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번아웃'인가요?
아침에 일어나 책상을 보면 전날의 밤이 보인다. 오늘은 책상이 너무 지저분했다. 어제의 나는 하기 싫은 일을 다 미뤄두고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혹시나 공부할 마음이 생길까 싶어 침대로 들고 간 단어장을 아무렇게나 손 닿는 책상 끝자락에 던져버렸고, 침대로 바쁘게 옮긴 몸에 의자는 침대를 향해있었다. 요 며칠 이런 아침의 반복이었다. 아침에 마주하는 책상의 모습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모든 에너지는 전량 소진되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하던 루틴들이 모두 엉망이 되었다. 기상시간을 체크하고, 할 일을 계획하던 다이어리는 시간이 멈췄고, 평소 같으면 가볍게 끝냈을 블로그 포스팅도 뚝뚝 끊어가며 꾸역꾸역 완성해냈다. 밥 먹는 일도 점점 귀찮아져 대충 단백질 음료로 때우거나 거르기도 했다. 열어 둔 창문 틈에서 들어오는 찬 공기에 가을을 느끼며 혼자선 벌써 연말이라도 맞이한 듯, 계획을 이루지 못한 허탈함에 휩싸였다. 억지로 책상 앞에서 계획했던 일을 할라치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모자라 끊임없이 한숨이 나왔다. 혼자 생각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
이유를 모를 우울감을 극복해 보고자 옷을 챙겨 입고 뒷산 탐방을 위해 문을 나섰다. 내 책상 앞, 베란다 창 너머 모이는 뒷산의 전망대에 오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출발한 여정은 아파트 단지만 실컷 구경하다 끝났다. 평소 관심이 있던 주제에 대해 온라인 강연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에 내용을 적을 노트북까지 켜 들었지만 나의 마음은 도저히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는 정말 아무것도 않고 쉬어봤다. 유튜브며 인스타며 볼거리가 많은 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녀봤지만 결국 밤에 느껴지는 것은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생각에 찾아오는 우울감이었다. 그렇다면 나가서 신나게 놀아버리면? 친구들과 맛있는 걸 먹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어도 내 마지막 말은 결국 ‘집에 들어가기 싫어!’였다. 지속되지 못하는 즐거움은 우울감에 허탈함까지 더해주었다.
'번아웃' 내가 겪어보지 못했을 때는 그저 의지가 부족한 사람들의 핑계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 앞에 다가온 번아웃이라는 큰 장벽은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그리고 주저앉게 만들었다. 해야 하는 일을 앞에 두고 펼쳐놓은 노트에 끊임없이 주절거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계획을 전부 미루고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원망의 화살은 온전히 나를 향했다. 나를 탓하고 다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하루의 반복. 이 어긋난 생활에 끝이 있을까 싶었다. 얼른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원인부터 찾아보자! 어디서부터 나의 에너지가 소진되기 시작했을까?
나를 옆에서 지켜봐 온 친구들이 한 달을 못 채운 중소기업에서의 퇴사 이후 돌아오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그 한 달 동안 나의 최선을 다해도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를 대면하게 되었다. 나의 노력이 결과로 나오지 않는 경험은 나를 무기력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의 '열심'이 결과로 나오지도 않는데 굳이 열심히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어떤 일에도 열심을 다 하지 않았고 결과는 당연히 나빴다. 이런 경험의 축적은 점점 의지까지 빼앗아갔다. 이제는 더 이상 지쳐있을 수만은 없다!
오늘 아침은 조금 일찍 일어났다. 8시 반 일어나 물 한잔을 마시고 곧바로 화장실로 가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부엌으로 가 비타민과 유산균을 야무지게 챙겨 먹었고 블로그 포스팅을 해냈다. 다시 다이어리를 펴 들고 오늘 해낼 계획들을 적고 완성된 것에는 빨간 줄을 그었다. 조금씩 원래의 루틴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사실 지금 생각으로는 이런 작은 노력이 큰 도움이 될까 싶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하고 계속 무기력에 빠져있는 것보다 뭔가 남는 행동이 아닐까! 코로나 19로 아무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이 시국이 되어버렸다. 분명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함께 해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힘내라는 말도 무거운 요즘, 잘 이겨내 더 나은 미래에서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