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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작가 Jul 16. 2018

커피와 바느질 1. 박 여사의 핸드메이드 내공

손만듦 갱년기 극복 프로젝트

커피가 내게 왔다! 


누군가 말했다. "커피의 세계는 토끼 굴과 같아서 정말이지 심오하다"라고. 앨리스를 이끌었던 판타지 공간인 토끼 굴과 커피라니! 

커피의 매력은 그만큼 한마디로 설명하기 모호하고 복잡하며 우물처럼 깊어서일까. 그렇다면 나는 커피 토끼 굴 세상을 탐험하는 앨리스가 맞다. 커피 없는 하루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커피는 어느 날 내게 방문자처럼 왔다. 배불리 밥을 먹고 믹스 커피로 한바탕 입가심을 해야 개운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원두커피를 만나게 된 건 다름 아닌 남편의 지병과 회사일 때문이었다. 


면역계통 희귀 질환을 앓고 있던 남편은 9년 전 회사에서 부서를 옮기면서 맞지 않는 일로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그 무렵 증상이 심해져 관절이 퉁퉁 붓고 걷기가 힘들 때마다 지팡이에 기대곤 했다.


그 지팡이를 볼 때마다 내 가슴에서 뭉글뭉글한 고통 덩어리가 검은 종유석처럼 자라났다.


동화 쓰기로는 밥벌이가 어림없었다. 재주도 없고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래, 커피를 배우자. 남편이 어느 날 사표를 던진다면 둘이 작은 카페를 열자.' 적금을 깨 곧장 커피 마스터 과정을 밟고 핸드드립과 로스팅까지 모두 해치우듯 배웠다.


향에 이끌려서도 아니고 우아한 취미도 아닌 두려움 때문이었다.



살길을 찾다 보니 눈 앞에 커피라는 녀석이 머루알처럼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때 내 인생은 썼지만 커피 덕분에 작은 희망을 돌멩이처럼 쥐고 버텨낼 수 있었다.


지독하게 검고 매력적인 향을 풍기며 이따금 몽환적이고 그러다 사정없이 나의 정신을 깨우는 짓궂은 녀석.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좋아하는 인형에 옷 입히듯 커피 관련 소품들을 직접 만들어 쓰고 있다. 컵 홀더와 티코스터를 만들어본다.


컵 홀더 만들기


남편이 들고 온 종이 홀더. 한번 쓰고 버리기 아깝다며 여럿이 쓴 걸 거둬온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칭구야, 썩 괜찮은 사람이야." 그리고 바로 몇 개 만들어주었다. 


카페에서 쓰는 종이 홀더를 잘라 천에 대고 수성펜으로 그린다. 나는 컵의 사이즈가 커서 사방 0.7cm씩 크게 만들었다. 컵이 좁다면 종이 그대로 그려도 된다.


지우개 스탬프로 알파벳을 만들어 꾹꾹 찍었다. 모노톤을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을 고려했다.


겉면과 뒷면 사방 시접은 0.7cm. 겉면 뒤에 붙일 접착 솜도 모양대로 만든다. 이때 접착 솜은 만들려는 원래 크기보다 0.3cm 정도 크게 만든다. 접착 솜에 물을 뿌린 뒤 겉면 안쪽에 대고 겉면 쪽에서 다림질해 붙여준다.


창구멍을 8cm 남겨두고 겉과 뒷면이 마주보게 박는다. 


재봉틀이 없다면 손바느질로 해도 좋다. 홈질로 창구멍을 제외한 사방을 바느질해준다.


뒤집은 뒤 공그르기로 창구멍을 막아준다.


공그르기는 좋아하는 바느질 방법. 어릴 때 엄마가 구멍 난 양말이나 옷을 꿰매고는 '감쪽같다'라고 뿌듯해하셨는데 아마도 그때 한 바느질이 공그르기가 아니었을까. 

내 눈에는 그다지 감쪽같지 않아서 꿰맨 옷을 입고 다니기가 참말 싫었지만 어쨌든, 바느질 땀을 숨겨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최고의 방법인 건 맞다.


블랭킷 스티치로 홀더의 위 아래를 꾸며준다. 


블랭킷 스티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어디에 해도 귀여움을 더해준다. 바느질하는 손맛도 있고 핸드메이드의 마스코트 같은 바느질. 은근히 복잡한데, 이럴 땐 암기방법이 있다. "옆집 가서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바늘 빼기!"


집에 있는 커피 도구들을 지우개 스탬프로 만들어 하나 더 만들었다. 양 옆도 공그르기로 마무리한다.




나는 부드러운 산미 acidity를 가진 커피를 좋아한다. ph5 인 커피는 (와인이 ph2) 약산성 음료. 생산지별 산미까지 알고 찾는 분들이 많다. 원두에 대한 취향이 뚜렷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보통 높은 고도에서 재배된 아라비카 커피가 더 긍정적인 산미와 향을 갖고 있다. 


친구 히히가 만들어준 잔과 드립세트(공방 '作'). 그녀는 라테를 좋아한다.
옥스퍼드 실험심리학자 찰스 스펜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라테 아트가 그려진 커피에 돈을 더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구와 인정. 몇몇 바리스타들은 잘 만들어진 스팀 밀크를 캔버스처럼 이용한다.
사실, 라테아트는 눈물 나게 어려워서 덜덜 떨며 나뭇잎을 그리다 재빨리 포기했다. 


라테와 카푸치노는 당최 구분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라테보다 진하고 밀도 높은 우유 거품이 봉긋 올라온 걸 카푸치노라 부르지만 흔히 두 개가 별 경계 없이 섞여있다.
그런들 어떠랴. 우리의 혀는 진한 커피와 부드러운 우유가 농밀하게 섞여 착 감기는 맛을 사랑하면 그뿐. 


카푸치노라는 말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생긴 말로 우유를 섞은 커피 색깔이 카푸친 수도사의 갈색 옷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분 알고 있는 수도사의 머리 모양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란다.



커피의 소소한 내력을 탐하다 보면 더없이 다정하게 느껴지곤 한다.


티코스터 만들기



10cm 정사각형 종이를 잘라 천에 대고 그려준다. 역시 시접은 0.7cm. 천 위에 고풍스러운 느낌의 찻잔 스탬프를 찍었다.



우리 부부가 쓸 커플 티코스터. 스탬프가 찍힌 겉면과 뒷면을 마주대고 홈질로 박아준다. 역시 창구멍이 필요한데, 나는 세 면만 바느질하고 한 면을 통째로 창구멍으로 한다. 



창구멍 쪽 시접을 안으로 깔끔하게 접어 넣은 뒤 사방을 홈질로 장식하듯 바느질한다. 그러면 창구멍 쪽을 따로 공그르기 하지 않아도 된다.


만들면서 커피 배우던 시절을 잠시 다녀왔다. 그 시절이 애틋하다.


동물행동 학자 최재천 교수는 여러 책에서 '알면 사랑한다'라고 줄기차게 밝혔다. 단순한 문장 속에 꽤 짙은 진실이 깃들어있다. 9년 전 커피의 기원에 대해, 역사 속 커피에 대해, 나라별 생두에 대해 두루 알아가면서 커피를 친구 삼게 된 건 분명하다. 


<커피 & 카페>/ 가브리엘라 바이구에라/ J&P


남미와 아프리카 등지의 열악하고 쓰디쓴 노동이 우리의 잔 바닥에 슬프게 흐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커피의 식민지 세계사까지 생각하면 입맛이 더 쓰다. 그러나 때로 우울한 한 인간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안이 되기도 하는 한 잔의 커피. 

인생에 비유할만하다.


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진하며, 사랑처럼 달콤해야 한다.
-터키 속담

홈카페를 연출해보았다. 씨앗에서 키우기 시작해 여덟 살이 된 카카오 나무가 카페의 지붕이 되었다. 옹글고 깜찍한 도자기 부엉이(작가 박진숙)와 눈이 마주친다.


다행히 남편은 치료를 하며 비교적 건강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고 나의 커피 공부는 오래도록 서랍에 넣어 둔 상태다. 공부한 내용은 이상하리만치 싹 사라지고 지금은 커피 향만 남아있다. 

어쩌다 내 인생에서 마주한 커피는 슬픔의 질량이 무겁던 때 내밀한 친구가 되어 날마다 곁에 머물다 간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나만의 쓸쓸함을 내 눈물을 녀석은 알고 있겠지. 내일도 나는 커피와 단둘이 진한 이야기를 속닥일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가 봄날 나무 아래서 <호메로스>를 읽으며 커피를 마셨듯, 밥 딜런이 '여행 떠나기 전에 커피 한 잔 더(one more cup of coffee)'라고 애타게 노래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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