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야마토> 2005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성노예 전쟁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취재를 위해 중국 상해를 찾았다. 소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자료를 통해 당시에 있던 위안소를 찾아갔지만 대부분 흔적조차 발견하기 어려웠다. 2019년의 상해는 재개발의 광풍을 타고 거리 대부분이 으리으리한 고층건물로 이미 변했거나 한창 변하고 있는 중이었다.
1945년까지 백여 명의 한중일 위안부 여성들을 두고 영업하던 ‘극동클럽’은 이제 1층에 스타벅스가 입점한 고급 빌딩이 되었다. 고향을 떠나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상해 한 복판, 칼을 찬 일본 군인들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몸을 유린당하던 조선의 여동생들이 눈물 흘리던 땅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든 중국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옆의 또 다른 위안소 터는 아예 동네 자체를 싹 다 갈아엎어 ‘사천북로 공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꽃길 사이로 유모차를 끄는 젊은 중국인 부부는 자기들이 산책 중인 이 공원이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성착취, 폭행, 살인이 자행되던 끔찍한 지옥도였다는 사실 같은 건 전혀 모르는 듯 평온하기만 했다.
한참을 찾아 헤매던 중, 해남로 80호 거리의 한 귀퉁이에서 옛 모습을 온전하게 간직한 건물을 하나 발견했다. 출장팀과 통역 선생님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얼핏 보기엔 그저 많이 낡은 건물로만 보였지만 4층짜리 평범한 공동주택이라고 보기에는 의아한 공간이 건물 1층에 떡 하니 있었다. 출입문 바로 옆으로 ‘매표소’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군이 입장료를 내고 티켓을 끊은 다음에 각 방으로 올라가던 곳. 이곳이 바로 위안소였다.
카메라로 위안소 이곳저곳을 촬영하고 있자니 영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책이나 TV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던 것과는 느낌이 너무 달랐다. 이건 재연이 아니라 진짜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이곳은 그럴듯하게 만들어 낸 세트장이 아니라 참혹하고 가슴 아픈 일이 실제로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이다. 큰돈 벌게 해 주겠다는 말에 속아서, 혹은 마구잡이로 차에 실려 납치당하거나 길거리에서 강제로 끌려온 그녀들. 폭력과 착취, 학대로 얼룩진 우리 누이동생들의 눈물과 탄식이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공간이었다.
십여분 떨어진 거리에도 아직 형태를 갖춘 위안소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 당시에는 ‘대일살롱’ 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하던 위안소였다는 사실을 이 건물에 살고 있는 중국인 진 할머니는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80명 정도의 여자들이 일하고 있었고 매일같이 군인들이 들락거렸다. 대외적으로는 살롱 댄스홀이었지만 실제로는 위안소였다. 내 평생 여기에 살고 있어 누구보다 잘 안다. 이 건물도 철거하고 새로 지었어야 하는데 집주인과 채무관계가 얽혀 진행이 늦어지는 바람에 철거 못하고 남아있는 거다’
여기도 앞서 다녀온 건물처럼 고시원 같은 느낌으로 리모델링한 공동주택이 되어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몸 하나 뉘이면 꽉 차는 작은 방들로 가득했다. 이 좁은 단칸방에서 희망 없이 바스러져 간 우리네 할머니들. 2021년 5월 3일 자로 또 한 명의 위안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딱 14명이 살아 계신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한결같이 그녀들이 돈 벌겠다며 자발적으로 몸을 팔았거나 부모들이 생활고 때문에 팔아넘긴 거지 우리가 강제한 바 없으니 책임질 것도 없다는 입장과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이미 다 끝난 문제인데도 우리가 통 크게 양보해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진행했고 100억 원이라는 거액까지 줬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물고 늘어질 셈이냐는 투 트랙으로 뻔뻔하게 대응하고 있다.
선조들의 과오를 빠짐없이 가르치고 반성해야 할 자국의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내용들은 모조리 삭제해버렸고 세계 각국에 세워지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에는 집요하게 태클을 건다. 반성과 사과는커녕 부정과 책임회피로만 일관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일본은 어쩜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지 조금은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상해사범대학교에 위치한 위안부박물관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푸르른 봄날의 교정 한복판에서 조선과 중국의 어린 소녀가 의연하게 앉아있는 ‘한중 평화의 소녀상’을 발견했다. 아까 봤던 다닥다닥 개미굴 같은 방 안에서 햇볕 한 줌 쬐지 못하고 유린당했던 이들이 딱 이 정도 나이, 이 정도 체구의 가녀린 소녀 들이었겠지. 먹먹한 마음으로 두 아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빙글 돌아 소녀상 뒤편으로 갔다. 그곳에는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이미 세상을 뜬 그녀들이 하고 싶었던 말, 원통한 마음에 백발이 성성한 할매가 되어서까지도 파렴치한 일본을 향해 목청껏 외치고 있는 말 한마디가 절절하게 새겨져 있었다.
We can forgive, but we can never forget.
일본제국 해군전함 야마토. 1941년 당시 1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일본군의 최종병기. 어지간한 항공모함과도 맞먹는 크기의 6만4천톤급 세계 최대 장갑함. 당시 일본 한 해 국가 예산의 1%를 배 한 척 만드는데 몽땅 투입할 정도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만들어낸 대일본제국의 자존심.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한 세계 각국이 공동으로 맺은 군축조약을 위반하면서까지 만들어낸 괴수. 하지만 부족한 성능에 무능한 군 수뇌부의 삽질까지 더해 이렇다 할 성과도 올리지 못한 채 침몰해버린 무모한 제국주의의 상징. 영화 <남자들의 야마토>는 바로 이 야마토 전함의 마지막에 대한 기록이다.
종전 6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작품인 만큼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철저하게 일본의 시각에서 태평양전쟁을 다룬다. 16~17살 남짓한 나이에 징집돼 야마토 함에 오르게 된 해군 신병들. 고작 중학생 정도의 소년들임에도 이들은 미국을 상대로 장렬하게 싸운다. 가혹한 구타와 부조리함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이들은 ‘대일본제국’을 위해 한 목숨 던진다. 부상을 당해도 굴하지 않고 상관이 말려도 기어코 배에 다시 오른다. 미국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질 때는 창밖으로 벚꽃마저 아름답게 휘날린다. 뭔가 좀 이상한데? 이들은 어디까지나 ‘가해자’인데도 화면 속엔 드라마틱한 비장미가 철철 넘쳐흐른다.
배 밖의 인간군상들 또한 마찬가지다. 휴가 나온 소년병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옆집 아주머니. 이미 전쟁으로 두 아들을 잃은 그녀지만 더없이 환한 미소로 주인공을 도닥여준다. 어렸을 적부터 소꿉친구인 귀염둥이 여자아이. 어머니. 가족. 연인. 자식. 단짝 친구들… 이들 중 많은 수가 미군의 폭격으로 처참하게 죽거나 다친다. 도쿄 대공습으로 집이 불타고 사람들이 죽어간다며 모두들 분노한다. 주인공 소년 소녀는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운다.
잠깐.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너희가 왜 폭격을 때려 맞았는지? 한국 중국 인도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일본이 얼마나 많은 나라에 침략해 군인과 민간인들을 죽이고 포로를 학대했으며 여성과 아이들을 참혹하게 괴롭혔던가.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을 너무나도 많이 벌이지 않았는가. 이성의 상실. 야만의 증명. 광기의 폭주. 수많은 사료가 말해주고 있는 비극의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위로하는 대상은 오로지 전범국인 일본, 자기 자신들이다. 어린 나이에도 죽음을 무릅쓴 기특한 소년병. 대일본제국의 용감한 군인. 사랑하는 이들을 전장으로 보낸 가족.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군 수뇌부와 정치인. 일본의 자존심이었던 야마토 전함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에게 헌화의 꽃 한 송이를 경건하게 올리는 프로파간다의 정수.
이럴 수는 없다. 이러면 안 되는 거다. 아무리 상업영화라지만 어쩜 단 1초, 단 한 컷, 단 한 프레임에서조차 자기들이 한 천벌 받을 행동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 피해국에 대한 사죄와 유감, 침략전쟁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있는가. 똑같은 일을 벌인 전범국 독일에 이와 같은 영화가 있던가? 내 기억으로는 못 본 것 같다. ‘우리 불쌍한 독일 군인들, 너무나 안됐어. 그 추운 러시아 침략하다가 또 더운 아프리카에서 전쟁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나치 친구들. 토닥토닥’ 이런 내용의 영화는 듣도 보도 못했다. 독일 헌법상으론 이런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불법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런 영화는 존재해선 안 된다. 고민과 성찰이 결여된 영상물이란 도대체 어디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가.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게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아직 영상매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일본의 청소년들이 별생각 없이 <종전기념일 특선 NHK 주말의 명화: 남자들의 야마토> 를 볼 거라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어지간하면 피하는 편이지만 아주 가끔 일본 대학생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주제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독도의 실효지배, 침략전쟁의 사과와 피해보상, 강제징용과 착취, 위안부, 한일합병의 불법성과 가혹한 식민지배… 그러나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서로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게 강하게 느껴졌다. 뭔가 논쟁을 좀 벌이려 해도 알고 있는 기본 전제들부터가 너무나도 다르다. 서로 역사시간에 배운 내용들이 천지차이인 데다 알고 있는 것, 감추고 있는 것, 윤색된 것, 과장, 축소, 미화…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이래 갖고는 해결은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남자들의 야마토>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어쩌면 점점 더 노골적일지도 모른다. 미개한 동아시아인들의 해방을 위해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일으켜야만 하는 고뇌에 찬 황국의 히어로물이 나오지 말란 법 없다.
해결책은 정녕 없을까?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독일-폴란드’ 처럼 가해국과 피해국이 함께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보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양국의 아이들을 가르쳐 서로의 공감대와 이해의 폭을 넓히는 방식이 그나마 바람직해 보이는데… ‘한일 공동 역사교과서’라… 아마 안 되겠지. 100년이 지나도 절대 안 될 거야 이건. 절레절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