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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oche Jul 13. 2019

완전한 이해 없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 인생도 물도,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융합된다


물은 형태가 없으니 무엇이든 채울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 물이란 끊임없이 흐르고 흘러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데 모여 강을 만들고 바다를 이룬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딱히 정형화된 것도 아니요, 어디 방향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그냥 순간이 흘러 시간을 채우고 기억은 씻겨 내려갈 뿐, 한군데 머무를 수도 과거로 거슬러 갈 수도 없다. 때로는 그 비가역성에 거세게 저항해도 보지만, 유장한 흐름에 결국은 하릴없이 흘러가게 마련이다. 끊임없는 연속되는 만남과 이별의 도정, 그래서 인생이란 잔혹하고도 아름답다.


# 대조적인 두 형제의 아름다운 가족애를 그린 수작    

그 때 그 시절 무비팬들의 방안 벽을 장식한 포스터

‘폴’(브래드 피트, 弟)과 ‘노먼’(크레이그 셔퍼, 兄). 형제이지만 둘은 타고난 기질이 달랐고, 인생관 및 가치관 또한 그러했다. 평소 열정적이고 과단성이 넘치는 ‘폴’. 그는 인생 전반에 걸쳐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 부조리한 사회제도와 자신을 억압하는 일체에 끊임없이 저항했고, 특유의 흡인력으로 어느 모임에 가도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하지만 그는 끝내 고향을 벗어나지 못한 채로 내면의 공허함과 남모를 고독을 반항과 일탈로 채워나간다. 반면, 평소 점잖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는 ‘노먼’. 그는 주어진 환경과 체제에 순응하되, 내면을 단단히 하면서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가족이 있는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나간다. 이렇듯 두 형제는 일견 대척점에 서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둘은 서로의 인생과 방식을 존중하며 아버지는 이 둘 모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여러모로 달랐지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 '폴'과 '노먼'

‘플라잉 낚시’는 이 영화에서 세 부자의 인생과 가족애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메타포다. 아버지는 어린 두 아들 모두에게 자신이 터득한 낚시법을 가르쳤다. 형 ‘노먼’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좇아 비교적 쉽게 물고기를 낚아 올리지만, ‘폴’은 아버지의 방식을 답습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리듬을 고안해낸다. 그리고 아버지와 형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체득한 낚시법으로 가장 큰 고기를 낚아 올린다. 비록 그 과정에서 거센 물살에 휩쓸려 좌초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결국 눈부시게 부서지는 윤슬 위로 던져올린 낚싯줄로 ‘폴’은 자신의 가치와 인생을 증명해 보인다. 아버지와 형의 칭찬에 ‘폴’은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아직도 물고기처럼 생각하려면 3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폴’은 도박판에서 다툼에 휘말려 뒷골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낚싯대와 포커 카드를 잡았던 오른손이 완전히 부서진 채로.  

    

‘플라잉 낚시’를 즐기는 세 부자의 모습은 각자의 인생과 가족애를 아름답게 압축한 명장면이다


# 인생은 예술품이 아니고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삶은 유한적이다. 삶의 주체인 인간 또한 시공간의 제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불안한 존재다. 각자의 시간이 있고, 기준은 상대적이며, 이해의 범주는 한정적이다. 이로 인해 인간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고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며, 때로는 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한다. 이런 부자연스러운 현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인간을 여타의 존재자들로부터 차별 짓는 고유성이자 특질인 ‘사랑’이 아닐까. 유한한 삶 속에서 필연적으로 이기적이어야만 하는 인간이 자신의 삶과 때로는 인격까지 포기해가면서 타자를 위해 희생하는 모순의 감정. 바로 이 사랑 때문에 인간은 비극과 희극을 오가며, 자기파괴를 통한 구원에 이르기도 한다. 사랑은 유한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무한한 감정이요, 가장 완벽한 역설적 행위다.     


 아버지와 형이 보는 앞에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대어를 낚아올린 '폴'. 브래드 피트의 소싯적 모습이 인상적이다.  


# 그러나 인생은 아름답고 사랑은 영원하다


아버지는 ‘폴’의 죽음에 관해 ‘노먼’에게 이따금씩 물었다. 혹시 본인이 폴에 대해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느냐고. ‘노먼’은 끝내 폴은 분명히 훌륭한 낚시꾼이었노라고 답한다. 이에 아버지는 덧붙인다. “그게 전부는 아니야. 그는 아름다웠어”라고.

냉정히 말해 ‘폴’은 도박꾼이었고 그로 인해 살해 함으로써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그를 사랑했던 아버지와 형조차 ‘폴’의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폴에게 “왜”를 묻는 걸 참았으며,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용서했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때로는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도,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제안해보기도 했지만 ‘폴’에게 그것들은 무용의 것이었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사랑하는 걸 그만둘 수도 없었고, 심지어 ‘폴’의 사후에도 이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 마음에는 항상 ‘폴’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를 향한 가족들의 사랑은, 아무리 상처받고 좌절감이 들더라도 그걸 딛고 일어서 다시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 그것은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결코 거스를 수 없는 길고도 오랜 감정이요, 지난한 순간의 연속이지만 종국엔 모두의 가슴속에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반추될 영원불멸의 기억이다.



"우리는 때로 가장 사랑하는 이를 돕지 못한다. 우리가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주려고 해도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 비록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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