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올바른 삶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이케이도 준-
"한자와 나오키'시리즈를 집필한 이케이도 준의 초기 작품입니다. 그는 금융 미스터리 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데요, 개인적으론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의 완성도가 조금 더 높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각 파트마다 다른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큰 틀 안에서 하나의 스토리를 향해 나선형으로 진행됩니다.
집중력이 깨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굉장한 몰입도를 자랑합니다.
인상적인 인물은 은행의 부지점장으로 있는 후루카와였습니다. 다음의 문장이 그의 인생을 한 마디로 잘 보여줍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라든가, 이념 같은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p.21)
하지만 고야마 사건이 그 생각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고야마는 면전에서 목표의 의미가 뭐냐고,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냐고 물었다. 눈앞이 흐려질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실은 '목표니까 당연히 하는 것'이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후루카와는 그런 은행원 인생을 살았다.(p.22)
후루카와가 등장하는 챕터에서 그에게 질문을 하며 도전적으로 맞서는 인물이 고야마라는 부하 직원입니다.
후루카와는 그저 윗 사람의 말에 복종하며 생각을 하지 않고 효율과 실적을 따지는 인물입니다. 그에 반해 고야마는 은행 내에서 부정이 저질러진 것을 알고 그것에 반대해 움직이는 사람이죠.
후루카와는 고야마를 힘으로 누르며 억압했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보였지만 사실 그의 내면은 굉장히 어설프고 안타까운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라는 질문 없이 기계의 부품처럼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또 한 가지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내부고발자와 비슷한 역할을 한 고야마에게 주위 동료들이 던지는 시선입니다.
융자과 직원들은 고야마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 뒤 잠시 후루카와에게 질문을 던지는 눈빛을 보내고서 다시 각자 책상으로 향했다. 봐선 안될 것, 들어선 안 될 것, 마져선 안 될 것, 그런 미묘한 문제를 목격했다는 태도였다.(p.23)
어느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회사 내에서 부조리함을 외칠 때, 나에게 돌아올 손해 때문에 입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보아도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고야마가 부당함을 외칠 때 한 사람이라도 같이 서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예전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비롯해서 대한항공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박창진 사무장은 목소리를 냈었습니다.
회사에 대항하여 외롭게 싸움을 하다가 많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박창진 사무장 주위로 모여듭니다.
그리고 부당한 회사에 대하여 맞설 수 있게 됩니다.
수천 명이 채팅방에서 목소리를 내고 그 일부인 수백 명이 용기를 내 광장으로 나오자 세상의 반응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뭉쳐 있으니 회사가 행동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 머리로 상상만 하던 일이 현실이 되면서 그제야 비로소 함께하는 동료들의 존재를 느끼게 되었다.(박창진, "플라이백", 204)
비를 맞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같이 비를 맞아 주는 것. 이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와 힘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