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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작가 Jul 03. 2018

여름 하늘에 편지를 써!-박 여사의 핸드메이드 내공

-손만듦 갱년기 극복 프로젝트


지우개 스탬프 손글씨와 통하다!


장마가 잠시 볼일 보러 간 사이 쨍하니 해가 났다. 여름 하늘을 보고 있자니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쓴다는 김광석의 노래가 떠올랐다.


편지! 그런 단어가 있었지... 문득 오래도록 잊고 지내던 얼굴이 떠오른 듯 반가웠다. 편지 쓸 일이 좀체 없는 시대라지만 나는 어쩐지 느릿느릿 한 자 한 자 지우고 쓰기를 반복하며 밤을 지새우던 시절이 그립다.


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예담


소설 츠바키 문구점의 포포는 편지 대필을 하며 살아간다. 그녀는 의뢰받은 내용에 따라 종이와 펜을 세심하게 고른 뒤 보낸 이를 염두에 두고 받을 사람의 행복을 빌며 정성껏 편지를 쓴다.


포포는 밤에 쓰는 편지는 요물이 꼈다며 주로 낮에 쓴다는데 나는 역시 밤에 쓰는 편지가 끌린다. 누구나 한 번쯤 '내가 왜 이런 짓을... 바보처럼...' 괴로워하며 머리를 쥐어뜯게 했을 밤 편지. 사랑스럽지 않은가.


연애시절 남편이 부친 수많은 편지 묶음. 오래 된 상자에서 꺼내 바람을 쐬준다.


20년이 더 된 남편의 편지를 꺼내보니 차마 읽을 수가 없을 정도로 뜨겁고 우울하며 현학적이었다. 요물이 낀 게 확실했다. 사랑에 서투른 한 남자의 흔적이 고스란했다.


말 그대로 요염하고 고운 러브레터 염서(艶書). 22년 차 부부에게 이보다 더 좋은 볼 붉어지는 특효약이 있을까. 우리는 몇 개 꺼내 오그라드는 걸 간신히 참으며 읽었다. 그때의 사랑이 일부 찾아와 우리 부부를 톡톡 두드렸다.




지우개 스탬프로 편지지와 요모조모 쓸 것들을 만들어본다. 그 옛날 그때처럼!


편지지 만들기



안 쓰는 공책이나 수첩에서 모은 종이와 스탬프 재료들. 집 안을 뒤져보면 종이가 수두룩하다.



지우개에 트레이싱지를 문질러 모양을 옮겼다. 아트 나이프로 하나씩 판다. 스탬프 파는 방법은 앞 편에 있다.


내 맘대로 디자인해 스탬프를 꾹꾹 찍은 촌스러운 편지지를 커피나무에 걸었다. 편지지와 커피나무가 묘하게 어울린다.


숱한 상상과 감정의 오르내림이 틈틈이 웅크리고 있는 편지. 그래서일까, 편지는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 오랜 정서가 되었고 우리는 신속하게 감정을 주고받거나 정리하는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때로 그때 써 내려갔던 편지와 그때 읽었던 편지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나를 찾아온다. 분명 그때 우리는 푸르렀다.




지우개 스탬프를 찍어 메모지 만들기



남편과 나는 돼지띠. 우리를 닮은 돼지 스탬프를 만들어볼까.


나를 닮은 느림보 달팽이와 통통돼지 메모지. 냉장고에서 친구가 만들어 준 엽서와 도자기 마그넷이 빛난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쓰던 수첩을 뜯어 메모지를 만들었다. 맨숭맨숭하던 종이에 캐릭터가 생겼다.




메모광인 나를 위해 손바닥 수첩 만들기.


버리지 못하고 처박아두었던 오래된 종이들을 모아 수첩을 만들어본다.

아들이 초등학교때 생일 선물로 받은 수첩. 안 버리길 잘했다.


찍을 스탬프들을 만든 뒤,


10년 쯤 전에 받은 노트. 종이가 누렇다. 그 느낌이 참 좋다.


A4용지 절반 정도로 자른 종이를 모아 가운데를 스테이플러로 찍는다. 안쪽에는 마음 가는대로 스탬프를 찍고 표지를 따로 만들어 딱풀로 붙여도 좋다. 딱 손바닥만 해서 가방에 넣고 다녀도 앙증맞고 가볍다.


마그넷을 선물해준 친구에게 줄 수첩도 만들었다. 오래 된 잡지에서 찾은 파란 종이로 표지를 만들어주었다.


우리의 손은 점점 종이를 떠나고 있다. 휴대 전화로 날래게 할 말을 전해버리면 그만이다. 잠시 이 속도감에서 벗어나 오래된 것과 만나보았다. 헐렁하고 틈이 많았던 편지, 쓸모로 따지자면 귀퉁이에서 눈칫밥도 못 얻어먹을 녀석이 되었지만 나는 왠지 곰삭은 우정을 느낀다.


그 옛날 그때처럼 편지를 쓰고 싶다. 여름 하늘에 편지를 써!

 

* 박 여사의 책 레시피 *

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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