그대로 와락 껴안았다. 두 여성 모두 기껏해야 20~30대에 불과한 청춘들이다. 이 정도로 위험도가 높은 비상 상황에서의 비행은 처음이었을 거다. 둘은 한참 동안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격려하고 위로했다.


이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내 카메라에 녹화됐다. 여러 가지 시사하는 게 참 많은 장면이었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의 가공할 무서움. 공포심을 억누르고 자기 자리에서 맡은 소임을 다하는 사람들. 일할 때는 더없이 프로페셔널한 스튜어디스들이지만 그들도 결국 흥 많고 겁 많은 평범한 우리의 여동생이자 언니, 누나들이라는 것. 고생한 그녀들이 참 대견스러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당일 아침까지도 누리꾼들은 뭣 하러 위험을 감수하며 중국 교민들을 입국시키냐며 성화였고 아산과 진천 주민들은 인재개발원 진입로를 트랙터와 농기계로 막아가며 격렬하게 수용 반대 집회를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한 교민들을 태우고 온 대한항공 승무원이 (아무리 일이 끝났다고는 해도) 비행기 앞에서 둠칫둠칫 바운스 타는 모습을 저녁 뉴스에 내보낸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아주 불길한 예감…


결국 이 장면은 위에 보고하지 않기로 했다. 자기의 소명을 다한 시민 영웅들을 지켜주고 싶었기에. 다른 기자나 촬영팀이 혹시 남아 있는지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자극적인 기사로 사람들 끌어 모아 클릭수 장사에 혈안이 된 매체들이 저 분의 사진을 찍어 [단독] 우한 전세기 착륙  춤판 벌이는  막히는 뒤태의 여승무원 …같은 기사를 내기라도 한다면 정말 슬플 것 같았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기자들은 새벽부터 고생해서인지 교민들이 떠난 즉시 현장을 정리했고 그녀를 담은 건 나밖에 없었다. 잘됐다. 그녀의 귀여운 어깨춤은 내 마음속에만 저장해 두는 걸로. 고생 많으셨어요. 인류가 늘 그래 왔듯이 언젠가는 분명 코로나도 이겨낼 거고 그때가 되면 오늘 있었던 용감한 비행담을 안주삼아 친구들과 즐겁게 담소 나누셔요, 이름 모를 승무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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