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준비 없이 떠나온 이탈리아에서의 2주는 그야말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3주 전 부랴부랴 예약한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도저히 빠트릴 수 없어 감행한 세 도시 방문으로 내 보통의 여행과 달리 바쁜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느긋하게 일상처럼' 로마 누리기 역시 충분히 하고 간다. 습관처럼 쉬는 날을 두고, 날씨에 따라 움직이며 아이의 투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별 거 없는 날들을 남겨둔 덕분.
고대 로마 역사 덕후인 나로서는 로마에서만 2주를 보내도 모자랐지만, 아이와 이탈리아에 언제 올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계획한 피렌체와 피사 그리고 나폴리 당일치기 여행은 도시 각각이 가진 매력이 다른만큼 다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기억을 뽑으라면 단연 피사 여행. 아이가 큰 만큼 여행의 일부를 담당해 보는 것, 예컨대 목적지를 한 군데쯤 정해 보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는 아이에게 이탈리아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지, 있다면 그곳에서 맛집이나 가고 싶은 곳 등을 고민해 보라고 주문했더랬다. 아이는 내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피사의 사탑이라 답했다. 로마에서 세 시간이나 걸리는 피사에 피사의 사탑만 보러 가는 게 살짝 고민스러웠지만 아이가 고른 걸 거절하면 이다음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 같아 나는 곧장 그러자 답하고 기차표를 끊어 두었다.
11월의 로마 날씨는 동남아 못지않게 예측 불허였다. 비는 별로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비가 잦거나, 추울 줄 알았는데 더워서 가져온들 중 못 입은 게 있었을 정도. 안타깝게도 피사에 가는 날은 2주간의 여정 중 날씨가 가장 유난스러웠다. 피사에 도착한 정오 즈음부터 저녁까지 내내 뇌우 예보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시작은 좋았다. 아이가 블로그 등을 검색해 찾은 역 앞 피자집은 정말 맛집이어서 아이도 나도 무척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고, 여행 중 처음 고른 맛집부터 성공적이라는 게 아이를 몹시 뿌듯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당에서 피사의 사탑으로 향하는 중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우리는 웃으며 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예약한 사탑 입장 예약 시간 10분 전부터 비바람이 심상치 않아 졌다. 사탑에 오르기 전 모든 짐을 사물함에 맡기고 가야 해서 우산까지 집어넣었는데, 입장표를 확인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동안 비가 더욱 강해져 우리는 몇 분 사이 그야말로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버렸다.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세차게 내리는 비와 우박을 그대로 맞고 서있는 우리에게 우산과 우비를 파는 한 남자가 찾아왔다. 순간 반가운 마음에 우비를 달라고 했다가 지갑까지 사물함에 넣었다는 사실이 생각나 돈이 없어서 못 산다고 소리친 나. 그런 우리가 정말 불쌍해 보였는지 그는 '선물이야'라는 말과 함께 우리에게 두 개의 우비를 주고는 홀연히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순간에는 빨리 우비를 펼쳐 입는 데 집중하느라 급히 자리를 뜬 그에게 고맙다는 내 말이 닿았는지 확인하지도 못했는데, 사탑 안으로 들어가 여유가 좀 생기자 방금 전 벌어진 상황이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얼마나 불쌍해 보였으면 그는, 그에게 대목이었을 그 순간 돈을 포기하고 우리를 도왔을까란 생각에 기가 막히면서도 몹시 고마웠던 거다.
그런데 더 기가 막혔던 것은, 사탑 위로 올라가는 5분 사이에 거짓말처럼 비와 우박이 그치기 시작했다는 거다. 바람은 강했지만 사탑 꼭대기에 올랐을 땐 비가 그쳐서 비구름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황금빛 하늘과 그 아래 빛나는 피사 전경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마치 5분 전 상황이 꿈이었던 것처럼 피사 전경이 밝아지는 걸 보며 감탄하던 나는, '15분 뒤로 예약을 잡았다면 이 비를 피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했던 생각이 바뀌었다. 그 비를 맞지 않고 이 하늘을 봤다면 어땠을까. 내 입에서 '지금까지 내가 유럽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야'라는 말이 나왔을까?
이어 든 생각은, 지금 내가 처한 거친 현실 뒤에 느끼게 될 감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거다. 불현듯 찾아와 내 삶을 어지럽히고 있다며 원망했던 일들이 지나가면, 나는 한 뼘의 성장과 진짜 빛을 보게 되리라. 생각지도 못한 상황 속에서 얻은 이 마음으로 인해 나는 내 마음에 몇 십분 전까지 없던 용기가 솟아 오른 걸 느꼈다. 내게 닥친 그 일들을 뚫고 나갈 힘이 되어줄 용기. 그리고 나는, 결국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떠나온 내게 친한 언니가 해준 말을 조용히 되뇌었다.
'장하다'라고.
더불어 피사에 가고 싶다고 말해준 아이에게도 고마웠다. 어른들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아이에게 그 이유를 다 말해줄 순 없었지만, 자기 덕분에 피사에 와서 이런 특별한 추억을 만든 게 아니냐고 뿌듯해하는 아이에게 나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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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한 달간 지내고 돌아올 때도 아이가 정말 많이 컸다 느꼈는데, 4년 만에 아이와 유럽에 오니 발리에서 돌아올 때와는 또 다른 아이의 성장을 느낀다. 예를 들어 아이가 걷는 속도가 빨라진 것과 같은, 엄마인 내 눈에만 보이는 성장들. 사실 아이가 더 어린 시절 걷는 게 주인 유럽을 여행할 땐, 아이 걸음을 고려하려고 하다가도 목적지를 찾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져 종종 거리며 나를 따라오는 아이를 놓친 몇몇 골목에서의 기억이 지금도 가끔 나를 괴롭힌다. 그런데 이번엔 아이 걸음이 나보다 빨라 일부러가 아니라 정말로 내가 아이 뒤를 쫓아 걸을 때가 많았다.
아이가 클수록 여행이 수월해지고 때론 내가 기댈 수 있게 되는 부분이 생기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아이와 여행을 쉬지 않고 해 보니 아무리 아이가 컸다고 해도 아직은 아이라서, 더 큰 배려는 내 쪽에서 해야 하는 것 또한 확실히 느낀다. 아무리 대단하고 멋진 곳을 데려가도, 자기가 좋아하는 스포츠나 게임이 아닌 이상 사춘기 아이답게 적극적으로 싫다는 감정을 어필해 내 설레는 감정을 훅 꺼트리는 걸 참아내야 하는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으니 말이다. 요컨대 어린아이와 여행하면서 편한 시절은 없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서운함보다 고마운 마음이 큰 이유는 내 아이로 태어나 길 위에 남들보다 자주 서는 아이가 그 길을 같이, 그 모든 다름에도 걸어주기 때문에 내가 여행자로서의 나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아침, 2주간 거의 매일 찾다시피 한 카페에서 아침을 먹으며 잠시나마 정치나 역사에 대한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아이가 여행하며 그간 보고 듣고 이야기해 온 것들을 허투루 버려내지 않았으리라 확신했다. 게임하느라 그 유명한 그림들을 깨끗하게 무시하고, 멋진 것도 그저 늘 봐온 풍경 중 하나라 느끼는 듯 시큰둥하게 본 아이였지만 모든 시간 아이는 저도 모르게 그 아우라를 느끼고 담았으리라. 그래서 나는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 쌓여갈수록 이 경험들이 아이를 어떤 미래로 이끌지 더욱 기대가 된다.
이런 상황에 꼭 여행을 떠나야 하느냐는 직접적인 물음까지 들으며 이탈리아로 온 나는 여행의 끝에서 언제나 그랬듯 확인한다. 내게 이 길이 허락되었기에 떠나올 수 있었음을.
아이와 이다음이 있을까? 점점 아이와 이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마조마한데 긴장되는 이 마음도 즐기지 뭐.
가보자, 가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