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영화의 조각들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대성여고 근처에 있던 나래비디오. 본격적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 전, 나는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990년. 고시 공부를 하던 아빠를 대신해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엄마는 나래비디오의 사장이 되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 해 누나가 태어나고 또 얼마 뒤 계획에 없던 나의 이름을 지어야 할 때까지도 아빠의 합격은 여전히 요원했다. 엄마는 고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오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하루에도 몇 편씩 비디오를 돌려보았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영화를 추천해주기 위해서 엄마는 새로 들어오는 모든 비디오를 손님보다 먼저 봐야만 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재미 없는 영화를 보는 것만큼 끔찍한 고문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때로 그 시간은 지루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 못할 만큼 고역이었을 것이다. 혼자 몇 편씩 연달아 영화를 보는 일은 또한 외롭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졸린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좋은 영화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또 얼마나 컸을까. 그렇게 우연히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들을 보는 순간만큼은 엄마도 윤동주의 시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하던 학생 시절로 돌아갔던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한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영화에 빠져있을 때마다 나는 엄마의 배 밖으로 귀를 기울였다. 비록 그때는 아직 세상에 완전히 태어나기 전이었지만 그렇게 나는 엄마와 많은 영화들을 함께 보았다. 쏟아지는 졸음을 애써 참고 있는 엄마 옆에서 새로 들어온 비디오들을 함께 보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엄마는 가끔 나와 밥을 먹다 말고 그때 봤던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엄마는 '너의 태교는 영화였던 것 같다'고, '그래서 너가 그렇게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엄마는 잘 모르지만 사실 나는 두 시간이 넘는 영화를 진득하게 볼 집중력이 없다. 또,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 영화를 몇 년째 목록에서 지우지 못할 만큼 게으르기도 하다. 그래도 영화를 좋아하긴 하는 것 같다. 가끔 지겹다가도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와 영화를 보고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다시 좋아하고 싶어진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지만 게으른 천성을 타고난 덕분에 부지런히 영화를 섭렵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꽤 많은 영화들의 도움으로 삼십 년 가까이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화의 조각들을 좀 주워보려 한다. 잃어버린 영화를, 찾아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