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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 Aug 08. 2018

항상 여행해왔던 것처럼

방콕의 도미토리에서 느낀 향수


2017년 추석, 나는 유례없는 열흘 간의 연휴를 즐기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열흘치 일을 당겨 한 것처럼 바빴던 나날을 보내고 퇴근하자마자 집에 들러 가방만 들고 나왔으니 응당 신이 나야 하지만 사실은 특별히 설레거나 즐겁지 않았다. 공항철도에 몸을 싣고 멍하니 창 밖을 쳐다보는 나는 퇴근길 지하철에 탔을 때보다 더 심드렁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차창에 반사되는 초췌한 내 얼굴을 보며 열심히 고민해봤다. 분명 비행기표를 결제할 때만 해도 잔뜩 들떠 있었다. 계획했던 LA나 이탈리아행 비행기표는 주머니 사정상 포기해야 했지만, 태국과 베트남 역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여행지였다. 특히나 방콕은 4년 전에 다녀온 후 꼭 다시 가리라 마음 먹었던 곳이라 지난 날 미처 즐기지 못한 한을 풀겠다며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한참 슬럼프에 빠져있던 나는 결제한 비행기표를 바라보며 오매불망 추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꾸역꾸역 버텨내어 드디어 9월 말, 꿈에 그리던 연휴를 맞아 집을 떠나왔건만 기분이 영 불편하다. 사실은 연휴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설레는 마음이 줄어드는 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내 감정은 매우 비합리적인 반비례 곡선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나치게 지쳐 있는 게 문제일까?


계속되는 과중한 업무와 미래가 보이지 않는 회사 생활에 우울하여 호구지책으로 떠나는 휴가가 새삼 즐거울 리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면 그렇게 좋아했던 여행 자체가 질린 것일 수도 있다. 제멋대로인 성격 덕에 항상 혼자 여행해야 했던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여행하는 스타일이 천편일률적으로 같았다. 똑같은 짓을 8년 내내 반복하고 있으니 슬슬 질릴 만도 하다.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한참을 고민했으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답도 낼 수 없었다. 이렇다할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나는 어느 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조용한 새벽 5시의 인천공항


능숙하게 셀프 체크인을 하고 면세구역으로 들어서면서 2009년,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 타던 날을 떠올렸다. 스물두살의 나는 어떻게 혼자 비행기를 타냐, 들어가서 어디로 가야하는 지도 잘 모른다, 하며 공항까지 데려다 준 엄마를 붙잡고 칭얼거렸다. 이집트로 향하는 길이었다.


남들 다 가는 배낭여행 나도 한번 가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떠난 것이었기에 비행기를 타는 것도, 공항에 내려 시내까지 찾아가는 것도 불안하기만 한 때였다. 물론 가기 전에 어리광을 부렸을 뿐, 나는 수없이 여행해온 베테랑인 것처럼 금방 카이로에 적응했다. 내 역마살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 때도 별 설렘이 없었던가? 첫 여행이라고 잠 못 이루고 두근거렸던가? 처음 맞딱트릴 상황들이 두려워 떨고 있었던가? 이제 와서는 그 때의 기분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처럼 무디진 않았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탑승한 비행기에서도 기분은 별 달리 바뀌지 않았다. 비행기를 무서워하는지라 조금 초조해진 게 전부였다. 차라리 부산 가는 KTX가 더 설레겠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렸다.




방콕 공항에 도착하여


4년 만에 도착한 방콕은 후텁지근하게 더웠다. 요즘은 동남아보다 한국이 더 덥다고 하지만, 9월 말 들어 슬슬 외투를 챙겨야 했던 한국과 달리 방콕의 습하고 무거운 공기는 피곤에 절은 나를 묵직하게 눌러왔다. 누군가 옆에 있다면 우리가 드디어 방콕에 도착했다며 꾸며낸 호들갑이라도 떨겠지만 언제나처럼 혼자인 나는 장시간의 비행이 끝나서 속이 시원할 뿐이었다.


숙소가 있는 카오산 로드까지는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아 택시를 타야 한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택시에 눕다시피 앉은 나는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방콕에 도착하는 순간에는 기분이 다를 줄 알았더니만. 설렘이 없다는 걸 깨달을수록 역설적으로 불안함이 커져갔다. 별로 오고 싶지도 않은 곳에, 연휴에는 마땅히 해외를 가줘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떠나온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었다. 무리를 해서 미국이나 이탈리아에 갔다면 달랐을까. 별로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카오산 로드에 도착해 낯익은 길들을 지나 미리 예약해 둔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직장인이 되어 지갑 사정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가장 싼 숙소의 도미토리에 찾아 들어가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다. 나는 8인용 혼성 도미토리의 열쇠를 받아들고 숙소 2층으로 올라갔다.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던 백홈 백팩커스


문을 열자 4개의 2층 침대가 가지런히 놓인 좁은 방이 나타났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마음이 탁 놓여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2층 침대가 꽉 들어찬 좁은 방이 참으로 익숙하다


오랜 향수가 밀려왔다. 배낭 하나만 메고 호기롭게 여행을 하던 20대 초반,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 도미토리에 들어설 때마다 드디어 몸을 뉘이고 쉴 수 있겠다는 안정감을 느끼곤 했다. 하루든 이틀이든 한 도시에 머무는 동안은 침대 하나만큼의 공간이 내 집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호텔에 묵는 대신 가방 하나 짊어지고 도미토리에 들어오니 옛날 살던 집에 돌아온 것처럼 더없이 편안해졌다.


편안함. 그래, 그 감정은 심드렁함이 아니라 편안함이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떠날 것처럼 배낭을 싼 채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잠시 머물 듯 돌아다니는 게 익숙했다. 한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로 움직이는 이유 역시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는 열망보다는 여행이기에 마땅히 움직여야 한다는 관성이 더 컸다. 나는 애초에 설레고 즐겁기 때문에 여행하는 게 아니었다. 편안하기 때문에 여행을 해 온 것이었다.


2층의 내 침대에서 바라본 골목


2층 침대 위에 짐을 부린 후 삐걱거리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벌러덩 드러누웠다. 한결 가까워진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시 배낭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바로 어제까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마치 항상 여행해왔던 것처럼 이 순간에 적응해버리고 말았다. 드디어 있어야 할 곳으로 회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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