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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been 금콩 Oct 07. 2020

5년 전 신입사원, 나에게

첫 직장을 퇴사하고 1년 뒤 남기는 글

 퇴사, 그게 뭐라고 이렇게 어렵고 맘고생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일은 한걸음 뒤에서 보면 그저 작은 점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 지금 생각해 보면 4년간의 직장생활에서 나는 항상 불편했다.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이 희생되고, 고정관념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고, 성장을 억누르는 회사라는 조직사회의 부조리함이. (물론 그 부조리함 덕분에 나는 퇴사를 결심했고 다른 꿈을 찾아 나설 용기가 생겼지만) 그런데 이게 내 친구, 내 언니, 내 동생들에게 그대로 일어나고 있었다.

 "사회생활은 다 그런 거야."라는 말에 자신을 갈아가며 버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멋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왜 그런 대우와 취급을 받아야 할까...


 그래서 남겨보려고 한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22살의,

회사의 이름이, 연봉이 중요했던 나에게,  '회사'라는 곳에서 한 발짝 멀어진 내가 남기는 편지를.


 마땅히 그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 사람은 없고 설령 부족하다고 해도 그런 취급을 당해서는 안된다.

'이게 아닌가?' 싶을 때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의 앞길을 선택해 나가길 빈다.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아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리라는 사람에게 종종 밤늦은 연락을 받았다. 잘 들어갔느냐, 일은 어떻냐.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이게 후배를 챙기는 사람의 단순한 호의인지 이성적 호감의 표시인지. 문제는 유부남에 나이도 얼추 띠동갑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22살에 첫 사회생활이라 상사의 의도 파악은커녕 상황 파악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껄끄러운 감정으로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12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충격적인 연락을 받았다.

"둘이 술이나 한잔할까?"

이 상황을 직속 사수 언니에게 말했더니 일단은 넘어가고 한번 더 같은 상황이 일어나면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느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약자이고 내 편은 없다는 걸.

 나이 많은 사람은 연장자로서의 대우를 항상 바란다. 문제는 그런 사람은 자신의 나이를 권력으로 행하려 한다는 것이다. 회사라는 곳에서 선을 넘는 호의를 마주한다면 일단 경계해라. 그 호의의 의도가 순수한지 아닌지는 사건에서 한 발짝 멀어져 정확하게 파악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상처 받지 마라. 잘못의 주체는 항상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다.


회사는 더 이상 나의 전부를 책임지지 않는다.

 입사 3개월 후, 갑자기 경영지원팀에서 전 여사원을  불러 모았다. 영문도 모른 체 방문한 경영지원팀에서 '직급전환'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근로자의 전문성 발전에 좋다는 식의 설명을 이어갔지만, 결론은 승진이 제한되고 연봉 인상폭이 줄어들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10년 넘게 일한 여선배들은 자리에서 울며 하소연까지 했다고 했다. 그때 느꼈다. 회사는 나의 발전에 관심도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걸.

 이렇게 부당함을 피부로 느꼈지만 당시의 나는 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이 회사에서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 당연한 출산휴가와 육아휴가는 상부와의 싸움을 통해 쟁취해야 했고 그마저도 버티지 못하고 결국 퇴사하고 마는 여선배들을 계속해서 목격해왔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졌다는 걸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마주하게 될지는 몰랐다.

 준비해야만 한다. 언젠가 자신의 입맛대로 나를 자를지도 모르는 경영진에게 당당하게 내 자리를 요구할 수 있도록 자신만의 능력을 키우고 발전시켜야 한다. 코로나 19를 이유로 부당하게 월급을 줄이고 퇴사를 종용하는 회사가 늘어났다는 소식이 종종 들린다. 이제 더 이상 회사가 나의 노후와 미래를 책임져주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퇴근 후,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라.


끊임없이 너를 깎아내린다고 호응하지 마라.

 원래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입사를 하고 회사에서 9시간 이상을 업무에만 집중하다 보니 삶에 대한 의욕 자체를 잃어버렸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찔끔찔끔 공부를 시작했고 회사 달력에 토익시험, 중국어 시험 날짜를 작게 적어놨다. 우연히 그걸 본 과장님이 학생 때 안 하던 걸 왜 이제 와서 하냐며 부서 전체에 들리게 나를 나무랐다.

 퇴사를 말하고도 후려치기는 그치지 않았다. 당시 나이 26살, 네가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냐며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다. 과장님과의 대화 끝에 나이도 많고,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된 나는 한 번의 퇴사 결정을 결국 덮게 되었다.

 남을 깎아내리는 사람은 자신보다 더 멋져질 상대방의 모습을 시기하고 질투한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상대방이 해낼까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가장 편한 방법으로 상대방의 능력과 가치를 평가절하하며 자기 위안 삶는다. 그것에 대응하지 마라. 상처 받지 마라. 단단해져서 보란 듯이 더 멋있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줘라.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제일 걱정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인생을 너무 쉽게 살아서, 여려서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퇴사를 말하고 부모님께서 내게 탄식하듯 하신 말은 아직까지 나의 가슴 한편에 상처로 남아있다.

대학 졸업 후, 공백기 없이 바로 취업을 했다. 학창 시절부터 바라왔던 자취를 입사 3개월 만에 시작했고 부모님과 직장생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이런저런 푸념에 해답만 찾아주려는 부모님의 충고가 귀찮았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께서는 내가 일을 편하게 하는 줄 알았나 보다.

 누군가의 눈에는 연봉도 여자 치고(...) 많고, 이름 있는 직장을 왜 그만두냐는 애정 없는 탄식을 한다. 하지만 내가 힘들면 힘든 거다. 내 앞날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고 준비했다. 아낄 수 있는 모든 돈을 아껴서 자금을 마련했고 고정비를 최소화시켜 퇴사를 했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진지하게 자신에 대해, 본인 스스로가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 본인에게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내가 이렇게 남긴 글은 누군가의 퇴사를 종용하는 글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나는 퇴사를 했지만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돌파구를 찾아나가는 전 직장 언니와는 여전히 연락하며 서로를 응원하며 지내고 있다. 그냥 이 글을 통해서 내가 가장 전달하고 싶은 한 가지는 누가 뭐라 해도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라는 것이다. 남들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과에 대한 기쁨도 후회도 결국 나의 몫임을 잊지 말고 미래에 대해 스스로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고민을 통해 내린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기의 의무를 다하며 몫을 챙겨가는 사회 초년생들이 점점 늘어나야 기업문화가 바뀌어 나갈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남이 행복하다 여기는 삶이 아니라 본인이 진짜 행복한 일상을 살길 바란다. 나 자신이. 모든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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