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한강은 유유히 흐른다
여전히 거리는 휑-했다.
평소 같았으면 택시를 잡는 취객들로 붐볐을 테헤란로 한복판은 유령도시처럼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드문드문 마주치는 행인들은 서로 자석의 같은 극처럼 밀어내기 바빴다.
유사 이래 이렇게 전 국민이 순종하는 강력한 정부 지침이 존재했었던가?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 이 녀석 덕분에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 거리를 마음껏 활보할 수 있었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게 선사한 유일한 선물이랄까.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를 만나다니 역시나 나는 반사회적 인물이 분명했다.
하긴, 신용대출까지 받아서 2X 인버스, 소위 곱버스에 전 재산을 몰빵한 곱등이인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우리나라 경제가 주저앉을수록 내 계좌는 그만큼, 아니 곱버스니까 두 배의 크기로 부풀어 오를 것이었다. 내 원금을 되찾을 때까지 경제는 하강해야만 하고, 그 이후에 다시 상승해야만 한다.
하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인적인 드문 거리, ‘임대’라는 두 글자가 내걸린 공실(空室), 나날이 늘어가는 확진자 수와 달리 지수는 다시 상승하고 있었다. 당최 나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모종의 세력이 나같이 세상을 꿰뚫어 보고 있는 사람을 기만하기 위해 벌이는 고약한 술수가 분명했다.
“나는 안 속아. 절대 안 속아.”
'국가부도의 날'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도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원래 진리를 깨우친 자는 항상 고독하기 마련. 구도자의 심정으로 나는 계속 이 고행을 계속할 것이다. 아니, 계속할 수밖에 없다. 지금 손절하면 진짜 끝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기다리다 보면 기필코 기회는 주어질 것이었고, 끝내 승리를 거머쥐는 주인공은 내가 될 것이었다. 벌써 단상에 오른 기분에 울컥해서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차, 주머니속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하는 후배 녀석이었다.
“뭐야, 야밤에. 뭐 좋은 소식이라도 있냐?”
“아, 형한테는 낭보가 아니라 비보같긴 한데...”
심장이 철렁했다.
“뭔소리야? 분위기 그만 조성하고, 그만 뜸들이고 빨랑 얘기해.”
“그게,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서 지수가 계속 올라갈 거 같다고...”
“...잠깐만 기다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몇 차례 한 뒤, 주변 빌딩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야, 지금 지수가 더 오르는 게 말이 되냐? 여기저기 사람이 죽어 나가는 마당에, 그리고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천하의 삼성도 현대도 다 지금 난리더만. 뭔 주식이 올라?”
말하면서도 화가 치밀었다. 실제 내가 즉흥적으로 지어낸 얘기가 아닌, 주변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 공무원, 자영업자 등 내가 실제로 들은 정보를 토대로 한 사실이었다.
“형, 형 얘기가 뭔지는 아는데, 현재 수급이 그렇다고. 예수금도 늘어나고, 주식시장으로 돈이 계속 유입되고 있다고. 우리 생각보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많다니까!”
돈 많은 사람들이 많다고? 나는 지금 내가 10여 년 직장 생활하면서 번 돈은 물론, 은행돈까지 날리게 생겼는데 내가 마이너리티라고? 이 녀석이 금융업에 종사한답시고 얄팍한 지식을 앞세워 건방을 떠는 게 분명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됐어, 인마. 헛소리 할 거면 끊어!”
“형, 유동성 장세 무시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손해보고 팔...”
다행히 내 손이 빨랐다.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한강 둔치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대체 실물경제라고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놈이 뭘 안다고 나한테 매도를 종용하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했다. 생각해보면 곱버스를 사게 된 것도 저놈 때문인데...
코로나가 막 우한에서 창궐하기 시작할 즈음, 나는 현대차와 이마트의 주주였다. 당시에 나는 곱버스라는 상품은 알지도 못 했다. 그렇게 코로나가 확산세에 접어들면서 현대차와 이마트는 개장에서 폐장까지 나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30%가 넘어가고 손해액이 천만원이 넘어가자 눈앞이 하얘졌다. 그렇게 나는 결국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두 개를 손절했다.
당시 후배가 나를 위로한답시고 찾아와서 술 한 잔 기울이던 중, 자신은 삼성전자와 곱버스라는 걸 샀다고 했다. 곱버스가 뭐냐고 묻는 말에 녀석은 지수가 내리면 오르는 인버스 상품인데, 이건 무려 수익률이 두 배짜리라면서 자신은 이미 짭짤하게 재미를 보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남은 예수금 모두를 들고 곱버스호에 승선했고, 급기야 은행에서 신용대출까지 받아서 물을 탔다. 그렇게 승부수를 띄웠지만 현재로선 패색이 짙은 상태였고, 나를 입문시킨 녀석은 곱버스는 손절했다면서 자신은 삼성전자로 적잖은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했다.
근성이 부족한 녀석.
조금만 기다리면 곱버스의 시대가 올텐데 그새를 못 참고... 스마트폰을 열어 부정적인 전망이 가득한 뉴스를 몇 개 읽은 뒤 좋아요를 눌렀다.
그래, 이제 대세는 정해졌고 더는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내 눈앞에 유유히 흐르는 저 한강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