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면 어떡하지?”

감정을 다루는 것도 배움이 필요하다

by 트루브무아

0도로 기온이 뚝 떨어진 10월 말 아침

언제나 처럼 손을 꼬옥 잡고 함께 학교로 걸어가는 길에 네가 물었어.


”오늘 무한성편*보면서 슬프면 어떡하지?“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진지한 걱정이 느껴졌다.

매일 아빠와 3-4편씩 챙겨보는 최애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서 눈물이 날 정도록 슬픈 내용이 나왔던 모양이다.

그 중 특히 슬펐던 에피소드에 대해, 연신 “진짜 울뻔 했어“ 라며 함께 보지 않은 내게 이야기했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한 등장인물(아마도 비중있는 캐릭터였나보다, 잘 생겼거나, 정의롭거나)이 죽었고 그 장면이 어른에게도 슬프게 다가왔는지 남편도 “울 뻔 했다”는 말만 몇 번을 했다.


오늘은 아빠와 극장판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라 설레고 신났을텐데, 좋아하는 애니메니션을 보는 것보다 내용이 슬플까봐 아침부터 걱정하는 너를 보며 문득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 크게 느낀 적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슬픈 게 왜 걱정이 돼?” 라고 내가 묻자

“슬프면 싫으니까..”라고 대답하는 너에게 이렇게 말해줬어.


“슬퍼도 돼.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게 자연스럽고 좋은 거야. 엄마는 미래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어서 좋은 것 같은데? 엄마도 슬픈 거 보면 엄청 잘 울어. 영화보다가 슬프면 울어도 돼. 괜찮아.”


너는 진지해진 엄마 말이 그만듣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슬퍼도 된다는 말에 안심해서였는지 바로 맥락없는 다른 말들을 하며 언제나 그렇듯 유유히 학교로 걸어들어갔다.


짧지만 너와 나눈 대화를 곱씹으며 인간의 감정이 세분화되어가는 시기가 있겠구나, 마치 인사이드아웃 애니메이션처럼..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이 넘은 오늘의 나에게도 수 많은 감정들이 몰려올 때가 있다. 태생이 감정이 넘치게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흘러넘칠 때마다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힘들어했던 어린 내가, 사실 여전히 그런 내가 떠올랐다.


누군가 나의 감정 하나하나에 귀기울여주고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려하기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라고, 그건 잘못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던 어린 내가, 그리고 여전히 그런 내가 떠올랐다.


나이를 먹으며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되었고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감정에 대해 AI와 이야기나누며 위로받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네가 앞으로 느끼고, 가지게 될 감정들에 대해 귀기울이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세상에 잘못된 감정은 없으니까...

떠오른 감정을 다루지 못하는 몸만 어른이 된 아이들이 있을 뿐..



*일본 애니메니션 귀멸의 칼날 극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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