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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작가 Jun 26. 2018

지우개 스탬프로 놀아보자! -박 여사의 핸드메이드 내공

손만듦 갱년기 극복 프로젝트


지우개 스탬프로 놀아보자!


7년째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분들이 있다. 아들 친구 엄마 모임. 중학교 1학년 때 만나 대입 재수 시절까지 함께 했으니 긴 시간이다. 적어도 아이 키우는 각각의 사정은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더러 고된 시간과 기쁜 순간까지 나누며 서로의 얼룩을 닦아주던 사이.


그분들께 작은 선물을 마련해 포장을 하고 보니 어딘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눈 앞에 굴러다니던 아들의 지우개를 우연히 집어 들어 뭉툭한 칼로 이름을 설렁설렁 새겨보았다.


누구 엄마로 부르는 관계지만 이름을 새기는 순간 만남의 지점이 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대충 엉터리로 도려낸 이름에 붓펜 잉크를 쓱 발라 찍어보니 이런, 놀라웠다. 생각보다 예뻤다.


나의 첫 지우개 스탬프. 너무나 어설프나 또 그런대로 예쁘다.


동화 작가 로알드 달은 '머리에 기념비적인 한 방을 얻어맞고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소설가 하루키는 야구장에 갔다가 불현듯 글을 써야겠다고 느꼈다. 나는 내 이름을 찍는 순간 지우개 스탬프 작가(라기엔 한참 부족한)가 되기로 했다.

 

실수를 너그럽게 눈감아주듯 지워주는 녀석, 지우개. 사실, 연필 자국을 지워주는 도구로 많이 썼던 것은 묵은 빵조각이었다. 19세기를 지나가는 동안 빵조각을 밀어낸 것이 '고무 rubber'라는 이름이 붙은 지우개다.


지우개를 만드는 재료는 3500년쯤 전에 멕시코 올메크 족의 구기 경기에 쓰는 공을 만드는 데 쓰이던 것이었다. 열대성 기후에서 자라는 다양한 나무와 식물의 수액에서 추출된 재료였다.


신세계로부터 서구로 전해져 탄성 고무의 용도를 발견해 제품화된 건 1772년 런던. 식민지 땅에서 수많은 원료들이 서구로 건너와 오늘날의 상품이 된 예가 아닐까. 지우개의 깊은 내력을 알게 되니 저 멀리 열대 우듬지의 울림이 들리는 듯하다.




지우개 스탬프 만들기

 


왼쪽부터 스탬프용 지우개, 연필, 아트 나이프, 조각도, 스탬프용 잉크, 칼, 트레이싱 페이퍼. 고무바닥. 일반 지우개로 만들어도 된다. 너무 무르거나 딱딱하지 않은 정도가 좋다.


만들고 싶은 이미지를 그린다.


그림 위에 트레이싱 페이퍼를 올리고 그대로 본뜬다.


트레이싱 페이퍼를 뒤집어 지우개에 올리고 납작한 것으로 문지른다. 나는 보통 손톱으로 문질문질 문지른다.


지우개 위에 형태가 옮겨졌다. 거꾸로 된 형태. 나중에 찍으면 원하는 방향의 모양이 나오게 된다.


칼날을 모양 안 쪽으로 비스듬히 눕혀 파기 시작한다. 칼날을 직각으로 세워 파면 불안정한 모양이 된다.


경계를 파낸 뒤,


주변을 둘러 모두 파낸다.


완성된 스탬프의 표면을 깨끗이 닦은 뒤 잉크를 묻혀 찍어본다.


구름이 산뜻하다. 조금 심심해보여서 친구들을 만들어줘야겠다.




지우개 스탬프의 매력은 참 많다. 한동안 내 손에서 떠났던 참 만만한 어릴 적 친구라는 점이 가장 크다. 초등학교 때 청소 당번이 되면 교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형형색색의 지우개들을 보는 게 재미였다. '저 안에 혹시 그 아이의 지우개가 있을까' 짝사랑하던 아이의 지우개를 살포시 상상해보곤 했다.


내 맘대로 잘 안 되는 게 수두룩한 세상에서 요 녀석은 기특하게도 원하는 모양을 매끄럽고 쉽게 만들어준다는 것도 좋고, 그것을 찍었을 때 예외 없이 기대했던 것보다 싱그러운 결과물을 내준다는 것도 좋다.


구름과 어울리는 아이들을 몇 개 더 만들어보았다.

위의 책. 나무는 좋다/ 마르크 시몽/ 시공 주니어


만들고 보니 하나같이 자연 속 생명들.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게 될 때가 있다. 사랑하는 것들, 귀한 것들, 늘 빚지고 사는 미안함을 주는 존재, 자연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책 장면 속 나무 심는 꼬마도 만들어보았다. 마지막 장 글을 옮겨 본다.


다른 아이들도 나무가 심고 싶어 져서 집으로 가서 저희들도 나무를 심는다.


나무를 심었을 어느 아이 덕분에 고무가 만들어지고 지우개가 되어 내 손에서 만나게 된 기나긴 여정과 인연을 생각한다. 아이와 나무와 자연에 감사한다.


지우개 스탬프를 만들며 푸석한 일상에 재미 한 꼬집 얻었다. 앞으로 지우개 스탬프는 내 곁에서 손으로 만든 올망졸망한 물건들에 찍힐 것이다.  


* 박 여사의 책 레시피 *

문구의 과학/ 와쿠이 요시유키, 와쿠이 사다미/ 유유

문구의 모험/ 제임스 워드/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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