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성장과 생산성 노동의 관계
생산성이 전제되지 않은 금융은 신기루일 뿐이다.
하루아침에 수십조가 움직이는 생산성으로 표현되는 노동의 가치만큼 확실하고 신성한 기준이 어디 있을까!
창세기에서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고 그에 대한 벌로 노동을 하게 되었다고 적혀있다.
거친 노동은 일종의 죄에 대한 징벌이다. 지금도 구속되고 감옥에 가면 노동을 통해 교화한다고 믿어진다. 죄와 벌이다.
막스베버에 의해 노동은 비로소 양지로 나온다. 근면한 노동과 절약이 자본주의의 기본이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 미덕이고 신에게 받은 소명을 다하는 일이다.
미술은 종교화에서 시작해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고전주의를 거쳐 사실주의로 넘어오면서 현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그림이 많아졌다. 밀레, 오노레도미, 귀스타브 쿠르베가 대표적이다.
밀래의 이삭 줍는 여인에는 특별함이 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저 이삭을 줍는 사람의 뒤에는 말을 타고 있는 간부도 보이고 밀을 올리고 있는 고급노동자들도 있다. 세 여인은 남은 알곡을 줍는 가장 아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 남은 것이라도 주어서 죽을 끓여야 한다. 그래야 먹고산다.
삶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이렇게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밀래의 그림은 마트 미술코너에는 하나씩 꼭 있는 그림이니 서민들에게 얼마나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림인가를 보여주는 반증일 것이다.
한국의 압축적 경제성장 과정을 보면 초기 단계에서는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의 처지 역시 사실주의 화가들이 그린 고단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6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70달러 수준이었다. 노동집약산업인 섬유 봉제 같은 경공업 중심이었다. 70년 청계천 피복상가 앞에서 불에 타 죽은 청년 전태일 기념관은 지금도 광장시장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찰리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처럼 공장의 기계처럼 일만 하는 생활에 오죽하면 노래 사계에서는 미싱은 잘도 돈다고 노래를 한다.
윌리엄 아서 루이스 교수는 저개발경제에서 노동시장의 특징은 노동 공급이 무한 탄력적으로 많다는 점이며, 임금 수준은 최저 생계비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이 매년 오르지만 나의 임금은 매년 오르지 않는다는 초현실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국가이다.
수평적으로 그려지는 공급 곡선이 사실 그 뒤에는 많은 이들의 땀과 시간이 전제된 수평적이지 않은 노동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단순한 그래프의 뒤에 숨어있는 노동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왜 나의 소득이 올라가지 못하고 지출은 많아지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반성도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나 또한 한 번 고민해 본다. 과연 내 급여는 왜 오르지 못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