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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Apr 11. 2024

이번에도, 그럼에도

조호바루

 이번엔 입술에 수포를 달고 공항에 왔다. 출국 10일 전에 진행된 이사 정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지만 그 전후로 스트레스가 심해 몸이 너무 긴장상태였던 터라, 출국 준비하는 게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이사라는 큰 일을 치르고 감행한 만큼 나는 그 무엇보다 철저히 예산에 맞춰 여행지를 정했다. 거기에 덧붙인 내 바람은 딱 두 가지. 겨울이니 따뜻한 곳으로 가자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 좋은 곳에 가자는 거였다. 출국 전 한 달간의 외출금지로 답답할 아이의 욕구를 풀어주는 일 역시 큰 목표. 지난 로마 여행에 이어 또다시 걷고 담는 여행을 하면 아이에게 과부하가 될 것 같기도 했다.


 한 이틀쯤 어디로 갈지 바짝 고민하고 조호바루로 마음을 정한 뒤 비행기와 숙소를 끊고는 여행 관련한 건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하다가, 떠나기 직전 주말이 되어서야 나는 아이가 조호바루에서 즐길만한 게 더 없을까 찾아보았다. 종일 모니터와 휴대폰 사이로 시선을 오가다, 나는 딱히 복잡할 것도 없는데 마음과 몸이 잔뜩 긴장되어 있는 스스로를 느끼며 이번 여행에 '내가' 할 일 역시 분명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쉼, 적극적으로 쉬는 것을 하기로 말이다.


 아직 여행과 일상 모두 주도적으로 틀을 잡고 끌어가는 건 나이기 때문에 지난 여행과 이번 여행의 발란스를 잡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 또한 내가 떠올리고 내가 만들어 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지 않다. 엄마이기 때문에, 그리고 여전히 한 편으로 눈치를 보며 여행을 떠나는 나는 아이 쪽에 필요한 걸 제대로 채우려 드느라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살피는 걸 모든 것 뒤에 두고 있는 거다.


 물론, 이 여행을 꼭 가야겠다 마음먹은 것도 나이니 이 마음을 감당하는 건 내 몫이라는 걸 안다. 여행으로 삶에 필요한 쉼과 채움을 하는, 그리고 그 여행을 나뿐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는 나는 아이와 나 모두의 발란스를 함께 생각해야 여정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 그래야 나와 우리의 여행이 그저 욕구만 푸는 시간으로 치부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럼 좀 어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좀 받아들이려 한다. 이유를 모른 채 한 발짝 내딛고 사는 게 어려운 나를, 오기인지 진짜 내 길인지 모르겠으나 이만큼 걸어온 내 길이 진짜라는 확신을 갖고 싶은 나를. 그래서 그 이유가 다른 누구보다 내 안에 박혀 있어야 하는 나를. 내가 이토록 여행을 떠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이유가, 어쩌면 내 마음에 확신 도장 같은 걸 하나씩 찍어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지난한 여름과 가을, 겨울을 보낸 나와 사춘기의 성장통과 실수들에 역시나 답답한 겨울을 보내다 떠나온 아이 모두에게 넋 놓고 쉬는, 때론 정신없이 웃고 땀 흘려 노는 시간이 되기를. 그래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자꾸 힘이 들어가는 내 몸이 긴장을 풀어낼 수 있기를.


* 관련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K4upFT5Kl-8?si=tMByM5OHqOpVER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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