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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작가 Aug 06. 2018

커피와 바느질 2. 박 여사의 핸드메이드 내공

커피 내리는 남자


커피 내리는 남자


스무 살 아들에게 첫 여자 친구가 생겼다. 아들은 자신의 매력을 죄다 끌어모아 여자 친구에게 어필하고 싶어 했다. 그중에 하나가 커피 핸드 드립. 사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들은 나직하게 부탁했다. "여자 친구 커피 내려줄 거니 집 좀 비워주세요." 우리 부부는 집 근처를 두 시간이나 빙빙 돌다 들어갔다.

                                                     

엄마를 위해 기꺼이 커피를 내려주고 있는 아들. 

전 세계 커피 소비량이 한 해 약 6000억 잔. 세계 2위 무역량. 우리나라만 해도 년간 일인당 소비량이 400잔을 훌쩍 넘는다. 세계인이 마치 한통속이 된 듯 이토록 보편적으로 사랑하며 소비하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언뜻 떠오르는 게 없다. 


해를 더할수록 열기가 오르는 커피 사랑. 그 안에 풍부한 아로마와 눈동자처럼 깊은 색, 카페인, 함께 마시는 사람들이 그윽하게 어우러져서일까.


아들은 스페셜티 원두를 바사삭하게 갈아 90도 정도의 물로 고노 드리퍼에 정성껏 내렸다. 중학교 때부터 눈동냥한 핸드드립의 정석을 여자 친구 앞에서 스타일리시하게 재현했다. 커피 내리는 사람은 매력적이지 않은가. 결국 여자 친구는 '넌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멋지다'는 표현을 날려주었다고 한다. 일단 성공!




18세기 파리 카페 프로코프. 손님 중에 루소, 볼테르가 있다. (커피 & 카페/ 가브리엘라 바이구에라)


커피의 위력은 이렇듯 한 청년의 사랑에도 관여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역사에 관여해왔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오랫동안 아라비아의 음료이던 커피는 유럽으로 전해져 근대 시민사회의 제도를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1 페니 대학'이라고 불렸는데 시민들이 커피 한잔을 마시며 지적 대화를 나누고 공론의 장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커피가 시민혁명의 씨앗이 된다. 카페 프로코프 등지가 중심이 되어 혁명의 작전사령부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18세기 파리는 데모크라틱한 정신을 나누던 하나의 거대한 카페였다.

                                          

혼자 마시건 여럿이 함께 마시건 말을 걸게 하는 하는 커피, 귀를 기울이게 하는 커피. 우리 일상의 풍경을 채우고 있는 커피 테마를 생각하며 핸드드립 용품을 만들어본다. 



드립 필터 커버 만들기

 

드리퍼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평범한 가정주부이던 독일인 멜리타 벤츠 여사. 당시의 텁텁한 커피 맛에 실증을 느낀 멜리타는 아들의 노트에서 찢어낸 종이를 주전자에 끼워 가루를 걸러마셨는데 그 맛이 깔끔했다. 이것이 새로운 커피 문화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크게 상용되지 못했지만 일본에 소개되면서 널리 발전했다. 

                            

드리퍼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 가운데 내가 주로 쓰는 것은 일이인용 노란색 고노 드리퍼.

                       

앞은 고노, 뒤는 칼리타 필터 커버.


드립 필터를 예쁘게 담아두고 싶어서 커버를 만들어 쓰고 있다. 먼지도 덜 앉아 좋고 꺼내 쓸 때마다 손때가 올라 어여쁘다. 만든 지 7년이나 됐지만 모서리가 조금 너절할 뿐 여전히 쓸만하다. 


드립 필터를 천 위에 올려놓고 재단한다.


앞판과 뒤판, 옆판을 재단을 한다. 세 판을 연결하면 부채꼴 모양의 커버 완성. 보통 3-4인용 필터 크기로 만들어두면 1-2인용까지 담을 수 있다. 부채꼴 모양의 앞, 뒤판은 일이 인용 필터보다 2cm씩 크게 재단한다. 긴 직사각형 옆판은 너비 4cm, 총길이는 부채꼴 옆선의 총길이와 같아야 하므로 26-27cm 정도로 재단한다. 시접은 모두 0.7cm. 접착 솜은 시접을 0.3cm로 적게 준다.



앞 면에 원하는 모양의 수를 놓으면 좋겠다. 나는 장미를 수놓기 위해 대략 수성펜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수가 자신 없다면 패스. 수놓기가 자신 있다면 정교한 그림 아래 먹지를 대고 밑그림을 그리면 된다.


완성된 세 판과 친구 히히가 만들어준 도자기 단추, 끈.  


블리언로즈 스티치로 노란 장미를 수놓았다. 책 보고 대충 익힌 솜씨라 엉성하고 거칠지만 자꾸 보면 좋아지는 게 자수의 매력이다. 앞니 빠진 아이처럼 귀엽다. '좀 못하면 어떠랴'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수를 놓는다.


세 판을 모두 완성했다. 앞 편(커피와 바느질 1)을 참고하면 한 판을 완성하는데 도움이 될듯하다. 수가 놓인 앞 면의 안쪽에 접착 솜을 붙인다 - 앞면의 겉과 뒷면을 마주 보도록 한 뒤 창구멍을 제외한 나머지를 홈질하거나 재봉틀로 박는다 - 창구멍으로 뒤집은 다음 창구멍을 공그르기로 막는다. 같은 방법으로 뒤판과 옆판도 만든다.



완성된 세 판을 공그르기로 붙인다. 이때 옆 판의 중간과 부채꼴 꼭짓점을 핀으로 고정시켜야 옆 선의 길이를 맞출 수 있다.


뒤집어 안쪽도 공그르기 하기.


겉을 공그르기 한 후 반드시 안쪽에서 한번 더 공그르기 해주어야 단단하고 모양도 예쁘다. 바느질은 귀찮은 과정의 연속이지만 이상하게도 완성된 녀석과 첫 눈 맞춤에서 그간의 힘듦이 싹 사라지고 만다. 


완성된 뒷면. 리넨에 지우개 스탬프를 찍어 바느질 자국을 감췄다.


완성된 녀석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노란색 장미가 도드라진다. 아마도 커피를 내려 마실 때마다 손끝에 스칠듯하다. 나를 위해 혹은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다해 커피를 내리는 순간을 지그시 함께 하리라.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게 필터 커버일까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일까.  


8월 1일 집에서 수확한 커피 체리 아홉 알. 정말 귀하다.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낸 작곡가 이영훈은 곡 작업을 하며 피아노 앞에 앉아 커피를 40잔이나 마셨단다. 몸은 무너져갔지만 영감은 햇발처럼 터져 눈부신 곡을 만들어냈다. 커피는 예술가의 영혼을 사로잡고 올올이 깨워내 창작하게 한다. 음악과 시와 사랑을.


스무 살 아들의 앳된 사랑에도 커피는 진하게 흐른다. 우리 인생에서 사랑이 싹텄던 어느 순간에도 커피는 분명 거기 있었을 것이다. 노란 장미처럼 달보드레했겠지. 


문득, 그 순간을 불러내 또 한잔 내려마시고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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