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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Aug 22. 2023

안녕을 바라며

<소년, 잘 지내> / 박경환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기타 코드가 이만큼이고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이만큼인데 여기서 뭘 더하지,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은 꽤 자주 찾아왔다. 창작의 고통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때로는 정반대로 물불 가리지 않는 창작욕이 펄떡거리기도 한다. 그럴 땐 남 들려주기 부끄러운 음성메모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두고 다시 '감성의 비수기'가 찾아오면 하나둘 꺼내본다. 김장을 왕창 담가두는 것과 비슷하려나.


그 무언가를 믿고 계속 걸어오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다. 머릿속을 '옹졸한 상태'로 두지 말고 '쿨한 상태'로 두자고 생각한다. 출간될지 어떨지 초고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는 이 원고 위에 문장을 덧대고 조립하길 반복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확신은 없지만 쿨하게 스페이스 바를 누른다.

돌아보면 지극히 평범한 순간들이 노래가 된다. 꼭두새벽 지방 대학교로 향하는 출근 셔트버스에서 하나씩 꺼내 먹던 감자튀김. 덕분에 목이 메는 상태로 바라보았던 창밖 풍경은 더 오래 남는다. 
...
이렇듯 초라한 순간의 기록에 멜로디를 입히는 노력을 몇 번 하다 보면 운 좋게도 노래가 태어난다. 그 멜로디들이 어디론가 날아가 누군가의 마음을 만난다는 건 더없이 짜릿한 일이다.


어떤 선택이든 크게 주저하지 않던 때가 그립다. 그 여행을 함께해 주었던 수많은 노래들. 그 노래들을 온몸으로 흡수하던 어린 날이 그립다. 어디론가 떠나려 했지만 어느새 '고정'되어 있는 나를 매일 발견한다. 꼭 '물리적 고정'이라기보다 저지르는 정신을 잃어버린 갑갑한 마음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럴 때면 '이대로 괜찮은 걸까' 생각하게 된다. 삶은 어차피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나를 일부러 가둬둘 필요는 없는데.......
스스로에게도 예고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을 언제쯤 다시 해볼 수 있을까. 별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가슴속 오래 묵은 공기를 밀어내기 위해, 진하다 못해 우아한 고독을 남몰래 내 안에 담아두기 위해, 길을 잃은 채로 시작하는 진짜 여행을 다시 떠나보고 싶다. 불쑥 어쩔 수 없이 엎질러지고만 그런 여행을.





삶에 정돈되지 않은 언어와 문장이 가득할 때

나는 아웃풋을 멈추고 인풋에 집중한다.

마치 두서없는 마음의 언어를 정돈할 단어를 고르듯,

뛰어난 기술자를 고용해 정리를 부탁하듯이.


그 와중에 선물 받은 책.

무기력에 빠져 쓸 수 있는 힘이라고는 어딘가에 기대 눈을 굴리는 정도였던 나는

자연스럽게 책을 집어 읽기 시작해 주말 동안 천천히, 끝까지 읽어 내렸다.


무언가를 이루어 본 적 없는 내가 보기엔 꽤 대단해 보이는 그의 수줍음과 망설임이 참 의외였고,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가진 고민의 결이 참 비슷하구나 싶어 위로를 얻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믿고 계속 걸어오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고백하건대 나는 요즘

나의 '여기'가 사라져 버린 기분이다.


현실과 이상 중 이상을 좇아 살아온 나의 '여기'는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아프게 깨닫고 있어서 그렇다.


영향에 대한 불안, 영향을 저항하는 과정에서 자기 것이 생긴다고 하는데

나는 쓸데없는 저항만 해온 것 같아 십수 년의 시간이 허물어진 기분이다.


지금 당장은 내면에 끊임없이 일었던 의구심을 이겨내고 책을 펴낸 그의 이야기에

힘을 얻었다는 희망적인 소감을 적어 내릴 힘은 없으나

머릿속을 '옹졸한 상태'에서 '쿨한 상태'로 바꿔보자는 작은 의지를 길어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나에게는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다.


소년이 늘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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